이렇게 불량한 임산부를 본 적 있나요?
"장난인 줄 알아서 구글에다 이미지 검색 해봤다.... 진짜야? 진짜로? 임신 확실해?"
선명한 두줄의 임테기 사진을 보고 당황하여 구글 이미지 검색기에 와이프의 임밍아웃 사진을 돌려봤다는 남편. 날짜로 추정한 정확도면에서 딱히 놀랄 것도 아니었다는 여유 섞인 (?) 후일담과는 사뭇 다른 태도.
이렇게 미숙하고 불량한 우리를 어쩐단 말인가!
-오빠. 인생 망한 것 같아.
-이제 난 끝이다.. 끝.....
-아빠 때문에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쉬어보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또 발목 잡히고 살아야 하네.. 죽을까..
꽃다발도, 성대한 파티도 없는 임밍아웃. 좌절만 따라붙어왔다. 그러나 정정해 보자면 망할 만큼 고점으로 올라와본 적도 없는 인생이었으며, 제대로 인생이 시작했다!!라고 생각한 시점도 없었기에 끝이라고 할 것도 없음이요. 제대로 놀아보지도 쉬어보지도 못했다는 것도 투정이다. 놀만큼 놀았다. 다만 꼬리에 붙어있던 '부모(엄밀히 말하자면 아빠)'의 짐스러움이 곁들여져 있었기에 완벽하고 군더더기 없는 프리덤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거지 '나름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잘 놀았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학업-학업-취업으로 이어진 남편의 삶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임신으로 잃을 것도 끝장날 것도 망할 것도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그런 소박한 규모의 삶조차도 지켜내기 급급했던 상태였고 그마저도 와장창 뒤집혀버린다는 게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쩔 땐 아이에게 몰래 읊조리기도 해 보았다. 네가 찾아온 사람이 이토록 부모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일찍이 깨닫고 떠나간다면 다시는 너를 불러들이지 않을 테니. 이후로는 주제를 깨닫고 완고한 무자녀의 삶으로 방향을 틀어 하찮지만 위태로운 삶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내는 것으로 영혼을 소모하다 죽을 테니 나를 떠나도 괜찮다며. 그런 잔혹하고 매정한 말을 기도처럼 할 때도 있었다.
남편은 나만큼 절망적이진 않았으나 본인의 예상에서 벗어난 이 변수적인 상황은 다소 충격적인 듯했다. 그쯤 그는 '엄마는 내 맘 줘또 몰라!!!'를 슬로건 삼아 스스로의 알껍질을 폭력적으로 깨부수려 노력하던 질풍노도의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하였던 것 같다.
자식으로서의 자립도 아직이건만 부모가 된다니? 우리가?
다행히도 우리의 아이는 게임으로 치자면 , 폐급인 우리 부부의 머리채를 잡고 '하드캐리'하는 에이스였다.
임신 싫어. 출산 싫어. 육아 무서워. 이대로 살래 엉엉하며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노산에 빌빌대는 엄마의 멱살을 잡아 완전한 출산의 이른 그녀의 행보를 소개해볼까 한다.
임신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대가였을까. 아니면 앞으로의 고행을 위한 튜토리얼이었을까. 신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나의 임신기간은 고통이었다. 임신 7주 차. 배가 나오기도 전에 시작된 입덧. 지난 화에 구구절절 적어놨지만 한번 더 복습해 보는 이유는 내 불량한 임산부 시절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기 때문일까..?
무얼 먹어도 먹지 않아도 하루 종일 울렁거리는 속.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구역질을 해대는 통에 외출은 점점 힘들어졌다. 오죽하면 검색 알고리즘이 입덧중절이라는 단어에 봉착했을까. 실제로 입덧으로 중절을 했다는 글을 봤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이해를 못 할 단어의 조합이지만 하루 종일 울렁거림과 사투하던 나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그래도 아직 나는 입덧으로 살이 너무나 빠져 임신유지가 안 되는 정도는 아니니까..' 하며 그분과 그분의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16주 정도면 대부분 나아진다는 주변의 위로. 딸의 입덧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엄마는 네 명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입덧은 딱 한 번이었단다. 초반에만 잠깐 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는 말이 한 줌의 희망이 되었다.
'그래! 엄마가 되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지!'
나는 꾸역꾸역 산모요가를 다니고 태교로 리본공예를 배우며 막달까지 뭔가 하려고 버둥댔다. 언젠가 입덧이 멈추고 우아하게 태교를 할 날을 기대하며 말이다. 그러나 38주 7일. 아이를 낳으러 가는 차에서까지 입덧을 하고 격한 구역질로 인한 실금으로 기저귀까지 차야 하는 신세가 될 줄 알았다면. 임신바우처로 나온 지원금을 입덧약을 처방받는데 모두 사용할 줄 알았다면.. 희망을 갖고 임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불식 간에 불행을 처맞는 삶을 겪어내야 했던 나는 늘 불안했고 미래의 불안요소는 미리미리 치워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평온한 삶이 이어질수록 작은 고통에도 많이 아파했고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던 위태로웠던 그 시절.
나의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스며드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모든 고통을 미리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입덧이 심해지거나 코로나로 온몸이 불덩이지만 약을 못 먹는다거나 환도 선다로 극심한 골반통, 갑자기 늘어난 체중으로 가뜩이나 약한 무릎과 발바닥이 내려앉으며 거동이 불편하게 된다던가 할 때마다 때때로 '아이가 유산된다면'을 상정하곤 했다. 마치 아빠의 치매를 겪으며 '아빠가 죽는다면'을 상정하던 때처럼 말이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것을 회피할 유일한 수단을 상상하며 찰나의 위안을 삼는 것이 나의 버릇이자 생존본능이기도 하다.
한동안 유명맘카페의 '임신/출산/육아우울증'게시판이 내 즐겨찾기 1번일 시절이 있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는 나도 사랑하는 엄마들로 가득한 맘카페에서 홀로 외딴섬 같던 그곳의 분위기는 독특했다. 한두 칸만 내려가면 내 아이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 '엄마의 자식으로 와줘서 고맙다. 더욱 열심히 사랑하고 키워줄게'등등의 사랑의 편지로 가득한 게시판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곳은 가족계획에 없었는데 갑자기 생긴 둘째, 셋째로 인한 불안함. 출산 후 가족의 비협조로 고립되어 육아를 하거나 나처럼 맘대로 살다 자식계획 없이 임신을 했거나, 그래서 자식을 낳았거나, 임신기간 내내 행복했는데 낳고 보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거나. 혹은 내가 생각하던 육아와 현실육아의 괴리가 너무 커서 모든 걸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거나. 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나는 가장 격하고 어두운 글을 볼 때마다 그 글의 작성자의 '다른 글 보기'를 눌러 현재는 어떠한지를 확인해보기도 했다. 대부분 잘 지냈다. 대부분 아무 일 없이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어느 시절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어떠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다 비슷한 처지구나. 혹시 나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 이런 혼란한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몇 번을 지우며 적어 내린 글을 올렸다.
내 삶은 어떠했고 어떠한 사람이며, 이런 이유로 아이를 갖기 싫었으나 이런 이유로 임신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구구절절한 글에 댓글이 대여섯 개가 달렸는데.
그중에 딱 하나만 기억이 난다.
"10주 이내는 합법이니 후회 말고 빨리 지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