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불량한 임산부-3

가장 큰 장애물. 엄마라는 왕관

by 쪼북

3. 답정너


'저도 그랬어요. 괜찮아요.'


라는 답변을 바라고 있었나 보다.

황급히 게시글을 지워버렸다. 다른 댓글들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원하는 댓글이었을 확률이 높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위로해 주는 그런 곳이니까. 저 재수 없는 한줄기 비수 같은 댓글만 빼고 말이다!!

울컥하여 작성자가 쓴 다른 글 보기를 누르니 젖병 추천을 해달라 같은 평범한 육아 관련 문의글만 주르륵 나왔다. 보통의 나라면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게시판에 와서 우울한 산모들에게 저런 댓글을 달고 있을까. 그 기저엔 어떤 슬픔이 있을까. 본인은 후회를 한 것일까. 하는 다각도의 탐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쎄게 긁혀버려 그녀의 사정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혼자 씩씩대며 욕설을 지껄여도 속이 안 풀렸다.


"지는 애 낳아서 잘 키우고 있으면서 함부로 애를 지우라 마라야 재수 없게"


화가 났다.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아이의 생사여탈권을 논하게 한 것이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내가 아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게.


임신확인 둘째 날.

나는 남편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오빠. 미안하지만 난 아이를 낳을 용기도, 키울 용기도 없어."

남편의 태도는 임신을 밝히던 날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기복 없는 무덤덤한 말투.

"그래. 네 뜻대로 해. 난 괜찮아"

"내가 뭘 할 줄 알고..?"

"뭘 하든 괜찮아."


남편은 섬세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나를 다룰 줄 아는 것은 확실하다.

혼자서 불안에 침식돼서 냄비 속의 날새우처럼 이리저리 튀어대는 나의 뚜껑을 슬며시 덮어줬다.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을 거라고'

나에겐 그의 태도가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4. 가장 큰 장애물. 엄마라는 왕관


하지만 나는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응당 가져야 할 -산모마인드-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했다. 그렇기에 불량한 임산부라는 제목을 지어 글의 시작을 하였지만 불량하다기보다는 백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38주간 임신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그것이 나에겐 엄마였다. 문제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네 번의 임신을 했으나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하다. 그 시대에는 임신은 여성에게 자동탑재되어 있는 기능적인 디폴트값이었을 것이다. 낳을 수 있으면 낳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으니 네 번의 임신이 별스러울 건 없을 것이다. 엄마는 거기에 하나의 기능이 더 탑재되어 있었는데 바로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 가족을 일구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3명의 아이를 낳았던 전전 가정에서도, 나를 낳았던 전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들과 언니를 가졌을 때의 엄마는 내가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라 넘어간다. 그러나 나를 임신했을 시기의 그녀의 심리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바로 '족쇄'였다.

자식 셋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한 엄마가 아빠를 만났고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정말 싫었지만 '얼레벌레' 붙잡혀서 '얼레벌레'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전처의 딸과 노모가 딸린 이혼남과 어찌 얼레벌레가 가능했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지만 더 미스터리 한 건 임신이었다.

무슨 블루투스 전파 임신도 아니고서야 배 나오고 머리 벗어진 남자는 때려죽여도 이상형이 될 수 없다 외치던 엄마가 왜째서 아빠와 그랬던 것인지. 정말 아빠와 엄마 둘 사이에 사랑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내 출생의 기원이 궁금하여 집요하게 엄마를 추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워딩은 폭력적일 만큼 나에게 상처였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들어온 본인을 철저하게 남자의 욕구로만 대하던 남편이 아빠였다고.

그리고 나를 임신했다고.

환장할 일이다.


엄마는 아빠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본인의 힘들었던 삶을 번복하며 "너를 지우려고 산부인과 문턱까지 갔는데 못했다."라는 말을 한다. "근데 주수가 다 돼서 못해준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것은 자신을 그럴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상태로까지 내몬 아빠의 무능력함에 대한 토로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간 '널 지우지 않았으니 너같이 좋은 딸을 만나 행복하게 살지.'라는 애매모호한 평가까지도 곁들여졌다. 속없던 시절엔 그저 나에 대한 칭찬인 줄만 알고 좋아했지만 그 말을 정밀하게 오체분시 해보자면 이렇다.


너희 아빠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널 낳지 않았으면 아빠와 헤어져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난 너를 낳았고 너희 아빠에게 발목이 잡혀 나락인 삶을 살았지만->네가 이토록 잘 컸으니 널 낳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흐름에서 좋아할 만한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무척 가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낳아줘서 고마워'라고 대답하며 좋은 엄마라는 왕관을 씌워줬다. 엄마는 웃었고 우리의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이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내가 고맙다는 말 대신

"그럼 낳지 말지 그랬어 뭘 그렇게 바득바득 낳았어?"라고 되받아치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나의 탄생은 늙고 무능력한 남편과 그의 노모도 그녀가 짊어져야 할 몫임을 알리게 할 뿐인 것인데 그 틈바구니에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겠는가. 만약 내가 엄마의 삶을 답습했고 그녀가 의지하고 믿을 만한 기반을 이루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면 엄마는 다른 평가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결국 비참한 결과론일 뿐. 그러니 이 왕관의 주인은 엄마가 아니라 불청객으로 태어났음에도 잘 살아남아 부모를 부양하고 좋은 가정을 꾸린 딸인 내 것이어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쯤 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은 조금은 드라마틱한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알았다.

기어코 엄마에게 빼앗아 내 머리에 꾹꾹 눌러쓰고 있던 왕관이 사실은 불안으로 옭아매진 가시면류관이라는 사실을. 이것을 이어받는 순간 결국 엄마와 똑같은 고민으로 가슴을 친다는 것을.. 아이를 족쇄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나는 조금은 업그레이드되어 출고가 되었나 보다.

"내 아이는 절대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어. 절대 안 돼. 내가 지킬 거야. 제발 제발 뺏어가지 마세요."

어느 날의 새벽. 아랫배가 찌릿하게 아파와 화장실로 달려가며 나는 외쳤다. 빌고 또 빌었고 그렇게 아이를 받아들이며, 내 것이 아님을 확인한 왕관을 엄마에게 돌려주었고. 그렇게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홀로 오롯한 임산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약간의 불량함을 곁들인.


나를 임신함으로써 아빠에게 삶을 붙잡혀 나락으로 향했다는 엄마의 말을 바꿀순 없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나는 임신함으로써 엄마를 이해하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들을 용서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좀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다. 나의 아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부모도 구원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것이 나와는 다른 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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