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배변 시설에 대한 욕구는 비단 인간의 전유물만은 아니리라
쓰둥이들이 거처로 삼고 있는 남편의 회사 마당은, 비포장 흙바닥이다.
이 흙바닥은 건조한 봄에는 황사를, 비와 눈이 오는 여름과 겨울엔 질퍽한 진흙탕을 선사해 주니 이곳을 일터로 삼고 있는 인간으로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만, 고양이들의 입장에서는 호재였다. 밖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용변을 보길래 이렇게 흔적도 없지?라는 궁금증이 생길 때 즈음, 나는 보게 되었다. 양남이가 수돗가 근처 뒤편의 풀숲에서 용변을 본 뒤 바닥의 흙을 야무지게 파내어 덮는 모습을.
딱히 눈에 띄지 않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인데, 그들은 과연 착실하게 본능대로 잘 싸고 잘 덮고 있었으니 '차라리 흙바닥이라 다행이구나'하는 호구적 마인드로 우린 기꺼이 마당을 내어줌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옆 땅에서 파밭을 하시는 비닐하우스 주인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우리의 삶을 바꿔 놓게 되었으니..
“고양이들이 자꾸 비닐하우스에 들어와서 똥을 싸!! 똥만 싸면 모르겠는데 씨앗을 다 흩트려놓고 엉망으로 해두고 가니 이를 어쩌면 좋겠나”
민폐를 끼치는 것도 받는 것도 죽도록 싫어하는 대쪽 같은 성격의 남편의 표정이 잿빛이 되었을 거란 건, 굳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확실한 것이었다.
'파밭'
남편의 아버님이 회사를 운영하셨을 때부터 쭈욱 함께 했던 오래된 이웃. 딱히 왕래는 없었으나 종종 눈인사를 하며 지내던 사이였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그때가 생각나서 민망스러워져 턱을 긁적거렸다. 이야기는 원남이가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밭엔 개가 여러 마리 있다. 그중 한 놈이 목줄이 풀렸는지, 파밭과 우리 회사 사이에 세워진 철문 아래로 기어들어와 목격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꽤나 큰 덩치를 자랑하는 이 녀석은, 우리 회사 마당을 자기 집처럼 휘휘 돌아다니며 원남이 밥도 주워 먹고, 빅똥도 싸놓고 넉살 좋게 돌아다니다 남편에게 걸려 파밭으로 쫓겨나기를 반복. 이후에 별다르게 제재를 가하지 않는 듯한 파밭 -견주(할머니의 아들로 추정)-에 짜증이 난 남편은 파밭으로 달려가 오래된 평화협정(?)을 깨고 큰소리를 냈고, 그 후로 회사 마당에 더 이상 그 집 개가 목격되는 일은 없었다.
"개가 돌아다니다가 사람이라도 물면 어쩔 겁니까. 화물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쩔 거고요, 개 목줄 간수 좀 잘해주십시오!!"
‘개인이 제어해야 하는 소속의 동물이 남의 사유지에 침범하여 멋대로 돌아다니는 일’은 남편에게 있어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될 일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길냥이를 돌본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항상 변수와 부딪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고, 우린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단순하게 우리 회사-우리의 공간-에서 밥을 주는 것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수가 늘어나고 아이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며, 분쟁 가능성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우리의 소유'라고 하기엔 길고양이들은 지나치게 자유로웠으며 우리도 그들도 인정하지 못하는 삶이었고, 퇴근 후의 쓰둥이들의 사생활은 전혀 알 길이 없었으므로 양육과 책임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겐 조금 먼 이야기였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어쩌면 우리 회사에서 밥을 먹고 남의 회사에서 말썽을 피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기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원남이부터 시작된 길고양이에 대한 기조는 '불쌍한 고양이들,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였는데 할머니의 등장은 어느새 '우리 소유의 고양이들'이 되어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이다. 고양이에 대한 책임을 논할 때 우리가 다이렉트로 언급되는 것이 그러했고, 변론 없이 바로 숙여지는 우리의 고개가 그 증거였다.
다행히 파밭 할머니는 네다리 짐승이 돌아다니는 걸 어떻게 막겠느냐. 그러나 방법은 모색해 보아라.라는 식의 마일드한 입장이셨으며(때문에 우리 쪽이 굉장히 민망해져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개껌이라도 하나 들고 갈걸..) 알고 보니 부상당한 길고양이 한 마리를 거둬 애지중지 키우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사건(?)에서 보여주던 남편의 꼿꼿하고 대쪽 같은 태도는 다소 물렁해졌으며 주기적으로 한 번씩, 한 손에는 개 간식을, 한 손에는 사람 선물을 들고 파밭을 종종 방문하게 되었다.
'시간을 벌어보자는 거지'
가끔 두 땅의 경계에 있는 철문이 활짝 열릴 때가 있다. 화물차를 잠시 돌려야 할 때나 수도를 끌어와야 할 때 등이다. 그럴 때면 파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닐하우스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누런 치즈들과 함께.
누군가가 보면 귀엽다고 사진부터 남길 장면일 수도 있건만. 나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리하여 결국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장면을 깨부수는 빌런 그 잡채가 되어야 했다.
“야 이 새키들아!!! 당장 안 내려와!!!”
내 목소리에 놀라 후다닥 내려오는 새키들중 반은 우리새키들이고 반은 본 적 없는 새키들이였는데 동네 고양이들이 소문을 듣고 여기로 다 모인 것 같았다. 할머니가 비닐하우스에 계실 때면 "아니 저새키들은 처음 보는 놈들인데..."라고 중얼대며 이 고양쉑들중 반은 우리와 안면이 없는 사이임을 넌지시 흘리는 둥의 액션을 취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홀홀홀 웃으셨지만 민망해진 나는 딱 울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비닐하우스로 우릴 초대하셨다. 파 몇 단을 건네주시며, 라디오 주파수를 좀 봐달라며 불러들인 것인데, 일하고 계시던 후끈한 비닐하우스로 들어서니 과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쾌적한 배변 장소에 대한 욕구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부드러운 흙이 가득 쌓여있고, 따듯하고 포근하고 안락한 온도와 습도의 흙밭이 쫙 펼쳐진 파밭은 고양이 입장에선 과연 핫플레이스가 될만했다. 거기에 일광욕을 직빵으로 할 수 있는 루프탑까지. 나라도 먼지 펄펄 날리는 딱딱한 흙바닥 따위 버리고 여기로 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각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의 생각도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닐하우스의 완벽한 안락함에서 빠져나오자, 콧구멍에 차가운 바람과 꽂히며 멘붕이 왔다. 이 초대박 핫플을 무슨 수로 이겨?
한창 이문제로 회의를 할 때 마당 구석에 수영장 만한 크기로 화장실을 짓고 모래를 부어 초 거대 화장실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날씨에 너무 취약했으며, 비닐하우스의 대항마로 만들어내기엔 너무나 열악해서 보류되었다. 차라리 쓰둥이들을 해병대로 보내 훈련을 시키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파밭을 방문해 보니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웬만한 대체제 가지곤 해결이 안 되겠구나.
안 보고 안 들었으면 쭉 몰랐겠지만, 이미 보고 들어 버린 이상, 우리 부부는 쓰둥이들이 매일밤 파밭을 파헤치며 똥을 싸재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사로잡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대로 지속적인 피해를 끼치며 살 순 없는 노릇. 또한 하나의 변수는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낸다. 누군가가 이 말썽쟁이들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로드킬을 당하거나 했을 때를 상상해 보면 생각보다 괴로웠고 불안해졌다. 더 이상 가벼운 책임감 운운하며 초연해질 수 없는 입장임을 인정해야 했으니 그들은 우리의 삶에 어느새 불쑥 자리 잡아 너무도 큰 존재가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남편의 결심이 섰다.
“땅을 사자, 그리고 저놈의 새끼들 몽땅 데리고 가자.”
쭈욱 회사 부지 이전 계획은 있었으나 너무나도 큰 프로젝트라, 좋은 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쉽사리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터였으나, 더 이상 지지부진 미룰 것만은 아니라는 마음에 불씨를 피운 건 쓰둥이들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9마리 고양이들 덕분에 땅을 사게 되었고 다음해 봄 , 이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