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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Nov 15. 2022

꼬맹이와 요미

저 누런 고양이의 신이 이제 그만 보내주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다


프린스 귀동



귀동이의 아깽이 시절을 떠올리자면, 기름때 가득한 창고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앉아있던 녀석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오직 한 마리!로 태어나 젖꼭지 6개를 모두 차지하고 골라가며 먹을 수 있는 귀한 외동이었지만 아웅다웅 물고 뜯고 할 형제 없이 늘 혼자였기 때문에 귀동이는 사회성 발달이 조금 더딘 편이였다. 즉 더럽게 까칠했단 말이다. 그래서인지 양자와 양남이만(아빠로 추정되나 확실치 않음. 도무지 이 아이가 아빠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음) 따라다니는 통에 열심히 사료와 이유식을 나르는 인간들은 조금 무안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한 번만... 한번 만 실컷 만지고 싶다 저 오물거리는 노란 털 덩어리를..'


귀동이의 매몰찬 태도에 오기와 욕망에 휩싸인 나는 마실 나온 양자가 보이면 이때다! 하고 아주 비싼 캔을 몰래 따서 혼자 남아있을 귀동에게 환심을 사려 창고로 향하였으나, 귀동이는 늘 쉽지 않은 아기고영이였다. 몸무게 좀 재보자 하고 들어 올리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통에 코가 샐쭉해져 창고로 들어선 양자와 눈이 마주쳐 머쓱하게 내려놔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유식을 접시에 까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웅냥냥냥'하면서 챱챱대며 먹는 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고 행복이였으니 귀동이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봄날의 고양이가 맞았다.




늘 혼자 창고에서 시간을 보내는 귀동.


귀동이는 무럭무럭 자라 마당에 진출하였고 , 혹시라도 변수적인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고양이들끼리는 미리 인사를 나누었는지 귀동은 별문제 없이 무리에 흡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접종을 하고 온 다음날이었다. 아침부터 깨금발을 하고 돌아다니는 귀동을 발견했고 '접종 부작용' , 혹은 '골절'아니냐며 온갖 설레발을 치며 병원으로 달려가 세상 심각하게 의사에게 우리 귀동이 살려달라며(?) 외치는 우리 부부에게 의사는 약간은 맥빠지는 표정으로 "벌에 쏘였네요"라며 너무나 쉽게 앞다리에 박힌 벌침을 쏙 빼주더니 귀를 슥슥 닦아주고 귀가 조치.를 시켰다. 그렇게 귀동이는 우리 부부와, 고양이들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명실공히 노랑둥이 리퍼블릭의 '프린스'로 군림하였다.


벌침 뽑으러 온 귀동










신데렐라 등장



봄 고양이 귀동이가 아깽이티를 벗고, 청소년 묘로 거듭나던 그해 여름. 또 한 마리의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아무래도 주변 고양이들의 네트워크에 우리 공장이 호구 맛집으로 등록이 되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쫓아내기 딱 가슴 미어지는 '3~4개월령의 어린 고양이' 만 들이닥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 사이사이 성묘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그렇게 못 보던 성묘들이 목격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두남이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나타나곤 했기에, 아무래도 두남이가 중간에서 필터링을 하여 어리고 약한 아기 고양이들만 받아주나 보다. 하는 식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이번에 목격된 건 어린 삼색 고등어였다. 나이는 귀동이보다 조금 어린 느낌의 암컷 고양이였는데, 경계심이 보통이 아니라, 좀처럼 목격하기 힘든 재질의 스텔스 고양이였다. 특이하게도 이 녀석은 귀동이가 여자친구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녔는데,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왕자에게 간택된 신데렐라'같다며 킬킬거렸다. 솔직히 이쯤 되니 이제 될 대로 되라지. 오는 고양이를 어찌 막을쏘냐. 정신을 반쯤은 놓은 상태였던 것 같다. 우리의 자포자기 속에서 얼결에 패밀리가 된 고등어 신데렐라 냥이에겐 '요미'라는 이쁜 이름이 지어졌다. 성은 귀동 '귀'씨다. 귀둥이에게도 세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도 요미랑 붙어서 꽁냥대는 통해 귀동이는 개월 수가 되자마자 남편에게 이끌려 돈가스를 먹고 와야 했다.(TNR을 했단 의미다)



이로써 양자.양남.양평.양양.뚜기.두남.귀동.요미


원남이로 한 마리로 시작된 호구 짓이 2년 만에 여덟 마리로 불어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제 정말 더 이상은 naver.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공장문을 다 막아두고 밥을 주지 않는 수밖에 없으니 말처럼 쉽지 않다,

저 누런 고양이의 신이 이제 그만 보내주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우리에게 방문했고, 그 고양이가 우리의 마지막 길냥이가 되었다.




꼬맹이 등장



치즈 냥이였다. 눈곱과 코딱지가 덕지덕지 낀 아주 작고 조그마한 치즈 냥이


"어어어.. 쟤 걸음걸이가 왜 저래??"


이 녀석은, 요미가 등장한 시점에서 약 두 달 정도 뒤에 나타났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10월 즈음이었던 듯하다. 뉴페이스가 한 마리씩 나타날 때마다 "야 이 씨 우리 주옥 된 거 같아 어똫게해!!"라고 울먹대던 남편의 온도가 이 녀석을 소개할 땐 사뭇 달랐다. 

"얘는 곧 있으면 죽을 거 같아.."

뇌 쪽으로 이상이 있는지, 일자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게걸음을 걷는다. 속도가 좀 붙을라 치면 이내 중심을 잃고 나뒹굴기 일쑤였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이구.."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 녀석은 지금껏 본 뉴페이스들과는 결이 좀 틀렸는데 쭈뼛쭈뼛 설설 눈치만 보다가, 사람이 안 보는 틈을 타 허기를 채우던 평범한 고양이와는 달리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본인의 주둥이와 밥그릇밖에 없다는 듯, 사료만 부어주면 어디선가 튀어나와 제대로 가눠지지도 않는 목을 까닥이며 성묘들 머리통 사이를 비집고 전투 식사를 했다. 애매하게 작은 몸집이 못 먹어서 작은 건지, 어려서 작은 건지 가늠이 안될 만큼 앳된 얼굴의 치즈 고양이는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4년 전 하늘로 보낸 우리 둘째 고양이 하니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이 아이에게 "꼬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올 때마다 밥을 잔뜩 먹여 보냈다.


배가 물봉다리마냥 불룩하게 차오를 때까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밥을 먹는 꼬맹이를 보고 있으니, 군식구가 불었다며 투덜거리는 게 죄스러울 만큼 그 녀석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집착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어설픈 몸짓에 고양이들도 살짝씩 피하는 눈치였지만 꼬맹이는 당당했다. 그런 꼬맹이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밥그릇에 캔과 사료를 듬뿍 넣어주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곧 죽을 것 같이 비실거리던 꼬맹이는 굳건하게 버텨 쓰둥이와 함께 새로운 겨울을 맞이했고, 우리는 9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이사를 결정했다.



비리비리 꼬맹이
꼬맹이와 완전체 9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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