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자인가?
20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인 나이이겠지만
나는 겉과 속이 모두 상한 채 집안에 틀혀박혀사는 삶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야 했었고
그래서 대학진학이 아닌 취업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19살에 첫 직장에 취업을 하고 20살의 반절 역시 직장에서 보내왔다.
하지만 결국 나는 20살 고졸 퇴사자, 일하지 않는 백수이다
집에 틀어박혀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회사에서 생긴 자기혐오는 더욱 심해져 갔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쓰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자신들의 도전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 걸 보고 있을 때마다 집에 틀어박혀 사는 나도 이런 거라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지만
자기혐오에 빠져있는데 내 얼굴을 보면서 영상을 찍는 거부터 불가능하다 생각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자기혐오가 아니더라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상과 얼굴을 평가하는 걸 나는 견딜 수 없는 걸 알고 있다.
사실 회사를 1년을 버텨보려고 했었다.
1년을 다니면 나라에서 돈을 주는 사업을 학교에 다닐 때 신청해 두었다.
솔직히 버티라면 버틸 수도 있었다, 만약 회사에서 1년을 버텼다면
난 더 망가져갔을 것 같다.
난 겁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도 귀신도 무서워하고 큰 소리를 들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패닉상태,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 이전에는 우울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이 오지 않아 불면증 약을 처방하러 간 정신과에서
내가 불면증이 아닌 우울증이라고 알려주었다.
13살 때부터 우울증 약을 달고 살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더욱 심해지고 결국 담임 중 한 사람은
우울증이 공황장애로 번지게 해 주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우울증은 공부 잘하는 애들이 걸리는 병이다."
그 담임은 그 말을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나를 비웃으며 말하였다.
문득 이 기억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면 기억이 참 잔인하게 느껴진다.
잊고 싶은 건 더욱 선명하고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 같았다.
그 담임 덕분에 도움이 된 적도 있었다.
무슨 일을 겪어도 그때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이젠 교사도 아닌 그 사람, 당연히 근황 따윈 궁금하지 않다.
남들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을 학창 시절이 난 아팠던 거에
복수로 하고 싶지고 않고 , 관련 일로 엮이고 싶지도, 그냥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던해지고 싶다.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원인은 자기혐오였다.
고3 19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난이라는 현실에 남들보다 많이 일찍 취업한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많이 혼나고, 웃고, 배웠다.
같이 입사한 친구이자 동기들은 하나, 둘씩 나가버렸고
선배들 역시 퇴사를 선택하였다.
누군가 나가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그건 당연하거다
내 밑에 들어오는 사람이 늘 수록 부담은 커져갔다.
난 일찍 사회에 들어온 건데, 원래라면 난 책상에 앉아서 국어,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후배가 실수라도 하면 책임은 나의 몫이었다.
내 실수는 더욱 크게 혼이 났고 "입사한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못해"라는
말은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말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걸 모른다고 했을 때 왜 모르냐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항상 소품 정리 하던 사람이 대본도 본 적 없는 연극무대에 서게 되면
대사 실수가 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게 용서가 안 되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점점 혼이 날 수록 몰라도 묻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실수해서 혼이 나면 "죄송합니다" 이 말과 잠깐의 화풀이만 견디면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돌아가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 보니 완치한 줄 알았던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였다.
토요일 저녁에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건 상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세게 들리고
심장이 박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린 정도로 거세고 빨랐고
이유 모르는 흉통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목소리도 갈라져서 나왔지만 나는 웃으면서 일을 했다.
손이 떨렸지만 반대손으로 손목을 잡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롭게 웃었다.
탈의실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지만 오늘 너무 발이 아팠다는 말로 웃어넘겼다.
회사에서 나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긴장상태로 온몸의 신경이 날이 서있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라는 자기 최면으로 잠에 들었다.
하지만 괜찮아 질리는 없었다.
출근 전부터 공황증세는 시작됐고 일하는 순간에도 회사를 나온 순간에도 공황은
지독하게도 나를 따라다녔다.
그럴수록 증상을 숨기기 위해 가식적인 웃음만 늘어났다.
결국 얼마 없는 선배한테 그런 모습이 소름 끼친다는 말을 듣고
나 자신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섣불리 그만둘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돈....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돈이라는 사슬에 발목이 묶여 그만두지 못하고
공황장애 증상이 점점 심해져 가는 걸 알면서도
나 자신이 썩어 문 드려지는 걸 외면했다.
나중에 치료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지독한 자기혐오와 이건 내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지금 그만두면 갈 곳이 마땅히 없다는 생각으로 잘못되는 걸 알면서도 버텼다.
차라리 고3 때 아무 곳이나 수시를 넣어서 붙었다면 3월 전까지만 회사를 다니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던 거 같다.
이미 친구는 그런 방법으로 현재 유아교육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1년 정도 늦어도 괜찮을까? 이게 대학을 가고 싶지만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가뜩이나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는데 내가 과연 새로운 인간관계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퇴사를 결정한 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혼이 나는 건 잠깐이었다.
하지만 화풀이는 더욱 버티기 힘들 정도로 잦고 심해졌다
상처받기 싫어서 더 큰 아픔을 나 자신에게 입혔다.
어릴 때 정신과에서 혹시라도 자해가 하고 싶으면
손목의 고무줄을 당기라는 말이 기억이 나서
손목의 고무줄을 미친 듯이 떙겼다
너무 많이 떙겨 고무줄이 먼저 끊어지기도 하고
서서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모든 게 무미건조했다, 머릿속에는 기쁨, 슬픔이 잊힌 지 오래였고
주변을 보고 웃어야 하는 걸 파악해 웃었다.
뭔가 공허했지만 상처는 덜 받게 되어 이것도 나쁘지 않았던 거 같았다.
세상은 흑백으로 보이는 것 같아 눈이 아프지 않았고 감정소비는 하지 않게 되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버릇처럼 힘들어질 때마다 고무줄을 당겨 손목이 얼얼해져 갔다.
그러다가 손목에 멍이 든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퇴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