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도 하는 사회생활

금방 사라질 이방인이라서

by 뮤리엔

퇴사를 결심하고 회사에 퇴사의사를 알리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내가 일한 회사는 서울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었다

아직 고졸도 아니고 당연히 대학조차 안 들어간

내가 턱이 높은 곳에 들어왔을 때도

나를 보는 시선은 금방 이곳에서

사라질 사람이었다.

[어딜 가나 텃세는 있다] 이 말은 맞는 말인 거 같다

같이 입사하여 다른 부서에 배치된 친구는

대학도 안 들어간 고졸 그 이하라서 무시한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열심히 해서 이겨내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그 친구는 대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스스로 헤쳐나갔다.


퇴사면담을 하러 과장님과 독대하여

퇴사의사를 밝혔을 때 과장님은 나를 잡았다

자기가 추구하는 호텔리어

좋은 호텔리어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게 바로 나다

이런 식으로 날 다시 회유하려고 하셨지만

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과장님께서 보신 내 모습은

어릴 때 연기를 배운 적이 있어 억지로 웃는 걸

진실된 서비스 미소로 착각하신 것 같다.

한번 거절당하니 두 번째 거절은 더욱 쉬울 것 같아

정신과에서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서를 냈다

돌아온 대답은 쉬다오라는 말이었다.

말은 쉽지만 과연 쉬다 올 수 있을까?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한데

내가 쉬어도 괜찮을까?

만약 쉬더라도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그 시선을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나는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웃었다

나의 초중고를 함께 했던 것 중에

[나의 히어로아카데미아]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작중에서 한 말 중

"세상에서 웃는 사람이 가장 강하다"

이 말이 유독 가슴 깊이 남았다.

나에게 대놓고 적의를 표현해도

애써 웃어넘겼다.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계속 웃더니

먼저 그만두었다.

하지만 안 통하는 사람도 있었다.


앞뒤 사정을 모른다는 건 참 좋은 핑계 같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건이다.

4월 2일 조식 때였다

그날은 유난히 손님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외국인 할아버지 손님께서 나에게

오렌지가 없다고 채워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주방에 전달하였고

한 10분쯤 지났는데도 채워지지 않자

그 외국인 할아버지 손님은 나에게

영어로 욕을 심하게 하였다.

알아들은 말로는

"What the fuck"

"my orange is ten minute"

순화해서 이 정도였지만

영어로 잘 못 알아들어도 알 정도로 심각한

욕을 나에게 퍼부었다

생전 처음 듣는 영어 욕에 나는 아무 셰프님을

붙잡고 "제발 오렌지 좀 빨리 채워주세요"

"손님이 기다리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정작 그때 아무 말도 없었지만

조식이 끝나고 나는 선배한테 불려 가서

한참을 혼났다.

주방 쪽 셰프님께서 내가 싸가지가 없다고 하였다

그 셰프님은 주임님이었고 선배는 앞 뒤 사정도

물어볼 생각 없이 나에게 질책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그뿐이었다.

그 셰프님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를 볼 때마다 어깨빵을 치고 갔다.

주방에 있는 친구에게 한탄을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말은 "그 사람은 원래 그래" 이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살짝 그 셰프님이 불쌍했다

얼마나 힘들게 버텼으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까?

살짝 동정심리 들기도 했지만

지속되는 어깨빵에 그 마음은 말라버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불합리한 순간도 많았다

갑자기 과장님께서 학교 전공이 컴퓨터라는

이유 만으로 서류정리와 여러 가지 작업을 시키고

선배들은 왜 네가 먼저 그 일을 하냐고

따가운 질타를 받았다.

제일 서러웠던 순간은

나에게 1시간 안에 하라고 한 일은 하지 못해

일주일 동안 틈만 나면 혼났을 때

다리를 다친 후배가 그 일을 8시간 정도 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 후배는 8시간 동안

내가 한 시간 안에 했던 일도 다 하지 못했다.

하지만 혼나는 건 나였다.

내가 한 시간 안에 끝나면 되는 일을 왜 하지 못했냐는 대답과 함께 나는 있던 정도 없던 정도

다 떨어져 나가 버렸다.

그리고 제대로 결심하여 퇴사면담을 하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있던 일을 다 토해냈고

난 하루 만에 퇴사가 승인되었다.

나머지 근무도 다 휴무였고 하루 만에 모든 퇴사절차를 밟고 1년 조금 안된 시간의

호텔을 떠났다.


떠나는 순간에 후련하지도 미련도 있지 않았다

그냥 이제 편해지겠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퇴사 소식은 주변의 아주 최소한에만 알렸다.

그리고 집에만 틀혀밖혀 고생하고 상처 입은

몸을 달래주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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