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구치는 장벽과 비어 가는 요람
이전 글들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 세대가 처한 경제적 현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제적 압박이 초래한 가장 거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는 무엇인가?
미디어는 2030 세대의 '빚' 문제에 집중하지만, 데이터는 더 무서운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2030 세대의 빚은 '증상'일뿐, 진짜 '질병'은 이들이 다음 세대의 재생산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 글은, '합계출산율'이라는 연간 지표 뒤에 숨겨져 있던 '분기별 일반출산율'의 디테일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저출산'이 2015년 'PIR의 절벽'과 함께 어떻게 구조적으로 붕괴했는지 살펴본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합계출산율은 연간 데이터이고, 연간 데이터는 너무 느리다. '합계출산율'은 이미 벌어진 참사를 뒤늦게 보고하는 '사후 보고서'에 가깝다. 더 빠르고 정밀한, 분기 데이터를 봐야 한다.
아래 차트는 분기별 'PIR(서울지역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 빨간색)'과 '일반출산율(가임여성 1천 명당 출생아 수, 파란색)'입니다. 이 차트는 2015년을 기점으로 두 개의 선이 어떻게 정확하고 잔인하게 엇갈리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PIR(Price to Income Ratio, 주택가격 대비 가구소득 비율) 수치는 KB부동산 통계를 인용했으며, 이는 KB국민은행 아파트 담보대출 실행 시 조사된 '담보평가 가격의 중윗값'임.
이 차트는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ㆍ2008-2014년 (안정기): PIR(빨간 선)이 7~8배 사이에서 등락을 반복할 때, 일반출산율(파란 선) 역시 11~13명 수준에서 안정적인 계절적 변동(1분기에 높고 4분기에 낮은)을 보이고 있다.
ㆍ2015년 이후 (발산기): 2015년 1분기를 기점으로 PIR이 7.6배에서 가파르게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거의 정확히 같은 시점, 일반출산율은 이전과 같은 반등에 실패하며 역사적인 하락 추세로 진입한다.
차트는 2015년 1분기 PIR이 폭등하고 출산율이 붕괴하는 '변곡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이 지점을 '방아쇠'로 만들었을까?
2014년 하반기 정부는 LTV(70%)·DTI(60%) 규제 완화를 단행했고, 2015년에는 기준금리가 1.50%까지 인하되며 유동성 공급이 확대되었다.
이 정책적, 통화적 변화가 시장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위의 그래프를 확대한 아래 데이터 표가 보여준다.
1. PIR의 반등: 2015년 1분기(7.6배)는 PIR 상승 직전의 마지막 저점이었다. 유동성 공급에 힘입어 PIR은 불과 1년 만인 2016년 1분기(8.9배)까지 폭등하며 본격적인 상승 추세를 시작한다.
2. 출산율의 붕괴: 일반출산율은 2015년 1분기(11.8명)에 계절적 반등을 시도했지만, 이는 '14년 1분기(12.0명)'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이 11.8명이라는 수치는, 이후 8년간 단 한 번도 회복하지 못한 '마지막 고점'이 되었다.
'PIR의 절벽'이 시작된 순간, 출산율의 붕괴도 함께 시작된 것이다.
2015년의 변곡점이 'PIR의 절벽'을 만들었다면, 그 절벽이 왜 2030 세대에게 '불공정한 게임'이었는지 2017년 이후의 2030의 소득 데이터와 결합하여 증명한다.
'PIR'이라는 비율이 아닌, 2030 세대의 '절대 소득(월급)'과 이들이 마주한 '절대 주택가격'의 증가율을 직접 비교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2030 세대의 소득과 서울의 주택가격의 상승률은 아래와 같다.
ㆍ30-34세 중위소득 (월): 265만 원 → 323만 원 (21.89% 증가)¹*
ㆍ25-29세 중위소득 (월): 213만 원 → 275만 원 (29.11% 증가)¹*
ㆍ서울 중위 주택가격 (연평균): 4억 6,375만 원 → 8억 4,062만 원 (81.27% 증가)²*
¹*통계청 - 2018~2023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 보도자료
(2017년 데이터는 2018년 자료에 언급된 데이터 사용)
²*KB부동산 PIR 통계 출처
결혼과 출산을 가장 활발하게 고려하는 30-34세의 월급이 약 22% 오르는 동안, 이들이 사야 할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81% 이상 폭등했다.
주택가격의 상승 속도가 소득의 상승 속도보다 약 3.7배나 빨랐다.
2017년=100으로 기준점을 맞춘 증가율 차트를 보면, 데이터를 더욱 확실하게 볼 수 있다.
ㆍ빨간선(서울 중위 주택가격): 2017년을 기준으로 홀로 181까지 치솟으며 압도적인 속도로 달아난다.
ㆍ초록선/파란선 (2030 중위소득): 각각 122, 129 수준으로, 빨간 선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 채 바닥에 깔려있다.
<<연체율 36%: 20대는 왜 100만 원에 무너졌나?>>에서 언급한 2030 세대의 빚은 이 거대한 붕괴의 과정에서 발생한 '증상'이었다.
2015년 시작된 'PIR의 절벽'과 2017년 이후 '불공정한 게임'은 2030 세대에게서 '노동 소득으로 미래를 그릴 기회'를 박탈했다. 이 절망적인 데이터 앞에서 2030 세대는 '가장 합리적인 계산'을 했다.
나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주거 비용을 평생 짊어지고 아이를 낳아 가난을 대물림하는 '비합리적 선택' 대신, '출산 포기'를 통해 현재의 생존과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저출산은 2030 세대의 '개인적 이기심'이나 '심리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PIR의 절벽'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실패 앞에서, 한 세대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본능마저 거세하며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가장 명백하고 고통스러운 '데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