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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 아라리오 갤러리] 이진주 | 불연속연속

by 앙떼뜨망
아라리오 미술관과 헷갈리지 않을 것 -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계단을 내려가야지 갤러리를 찾을 수 있다.


머리칼이 피부에 끈적하게 붙는 습한 늦여름,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고 안국역 아라리오 갤러리를 찾았다.

비가 예고도 없이 내리다가, 또 금세 멈추는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작년 키아프에서 알게 된 이진주 작가의 작품들은 꽤 오랫동안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그린 여자들은 피부에 난 솜털 하나하나 보일만큼 정교했지만 사실적이지는 않았고, 또 죄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 층으로 이동하며 관람한다. 따라서 심리적 여정이 시작된다!


지하 1층 - 어둡고 습한


보기 2022


이진주 작가의 피사체들은 간절하게 무언가를 보려고 하지만, 무언가에 눈이 가려져 정확히 상대를 파악하는 데에 실패한다. 하지만 세심하게 관찰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


비좁은 구성 2021-2023


또, 그녀의 캔버스는 늘 기본 규격이 아니다 - 규격과 모양이 각자 다 다르고, 그러므로 유일하다. 셰이프드 캔버스 (shaped canvas) 위에 그림을 그려, 평면적인 공간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한 장의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지만, 그들을 잇고 접고 연결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단골로 등장하는 모티프는 “막“이다. 인물들은 같은 공간에 아주 가까이 존재하지만 얇은 막에 가려져 서로를 만질 수 없다. 손을 뻗고, 소리를 지르고, 붉은 실로 연결해 보지만 결국 닿을 수 없다.


음각의 풍경 2025

또, 그녀의 그림에 자주 쓰이는 검은색 배경과 머리칼은 현실의 검은색보다 깊게 느껴진다. “이정배 (JB) 블랙”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남편이 안료를 배합해 만든 원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진주 작가는 정교한 동양화법을 사용해 수채화로 작품을 만드는데, 어느 방향에 광원이 위치하는지 불분명해서 엄청나게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1층 - 깨끗하고 환한

겹쳐진-사라진 2025

두 개의 기다란 직사각형 판에 갇혀있는 듯한 젊은 여성은 누군가의 발 위에 서 있다. 그녀의 이미 감긴 눈을 가리는 세 쌍의 손, 그리고 입을 간신히 가리는 가슴 앞의 돌덩이.


슬픔과 돌 2025 / 세상과 연결됨과 동시에 고유한 존재로 남아있는 나

“슬픔과 돌”은 마치 종교화를 연상시키는 크기와 기법을 보여준다. 상징성을 가지는 무화과, 푸른 실, 불타는 종이 등을 사용해, 잊을 수 없는 슬픔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3층 - 자세하고 연속적인

당신의 기도 2025
2시의 틈 2025
손을 사용한 작품들

이진주 작가는 손에서 얼굴만큼이나 직접적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표정을 숨기는 건 익숙하지만 손은 그보다 관리하기 힘들어서일까, 누군가에게 웃어주기는 쉽지만 만지기는 어려워서일까.


미완성으로 남겨진 세 군데의 빈 공간까지, 그녀의 손들은 마치 수화처럼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쫓아가는 2025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여성은 서로 닮았지만 서로를 볼 수 없다. 한 명은 현재의 무언가를 잊고 싶지 않은 듯 왼손을 따라 테두리를 기록하고, 한 명은 이미 다 거친 과정인 지, 녹아가는 얼음 조각을 한 손에 쥐고 놓지 않는다.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는 제3의 손은 누구의 것일까?


두 여자는 죽은 비둘기를 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슬픔의 돌 위에 서 있다.

그들의 뒤 - 동시에 앞에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빈 공간이 있고, 거기에는 서툰 트레이싱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미 가 본 길을 다시 걸어가도록 방관하는 또 다른 자아이다.


4층 - 결정적인

오목한 눈물 - 볼록한 용기 2025 / 환경, 정치, 종교적 이슈를 떠올리게 하는 조각들의 조합


이진주 작가의 작품세계는 일관된 동시에 심도 있고 다채로워, 하나의 테마로 정리하기 어렵다.

하나의 객체를 바라보는 수많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대 간 전해져 내려오는 가치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기억과 그 속의 무의식, 진실과 그 속의 거짓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보는 내내 아팠다.

나와 공존하지만 직면하기는 싫은 상처들이 떠오르는 그림들이었다. 무표정의 여자들이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간절하고 치열해 보이기까지 했다.


본다는 건 무엇일까? 바라봐진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요즘 잠에 드는 건 쉬운데, 잠의 옷깃은 자꾸 손틈 새로 도망가버린다. 새벽 세시에 눈을 뜨면 생각보다는 정신이 명료하다. 부모님이 깨시지 않도록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청계천으로 걸어간다.


자기 직전에 씹어먹은 멜라토닌 젤리 한 알이 소뇌 옆의 송과선에게 제발 다시 침대에 누우라며 간청하지만, 두 허벅지의 자극은 가뿐히 그 외침을 무시한다. 계속 달리다 보면 멜라토닌의 나른함과 도파민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온몸이 나른해진다. 그때쯤 하늘이 조금씩 밝아진다. 태양이 기지개를 피기 시작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신도 잠들었을 이 시간대라면 청계천이 온전히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보다 새벽의 청계천은 살아있었다.

새벽 두 시쯤에는 나, 아침잠이 없는 철새 몇 마리,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로 미친 듯이 감정을 쏟아붓는 - 아마 곧 집에 들어갈 예정인 - 고등학생 한 명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새벽 세네시가 되면 이미 은퇴하신 지 한참은 되었을 노인분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허접한 운동 기구에서 허리를 돌리기도 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일출을 향해 걸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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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아침잠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가로등의 빛을 받아 윤슬 흉내를 내는 강의 물결, 그 사이에서 보금자리를 찾은 운이 좋은 물고기들, 그들을 보며 입맛을 다지는 철새들. 수채화 물감을 떨어트린 듯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조금씩 맑아지는 하늘을 그들이 독차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봤다. 그는 혼자 강변에 앉아서 강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의 손을 떠나, 마치 버터를 칼로 가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강물로 가라앉는 돌들은 습관으로 인해 던져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돌덩이 하나하나를 그만의 어떠한 의도성을 가지고 던지고 있었다. 가라앉도록. 숨겨지도록. 강물의 흐름과 합쳐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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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봤다.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의 의미를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아마 정말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돌을 던지다 말고 그도 나를 봤다.

그도 내 시선의 의미를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아마 정말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진주 작가의 작품들 속의 "막"은 소통을 막지만, 동시에 각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는 서로의 진의를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근거하여 상상할 뿐, 실제에 다가가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보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바라봐진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불연속 속에서 연속적인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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