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추해야 깊은가: 예쁨의 정치학

[서촌 대림미술관] Petrat Colins - Fangirl 전시

by 앙떼뜨망

경복궁역 근처 대림미술관에서는 현재 서울에서 가장 "예쁜" 전시가 개최되었다.

35mm 필름 기반의 아날로그 질감, 소프트 포커스의 의도된 흐릿함, 몽환적인 파스텔 톤의 색채, 분홍과 반짝이와 소녀스러움의 결정체다. 셀레나 고메즈, 올리비아 로드리고, 구찌, 아디다스 등 세계적인 팝스타와 브랜드들과 작업한 콜린스는 현재 가장 트렌디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의 테마는 크게 세 가지로 특징된다.


1. 소녀성의 자화상: 타자 촬영을 통한 자기표현의 확장


그녀의 초기 사진들은 형식적으로는 자화상이 아니지만, 그녀의 프레임 속에 들어온 여자들의 불안, 흔들림, 부드러움 사이에서 그녀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다. 성장기의 흔들림, 자기 몸에 대한 자각, 어긋나는 욕망, 친밀성과 상처를 누군가의 일기처럼 친밀하게 엿보게 된다.

콜린스는 35mm 필름을 매게로 선택했다. 필름은 번지고, 초점이 흔들리고, 결국에는 퇴색된다. 우리의 소녀성과 마찬가지로.


Selfie (2013)

2. 기억의 이미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녀의 작품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단의 세대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흐리고 부드러운 사진의 질감은 우리가 로맨틱하게 왜곡해서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기억이 아닌 겪지 못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Coming of Age (2016-2017)

3. 신체의 불안: 소녀들의 자기 해체, 몸은 흐르는 정동의 매체


그녀의 어린 시절은 항상 불안정했다. 오랜 시간 병으로 분류되지 못한 채 단순한 감정 기복으로 여겨졌던 어머니의 양극성 장애와 함께 성장하며 본인도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그녀에게 신체란 감정을 담는 굳건한 통이 아니라 홀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파편화되며 하나의 기분만을 남기는 틀이다. 그녀의 걸리쉬한 작업물 뒤에는 항상 이런 씁쓸한 불안정한 감정이 뒷받침된다.


24Hr Psycho (2015-2016)
Baron (2019) - Why be you when you can be me?


이 전시를 보고 나오며 처음으로 들었던 감상은: "너무 예쁜데 깊이가 없는데?"였다. 그러다 잠깐 멈추고 생각해 봤다: 왜 나는 이 전시가 얕다고 느꼈을까?


근대 이후 예술계에서 팽배한, 아름다운 것은 속이 비어 있고 추한 것은 진실을 드러낸다는 믿음은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예술사는 항상 미, 아름다움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의 정치적인 역사였고, 그 속에서 항상 미의 기준의 바깥으로 밀려난 감각들이 존재했다. 그 추방된 감각들은 "추함"으로 정의되었다. 근대 예술은 오히려 그 추함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고전 미학에서 추함은 완벽한 것에서 벗어나는 결함이었다. 18-19세기 낭만주의에서 추함은 깊은 감정, 인간의 불완전함이었다. 근대주의에서 추함은 사회적 현실이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미와 추의 경계가 무너졌다.

타부시되던 퀴어성, 여성성, 하위문화가 가장 트렌디한 주제들이 되고, 비규범적이고 예쁘지 않은 쇼크 요소가 현대미술의 곳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경계하고, 불편한 것에서 의미를 찾도록 학습된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 페트라 콜린스의 작업은 너무 예쁘다. 예쁜 소녀들의 뒷모습. 몽환적인 표정의 클로즈업. 셀레나 고메즈, 알렉사 데미 같은 예쁜 팝스타와의 협업도 이런 "가벼움"을 더한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방향으로 본다고 강조한다. 예쁜 것 -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그녀의 사진들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감각은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학습된 취향이라는 것이다.


콜린스의 작품들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예쁘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던 여성성, 부드러움, 소녀성의 예술세계로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버거가 최초로 제시한 개념인 "Male gaze (남성의 시선)"을 소녀의 시선으로 돌려내는 작업들을 매럴린 민터, 버니 로저스, 태비 개빈슨 등의 여성운동가들과 진행해 왔다.


기프트샵에 예쁜 기념품들이 정말 많다! 다들 구경하고 가시길!


예쁜 것뿐만이 아니다.

25살의 나이와 맞지 않아 포기한 취미들,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워서 버린 취향들이 그리워졌다.

오글거리고 짜치다는 우리의 판단은 예쁨의 저열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강제된 취향에 불과하다.


내 방 한쪽에는 내 "취향의 벽"이 있다.

각국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모아 온 "가장 내 취향"인 엽서들을 모아두었다. 오랜만에 가만히 그 앞에 서서 엽서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봤다.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다수가 왜 이렇게 진지하고, 추상적일까? 울고 있거나 노려보고 있는 그림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을까?


이번에 구매한 엽서가 있다. 소녀 두 명이 흰 옷을 입고, 흐려지는 테두리를 무시한 채 서로를 응시하는 사진이다. 예뻤다. 그림을 취향에 벽에 더했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 지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