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해. 근데 규칙은 알아

Goodnight and Go - Imogen Heap

by 앙떼뜨망

"예지야, 너 잘 때 잠꼬대 하는 거 알아?"

똥머리를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J가 물어왔다.


"내가 잠꼬대를 한다고? 그랬나."

모르는 척 대답했지만, 내 마음은 내밀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보통의 날 같으면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써도 다시 잡히지 않았겠지만, 이날만큼은 내가 꾼 꿈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장 가까운 친구더라도 J에게조차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 꿈만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겨울이 끝나가지만 추위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던 때에 C와 포천을 갔었다. 갓 일을 시작한 후였고, 갓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실체 없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 나를 지금의 이곳으로 이끌어 온 선택들이 과연 옳은 것들이었는지, 현재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될런 지... 지금 생각해 보면 기억도 잘 안 나는 회사에서의 사소한 사건에 나는 또 무너지고 있었다. 포천의 작은 베이커리 카페에서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하고 바보처럼 울었다. C는 내 눈물을 닦아줬다.


다 먹고 산정호수를 산책했다. 호수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녹음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에 꽝꽝 언 원형의 호수가 있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는 호수가 마치 펑키한 레코드를 담은 CD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 위에서 중학생 내지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아이스하키를 치고 있었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하키공을 이리저리 패스하는 둔탁한 탁음, 그리고 얇은 날로 얼음에 상처를 새기는 삭-삭- 소리가 멀리 있는 우리에게까지 들려왔다.

호수를 둘러싼 길가에는 한 아저씨가 엿을 팔고 계셨다. 커다란 글씨로 "행운의 로또"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읽기 어려운 한자로 "천상운집, " "만복운홍" 등의 믿기 어려운 약속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저씨는 갱엿, 땅콩엿, 참깨엿, 호박엿을 따위를 팔고 있었다. 포장된 행운을 판다는 개념에 이끌렸는지, 비범한 그의 자신감과 몇 시간째일지 모르는 긴 시간 동안 "자, 자, 평생에 한 번 나타나는 기회입니다 - 행운을 사세요, 복을 사세요!" 외치는 목청 때문인 지, 근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기운에 이끌려 아저씨 앞으로 걸어갔다.



아저씨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따르면, 길(吉)한 꿈을 꾼 날, A4용지에 빼곡히 적힌 로또 번호들을 차례대로 입력하면 복과 재산이 찾아온다.

"부적을 사면 액운이 없어집니다" 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그분을 믿고 기도하면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도 아니었다. 이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명제를 어떤 자신감으로 판매하는 것인가! "길한 꿈"이라는 변수로 0 또는 100으로 효과가 바뀔 수 있는 이 불명확한 약속이 인생과 닮아 매력 있었다.

나는 호박엿을 구매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또 힘든 날이 오면 눈을 감기 전에 꿈을 꾸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리고 꿈을 꾼 날에는 잘 곱씹어서 그 꿈이 뭐였는 지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가 주문이라도 건 것처럼 그날 이후로는 꿈 없는 깊은 잠에 들기 일쑤였다.




1년도 더 지난 일이다. 많은 게 바뀌었다.

살이 조금 빠졌다. 일에는 적당히 적응했다. 하지만 오래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C도 내 옆에서 없어졌다.


이별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우리는 매일 조금씩 이별한다. 의지했던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건강하신 부모님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하루씩 줄어든다. 우리가 알던 일상과도, 각자가 알던 "나"라는 개념과도 이별한다 - 가장 친했던 친구 한 명은 가정이 생겼고, 다른 한 명은 건강에 집중하게 되었고, J는 독일로 떠났다. 나는 새로운 꿈들이 생겼다.


내 생각에 이별이 아픈 이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포옹할 때마다 느껴지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지는 엄마의 척추. 그리 미국 유학생활 중 찍은 사진의 아이 같은 미소를 찾기 어려워지는 아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다급해지고, 자꾸만 시간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C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이상하게 초연했지만, 내 눈에는 그가 마치 백화점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다급해 보였다.


이별은 항상 아프겠지만. 그래도 바보가 되지 않는 규칙은 모두가 뻔히 알고, 그리고 아주 간단하다.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포천은 예뻤다. 그날 먹었던 커피도 생각보다 고소했다. 일은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순간이 좋았는데, 당시에는 왜 그걸 몰랐을까. 당시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이별이니까.



사실 그날 꾼 꿈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구름에 대한 것들이 아니었다. 비밀이지만 여기에만 적어본다: 그저 그때 당시에 간절히 바라던 -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었던 - 미래의 어느 순간이 스냅샷처럼 그려졌다.


길몽인 지 아닌 지 헷갈려서 로또는 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