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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Aug 11. 2023

우스워도, 무의미해도, 사랑해

고집쟁이의 영화추천 (11) :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제목 :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감독 : 우디 알랜

연도 : 1996년

러닝타임 : 1시간 41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뜬금없는 스토리라인에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사람, 조금은 허무주의적인 사람,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예상치 못하게 감동받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




나는 꽤나 쉽게 감동을 받는 편이다.

"라라랜드"의 오프닝 씬을 보며 오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같이 영화관에 갔던 엄마가 당황하셨던 기억이 난다. 노을 지는 LA의 주차장과도 같은 고속도로 중심에서 어렸을 적의 꿈과 현재의 희망,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독백을 노래하는 가사가 공감 갔다. 또 가장 개인주의적인 산업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임에도 그 바탕에는 순수한 무언가를 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각 잡힌 안무와 세련된 미장센이 아름다웠다.

내 장점이자 단점인데, 무엇을 보든 단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강조되어 보인다. 그래서 흔히 남들이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는 지점에서도 감동을 받는 것 같다. 가장 효과적인 예시는 다시 볼 때마다 나를 비정상적인 행복감으로 가득 채우는 이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이다.

얼마 전에 내 23번째 생일을 맞았다. 지금까지의 즐거웠던 생일들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 너무나 벅차고 먹먹하게 행복한 기분을 느꼈는데, 이 영화가 바로! 연상되었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고, 내레이터인 D.J. 주변의 가족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조금씩 풀어가는 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된다. 우디 알랜은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사건의 아이러니한 전개로 웃음을 유도하는데, 영화의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나도 모르게 캐릭터 모두에게 정이 가고, 감정에 이입이 되고,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고양된다. 스토리가 가벼운 동시에 엄청나게 심오하다.


최애 영화감독이었지만 더러운 개인사로 인해 더 이상 자랑스럽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우디 알랜 감독은 스스로 부유층 주인공 "조" 역할을 맡는다. 그는 파리에 사는 작가다. 여자친구 지젤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조는 역시나 현실 감각이 조금 부족한 좌파 부유층인 엑스-와이프 심리상담사 스테피와 그녀의 남편 밥에게 연애 상담을 받는다. (할리우드.. 춥다 추워...)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딸 D.J. 와 베니스로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아름답지만 남자친구가 있고 우울감을 느끼는 "본"에게 한눈에 반한다. 놀라운 사실은, 본은 D.J. 의 엄마이자 조의 전부인 스테피의 정신과 환자들 중 한 명이었다는 점! D.J. 는 엄마의 상담을 엿듣는 못된 취미가 있는데, 본의 취향부터 시작해 가장 내재된 깊은 두려움까지 아빠에게 전달해 버린다. 이 거짓에 기반해 본은 믿을 수 없이 자신을 깊게 이해하는 조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에는 그를 떠난다. 완벽한 남자를 찾았음에도 마음속의 구멍은 메울 수 없었나 보다.

조를 떠나는 본


조와 스테피 사이의 딸 D.J. 는 쉽게 설레고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아빠와 베니스 여행을 가서 만난 곤돌리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D.J. 의 언니 스카일러는 상류층 자제인만큼 재미없고 평범하지만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애인에게 8천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로 프러포즈를 받는다.

스카일러와 남자친구. 뉴욕에서 사랑에 빠지고 싶어진다

그런데 디저트 사이에 로맨틱하게 숨겨놓은 반지를 삼켜버린 이유로 6천 달러를 내고 다시 반지를 꺼내야 한다. 이 와중에 부모님이 추수감사절에 데리고 온 범죄자에게 처음 느껴보는 성적 끌림을 느끼고 갈등한다. 부모님이 범죄자를 초대한 이유는 그들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 그리고 모든 사람의 본질에 대해 최선만을 가정하는 나이브한 부유층의 멍청함 때문이다. (어머니 스테피는 경찰을 위한 강연에 가서 범죄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지중해식 식사와 자신들의 감옥을 꾸밀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락 없이 키스하고서는) 어땠어?
신기했어요... 한 번도 소시오패스와 키스해 본 적은 없어서
범죄자에게 끌리는 부잣집 딸


스테피와 밥 사이의 아들 스캇은 공격적으로 진보적인 부모님을 가졌지만 60년대 텍사스의 인종차별적인 할아버지만큼이나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졌다. 이에 밥은 유서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겠다고까지 이야기하며 실망한다. 그런데 어쩌다 MRI 검사를 해보니 스캇의 뇌에 종양이 있어서 성향이 보수적이었다. 종양을 제거하자 스캇은 다시 '정상인'으로 되돌아온다.


영화의 마지막에 피날레인 이 장면은 언제나 실패 없이 날 울게 한다. 알 수 없는 벅찬 고양감이 든다.

조와 전 부인 스테피는 파리에서 그들이 옛날 예적에 사랑을 시작했던 카페에 간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혼하게 되었더라? 잘 이혼한 것 맞겠지? 밥과 헤어지고 다시 너와 결혼한다면 어떨까?

이 질문들에 답을 주기보다, 우디 알랜은 두 남녀가 센강 부근에서 "다시는 사랑을 빠지지 않겠어"라는 노래에 맞춰 천천히 춤을 추는 것으로 답을 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10분짜리 댄스 씬이 연상되는 장면 하나에서 스테피는 마법같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이 영화의 다른 뮤지컬 넘버들과는 달리 과할 정도로 개인적인 장면으로 느껴진다. 백댄서 없이, 우스운 가사 없이, 대사도 없이 몸으로만 담백하게 진심을 노래하는 가사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우리에겐 폭풍이지만 남들에게는 소나기, 미래에는 여우비일 거야

당면해야 할 문제, 대답해야 할 질문이 있는 지금도 군데군데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우디 알랜은 삶을 가볍게 희화화하면서도 찬양한다.

병원에서 나오며 신나게 춤추는 유령들


삶을 진지하고 명확하게 받아들이기에는 그 흐름이 너무나 가변적이다.

명확한 인과관계는 무슨, 흐릿한 상관관계조차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내 생일 기간에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답고, 강하고, 현명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친구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좋은 사람은 가져서는 안 되는 고민으로 느껴서는 안 되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불과 2년 전이었어도 난 그 친구의 고민과 선택을 조용히 판단했을 것 같다. 그런데 1년 전의 내가 거의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을 떠올리니 가슴속에 친구를 향한 진정한 공감과 응원, 그리고 선택이 옳았기를 바라는 희망만이 남았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실패가 역설적으로 나를 더 포용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어쩌면 개인의 경험들은 그리 특별하고 개별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우린 모두 목표에 닿지 못해 절망해 봤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마음에 품어보았으며, 본인의 이득을 위해 도덕적으로 모호한 선택을 자행해 봤다.

당면할 당시에 본인은 아리게 피부로 느끼겠지만, 외부적 관점으로 봤을 때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삼킨 스카일러만큼이나, 본을 흥분시키기 위해 그녀의 목덜미에 눈치 보며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조 만큼이나 한심하고 우스꽝스럽다.

몇 년 뒤에 그 당시를 회상하면 흔히 말하는 "이불킥" 순간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현재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얼마나 진실되며, 강렬하며, 인간적이며, 아름다운가.


현재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올해의 생일은 그동안의 22번의 생일들에 비해서도 훨씬 벅차고 행복한 하루였다. 카톡창을 열어 편지를 쓰거나 선물을 보내는 잠시라도 정신없는 본인의 인생에서 눈을 돌려 나의 하루에 관심을 가져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스래 깨달았던 하루였다.

멀리서 봤을 때 심하지도 않은 소나기이고, 수년 뒤에는 여우비에 불과할 내면의 폭풍에 휩쓸려서 몰입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느꼈다. 손만 내밀어도 날 꺼내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진부하지만, 결국 답은 사랑이다. 나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멍청한 일을 저지르는 D.J.도, 조도, 스카일러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영화가 소중하다.

몇 년 뒤에는 유효하지 않아도, 남들이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어도, 지금 당장 소중하다면 고백하자 : Everyone says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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