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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Oct 02. 2023

이 차가움에도 젊고 어리석다는 것은

고집쟁이의 영화추천(13) : 프란시스 하 리뷰

제목 : 프란시스 하

감독 : 노아 바움백

연도 : 2014년

러닝타임 : 1시간 26분

국적 : 미국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 젊고 고민이 많은 사람, 가끔 길을 잃은 기분이 드는 사람, 외로운 사람,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 기승전결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 않아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사람




동양에서는 인연이라고 부르고, 서양에서는 소울메이트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며 짝꿍, my person, 터미놀로지가 어떻게 변하든 정의는 유사하고 욕망은 동일하다.


그 욕망을 프란시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  넌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도 그걸 알고, 그 사람도 널 사랑하는데 너도 그걸 알아... 근데 파티 안에서야... 그리고 너희 둘 다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넌 활짝 웃으며 빛나고 있어... 그리고 방 건너편을 쳐다보니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 거지. 그런데 - 그런데 그게 소유욕이나 정확히 성욕 때문은 아니야... 하지만... 그냥 그 사람이 이 인생에서 너의 짝인 거야. 그리고 이건 웃기고 슬퍼, 왜냐 하면 이 인생은 끝날 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이 인생은 공개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비밀 세계고 아무도 이 비밀을 눈치채지 못해. 마치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차원들이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다른 차원들을 인식할 힘이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거 - 그게 내가 관계에서 원하는 거야.


감독 노아 바움백은 현대적 뉴욕에 배경을 설정했지만 특이하게도 흑백 화면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의 바탕에는, 씨네필로 유명한 노아 바움백이 우디 알랜 선배님의 "맨해튼"과 누벨바그 형님들의 사운드트랙에서 영감을 받았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마초적이고 냉소적인 선대의 작품에 비해 이 영화는 바움백의 작품 치고도 부드럽고 관용적이다. 이는 바움백의 현 여자친구인 동시에 이 영화의 공동 작가이자 주인공, 그리고 최근에 큰 흥행에 성공한 "바비" 영화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으로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명확히 설정된다.

이 영화는 바움백의 시니시즘(특히 부유한 젊은 층을 대할 때)과 거윅의 인류애 사이의 선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다른 영화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미묘한 인상을 남긴다. 


27살의 프랜시스가 뉴욕에서 "으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친구도, 남자도, 아파트도, 돈도 모두 잃는 과정을 안타깝지만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프랜시스와 그녀의 단짝 친구 소피는 마치 고등학교 베프들처럼 습관적으로 서로에게 "I love you!"라고 외치는 룸메이트 관계이다. 처음에는 레즈비언 영화라고 착각할 정도로 가까워 보이는 둘이지만 사실 각자 남자친구가 있다. 프랜시스는 소피와 룸메이트 계약을 연장시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동거를 제안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하지만, 소피의 생각은 달랐다. 

한 명이 앞으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어릴 적 우정

소피는 다른 친구와 살기 위해 집을 비우고, 뉴욕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프랜시스는 파티에서 만났던 금수저 친구들인 레브와 벤지의 집에 들어간다.

우 레브, 좌 벤지

연애의 법칙이 그렇듯이, 프랜시스는 레브에게 호감이 있지만 레브는 초반에는 관심을 주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아파트로 돌아온다. 

반대로 프랜시스가 전혀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벤지는 자꾸 프랜시스를 장난식으로 찔러보며 은근슬쩍 호감을 드러낸다. 


와중에 프랜시스는 소피가 골드만삭스에 다니는 파이낸스 남자친구를 따라 일본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무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프랜시스는 마치 전 여자친구 SNS를 스토킹 하듯 소피의 일본살이 블로그를 염탐한다. 


그때부터 원래 일하던 무용단에서 해고되고, 절친과 관계를 망쳤으며, 뉴욕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프랜시스는 방황을 시작한다. 가족이 있는 새크라맨토로 돌아와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그들 중 한 명이 파리에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기 싫어서 충동적으로 1박 2일 동안 파리로 떠난다. 결정 과정의 대화도 흑역사 그 자체이다.


전 할 게 너무 많아요. 아마 프루스트를 읽을 것 같아요... 왜냐 하면 가끔은 무언갈 해야 할 때 해야 하잖아요. 뭔지 알죠?
프로스트는 꽤나 무겁죠.
네, 그런데 읽을 가치가 있다고 들었네요.
아니요, 책이 무겁다고요. 비행기에 들고 타기가.
음.. 전 아마도 먼저 프랑스어를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그다음에 프랑스어로 읽어야죠! (횡설수설)


도대체 파리에 1박 2일 동안 할 게 뭐가 있겠는가? 프랜시스는 전재산을 센강 옆에서의 산책에 낭비한 후 별 수확 없이 다시 새크라맨토로 향한다. 핸드폰을 켜보니, 파리에 있던 친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파리에 하루만 더 있었으면 그녀가 주최하는 멋진 모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다.

프랜시스는 자기에게 던져진 모든 기회를 쳐낸 기분을 느낀다.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는 프랜시스는 학부생활을 보낸 대학교로 돌아와 청소부 겸 잡일을 처리하며 무용 수업이라도 청강하려고 하지만 쫓겨난다. 그때, 우연히 소피와 마주친다. 완벽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피는 만취한 상태로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고 있다. 방황하는 것은 프랜시스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소피는 프랜시스의 기숙사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계획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소피는 남자친구에게로 간다고 쪽지를 남겨뒀다. 

문 앞에 소복이 쌓인 눈을 일찍 털어낸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 있지만, 예상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봄바람의 도움 없이 이미 얼어버린 문지방을 녹이기는 쉽지 않다. 


짧은 에필로그에서 우린 프랜시스의 미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프랜시스는 결국 무대에 서는 꿈을 포기하고, 대신 무용 선생님이라는 대체적인 목표를 이룬다. 그녀가 가르친 수업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석에는 소피, 레브, 벤지 그리고 스쳐온 다른 인연들. 소피가 자신의 영원한 소울메이트로 믿었던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프랜시스는 이제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신세가 되었다. 집 앞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풀 네임을 적어서 칸에 맞추려고 하는데 이게 웬걸, 이름이 다 들어가지가 않는다. 뭐, 어쩔 수 없지. 프랜시스는 꾸깃꾸깃 종이를 접어 가장 중요한 부분만, 부족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충분한 부분만 포함시킨다. "프랜시스 하"라는 문구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프랜시스 하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중성화시키는 과정 같기도 하다. 감정적이었던 사춘기의 나를 절망의 수렁에 빠트렸을 사건에서 긍정적인 각도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나를 한껏 고양시켰을 일을 조심스러운 경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독한 운명론자였던 내가 소울메이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인연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 같다. 이 관점으로 보면 프랜시스가 소울메이트로 믿었던 사람들이 한 명씩 배신하고 떠나는 어이없는 줄거리가 아니라, 그녀를 무너뜨릴만한 사건들이 결론적으로 그녀를 운명으로 안내하는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순간적일 것이라고 치부했던 것들이 영구해지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이십 대의 소용돌이. 이 영화는 "그래도 괜찮아"보다는, "어떻게 되었든, 춤은 춰야지!"의 메시지를 던진다.


마르가리타 잔 주변에 소금을 묻히면 단 맛이 강조되는 것처럼, 지금 느끼는 단맛도 오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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