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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Jan 05. 2024

뺑오쇼콜라를 하나 다 먹었다

고집쟁이는 교환학생(2): 파리에서의 첫날

The people Marais Paris 호스텔에서 눈을 뜨고 가장 먼저 검색한 것은 근처의 Boulangerie였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에 나와 약속을 하나 했다. 파리에서 처음 먹는 음식은 무조건! 뺑오쇼콜라여야 한다. 그리고 배가 아무리 안 고파도 혼자서 천천히 그 뺑오쇼콜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씹고 맛보고 삼킬 것이다.


이미 예상했듯이 시차 적응에 실패한 나는 배에 뭐라도 들어가야지 눈이 떠질까 싶어 호스텔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Boulangerie Terroirs d’Avenir을 선택했다. 아침 8시에 세수랑 양치만 얼른 하고 후드티 차림 그대로 길을 나섰다.



아직 깜깜한 파리 거리 사이 한 빵집에서만 따뜻한 노란색 빛이 새어 나왔다. 처음 간 모임 술자리에서 유일한 지인의 얼굴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파리 빵집에서는 트레이에 빵을 담아가는 게 아니라, 종업원에게 구두로 주문해야 했다.

목 색과 맞지 않는 파운데이션, 깡마른 얼굴 위로 대충 틀어 올려 더 지저분해 보이는 머리스타일, 입술선을 묘하게 벗어난 립스틱이 촌스러운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Une pain au chocolat et une allongé s'il te plaît. Sur place!”


아침 일찍인데도 쾌활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받았다.


”아, 그리고 혹시 와이파이 되나요? “


영어로 물어보자 한참을 못 알아듣다가 결국에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기서 유일하게 영어 하는 사람인데, 진짜 아주아주 조금 할 줄 알아! “


그녀는 립스틱이 조금 묻은 이를 드러내며 깔깔 웃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표정이 밝아지니 갑자기 조금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뺑오쇼콜라와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뺑오쇼콜라를 모두 먹는다는 건 내게는 로망 실현 하나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나는 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내 수많은 욕망은 노력을 낳았고, 그 노력들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매일 반에서 가장 먼저 등교했고, 신문을 학교에 가져가 조례시간 전에 정독했다.

대학교 저학년 때에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일상에서 필요할만한 밴드, 물티슈, 립밤 등등의 잡동사니를 가방에 들고 다니곤 했다.


빵이나 과자 따위를 먹다가 중간에 남기고 버리는 행위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 잡은 습관이었다.

지금은 내 몸이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과거에는 종종 꽤 통통했던 적도 있었고 지금보다 말랐던 때에도 조금 튀어나온 아랫배나 겨드랑이의 부유방을 증오하던 시기가 있었다.

21살 때 하루종일 굶다가 정말 못 견디겠으면 토마토 하나를 씻어먹거나 닭가슴살 한 덩이를 먹으며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 탄생한 습관인 것 같다.

프랑스 커피는 맛이 없다고 들었는데, 기분이 들뜬 탓인지 뜨거운 커피에서 달큼한 초콜릿 향이 났다. 조그만 커피를 곁들이며 뺑오쇼콜라를 모두 먹었다. 손가락 끝에 미끈미끈한 버터를 묻히며, 설탕이 가득 든 초콜릿이 복부와 허벅지로 퍼지는 감각을 느끼며.


과거의 내가 마음의 쪽방에 던져둔 매너리즘, 강박, 이상한 신념이라는 잡동사니들을 버린다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사실 다 먹고 나니 조금 느끼하긴 하다… 선언은 한 번만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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