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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Jan 07. 2024

끝으로 시작하다

고집쟁이는 교환학생 (3): 페르-라셰즈 묘지

걷는 걸 워낙 좋아하는 나는 숙소가 위치한 15구에서 페르-라셰즈 투어가 시작하는 20구까지 걸어가겠다고 호기롭게 결정했다. 파리의 끝과 끝은 서울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가까워서 총 2시간 남짓 걸릴 예정이었다.

 

느긋하고 게으른 파리의 거리에게는 아침 8시도 새벽인가 보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어슬렁거리는 백인 노인 환경미화원, 빠르게 달려가는 차량 몇 채, 그리고 이 아침에 혼자 이동하는 젊은 동양인을 이상하다는 듯이 힐끔거리는 몇 사람들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파리의 전통 시장 중 하나였다. 

어떤 요리에 쓰이는지 상상도 안 되는 고기 부위와 파테, 50종이 넘는 치즈, 그리고 당당히 식제품과 동등한 지위를 주장하는 꽃들이 보였다. 




투어 가이드는 푸른 눈에 금발을 한 미국인 Becky였다. Becky는 프랑스의 장례 문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250BC에 노트르담이 위치한 지역에서 켈트족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무를 쌓고, 그 위에 사람을 올려서 태운 후, 그 재를 가죽 파우치에 넣어서 묻었다.

52년에 로마인들이 와 켈트족을 몰아낸 후 로마인들 스스로의 전통을 들여왔다. 그때부터 우리가 아는 방식의 화장이 시작됐는데, 화장을 하다 보니 재 속에 사람의 뼈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뼈를 보니 사람이 생각났고, 사람의 잔해를 아무렇게나 다룰 수는 없다. 그래서 sarcophage이라는 관(coffin)에 뼈들을 넣는 문화가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 묘지에 묻히는 문화가 정착된 후, 자존심 강한 파리지앵들은 공간이 부족함에도 어떻게든 파리 내에 묻히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폴레옹 3세는 공동묘지를 대거 설립했다.


그 결과로 가장 유명한 묘지 중 하나인 페르-라셰즈에는 11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무척이나 광범위한 세대에 걸친 파리지앵들의 혼이 쉬고 있다. 중세 시대 백작의 묘 바로 옆에 최근 테러리즘으로 숨진 여자아이의 묘가 위치한 식이다.


페르-라셰즈는 한국의 메모리얼 파크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정돈되고 엄숙한 한국의 그것과 반대로, 파리의 묘지는 마치 바디빌딩 대회나 미스코리아 선발식처럼 누가 더 돋보이나 겨루는 것처럼 보였다. 망자의 초상화나 머리 조각상 정도면 얌전하다. 의미가 불분명한 커다란 조각부터 시작해서 거의 작은 집의 크기로 올려둔 건축물까지, 위에서 내려다본 페르-라셰즈의 실루엣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Becky는 유명인들의 묫자리 몇 군데를 소개해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랑스인들의 사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1. 에디트 피아프: 파리지앵이라는 긍지

우리나라에 아리랑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La vie en rose가 있다. (아이즈원 노래 말고) 

그 노래의 주인은 에디트 피아프이다. 부모님과 시력을 10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잃고 창녀촌에서 자라게 된 어린 소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42cm의 작은 키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꺼려했던 그녀지만, 나이트클럽 주인 Louis Leplée의 격려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후 프랑스의 국가적 보물이 된 에디트는 암 치료를 위하 남부 프랑스에서 요양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숨을 거두게 된다. 가족들은 패닉 한다. 페르-라셰즈에 묻혀야 하는데, 프랑스 남부에서 사망하면 안 되는데? 그들은 허겁지겁 그녀의 시체를 파리의 본가로 옮기고, 의사에게 그녀가 몇 시간 전에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의사는 대충 속아주고, 덕분에 그녀는 영원한 파리지앵이 되었다.



2. 오스카 와일드, 빅토르 누아르: 섹스의 크나큰 중요성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에 키스하면 엄청난 섹스 라이프를 즐기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수많은 여자들이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묘비에 키스하는 탓에, 묘지가 조금씩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에 페르-라셰즈 측에서는 보호 유리로 묘비를 감싸게 됐는데, 그럼에도 유리로 보호되지 않은 부분에 분홍색과 새 빨간색의 립스틱 자국을 볼 수 있었다. 꽤 높은 위치에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키스한 거지? 


빅토르 누아르는 반정부적인 글을 쓰다가 Buonaparte 황가의 남자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빅토르 누아르의 입에 키스하며 그의 아래를 만진 후, 모자에 꽃을 넣으면 임신이 수월해진다는 전설이 생겼다. 페르-라셰즈 측에서는 오스카 와일드의 경우와 같이 보호 유리를 설치했는데, 엄청난 반발에 마주했다. 수많은 여자들이 몰려와, 가임의 기회를 망치지 말라며 비난한 것이다. 결국에 보호 유리를 제거하게 되었고, 불쌍한 빅토르 누아르는 총에 맞은 걸로도 모자라 평생 모르는 여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3. 앙투안 파르망티에: 신념에 대한 집념

감자맨 파르망티에는 18세기의 농경학자이자 약학자였다. 16세기에 스페인으로부터 프랑스에 처음 감자가 들어왔지만, 대중은 관상용 식물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큰 거부감을 가졌다. 7년 전쟁 중 프로이센에서 포로 생활을 한 파르망티에는 감자의 영양학적 이점을 깨닫게 되고, 남은 생애를 감자 보급에 바치게 된다. 

감자밭을 무장 경비들이 지키도록 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밤이 되면 경비를 일부러 허술하게 해 감자 서리를 유도했다. 또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리 장식으로 감자꽃을 사용하도록 유도해 전국적인 감자꽃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다. 

파르망티에의 노력 덕에, 1785년에 큰 가뭄으로 기근이 발생한 후 프랑스 사회가 점차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Hachis Parmentier이라는 요리도 있다고 한다. 꼭 먹어봐야지!





Becky는 한 묘지를 지나치며 무덤 위의 푸른 이끼를 가리켰다. 

"겨울이 되고 습기가 올라오면서 이끼가 조금씩 끼기 시작했어요. 아름답지 않나요?"


끝을 양분으로 피어나는 시작. 마음에 들었다. 


아침에 걸어오면서 구경한 전통 시장의 뜨거운 온기와 시끌벅적함이 떠올랐다. 매 순간 자각하지 못해도 우리는 모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 먹는 양파 수프가, 가족과의 포옹이 죽기 전 몇 번째일지 우린 아무도 모른다. 힘겹게 고기를 썰어내던 아저씨의 노고도, 방금 만들어진 따뜻한 사모사를 베어 물던 어린아이의 환희도 언젠가는 끝나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내게 양분이 되어준 끝에 대한 예의로라도 그 노고는, 그 환희는 온전히 느껴야 한다. 페르-라셰즈의 묘비들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해도 좋고!

그리고 잘 고민해야 한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식료품인지 아니면 꽃인지.




양파 수프 얘기한 이유는... 진짜로 첫 파리 양파 수프를 먹었기 때문이다! 

황홀한 맛이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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