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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Jan 10. 2024

non-finito: 미완성의 미학

고집쟁이는 교환학생 (4): 로댕 미술관

주제가 무엇이든 고통스러워 보였다.


로댕의 조각상들을 실제로 보면 역동적이라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부터 익히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흰 대리석과 푸른 청동 모형들이 몸을 뒤틀며 비명 지르고 있었다. 푸른 정원에서부터 시작해, 정돈된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전시장의 분위기와 창 사이로 우아하게 쬐어지는 햇빛과 대조적이었다.


늙음, 죽음, 사랑, 희망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로댕의 유명한 non-finito 기법은 필수적이었다고 느꼈다. 완결된 것들의 편안함에는 더 이상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Non-finito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 예술가는 대리석의 일부만 조각하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보인다. 때로는 인물들이 대리석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르네상스 시대에 도나텔로(Donatello)가 탄생시켰고, 미켈란젤로가 자주 사용한 기법이다.


미완성의 미학은 플라톤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플라톤 철학자들은 회피형 완벽주의자들이었던 것 같다. (다들 여자친구랑 한 번 싸우고 씩씩대며 잠수 탔으려나 ^^) 어떤 예술 작품이든 천상의 완전한 그것과 같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것이 신플라톤주의적인 경의의 표였다.


이 날 또 하나 미완성된 것은 나의 머리였다. 프랑스의 문제인지, 내 숙소 Crous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데, 주말 동안 뜨거운 물이 끊겼다. 나름 파리에서의 첫 주말이라고 예쁜 옷을 골라두고 기대에 차 있었는데 결국 더러운 머리를 빗어 올려 조선시대 농민봉기의 선두마냥 꼬질꼬질한 채로 오페라 역 근처 거리를 누비게 되었다.


둘 중 하나였는데, 오른쪽처럼 보였다고 믿고 싶다 ㅎㅎㅎ (제발.)



Le Baiser(키스)의 두 연인은 서로를 강한 욕망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조각상 주위를 360도 돌아도 둘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심지어 "키스"라는 직관적인 제목과 반대로 둘의 입술은 닿을락 말락 살짝 떨어져 있어 성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다만 여자의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는 손의 힘줄과, 남자의 고개를 끌어당기는 팔의 튀어나온 근육에서 공통된 간절함이 느껴진다.


사랑만큼 소모적인 것이 있을까? 포옹할수록 굶주리게 된다. 연인의 피부 아래 기어들어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순간의 진실된 감정이 전해진다.




Celle qui fut la belle Heaulmière (한 때는 헬멧 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그녀)는 추함 속 아름다움에 대한 조각이다.


갈비뼈 아래로 늘어진 축 처진 피부와 체념한 듯한 표정이 눈에 띄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 미세하게 떨리는 몸, 서서히 쪼그라드는 젊음이 느껴진다.


로댕은 코가 부러진 남자, 추녀를 모델로 한 작품을 꽤 많이 만들었다.


그는 자연의 추함은 크나큰 아름다움으로 가득 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 속에서는 성격을 가진 것들만 아름답다고, 성격만이 모든 자연물의 핵심적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L'Homme et sa pensée (남자와 그의 생각)은 유명한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정자세로 무릎 끓고 간신히 윤곽이 잡힌 젊은 여성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숭배하는 형상이 내게 너무나 인상 깊었다.


지옥문 상부에 있는 조각이고, non-finito 기법의 완전체라고도 평가받는다.


생각을 완전히 취해 여성의 몸을 안지도, 그렇다고 포기하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릴 수도 없는 상황과 심정...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이 작품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껴진 것 같다.





Non-finito는 조각 기법임과 동시에 로댕의 미술을 관통하는 테마였다고 생각한다. Le Baiser의 키스도, Celle qui fut la belle Heaulmière의 늙음도, L'Homme et sa pensée의 괴로움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순간의 진심은 너무나 강렬해서 회상했을 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실을 조심스래 꺼내서 온전히 보여주기보다는, 강력한 그 찰나의 핵심을 포착한 미완성의 미학.


잔잔해보이는 호수의 표면도 몇 만년 전에 폭발한 화산, 끝없이 쏟아진 장마, 깨지고 녹아내린 빙하의 산물이다. 평화로운 호수를 찬양하는 예술가도 좋지만, 난 그 표면이 기억하는 과거의 역동성을 표현한 로댕의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좋은 일요일의 시작이었다!



이외 발견한 마음에 드는 전시장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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