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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Jan 15. 2024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

고집쟁이는 교환학생 (6): 선상 파티, 59 Rivoli, 그리고 E

파리 출국 전 일주일간 매일 울었다.


난 상여자니까 엉엉 운 건 아니고.. 하루 이틀 빼고는 밤에만 또르륵 울었다!

원래 눈물이 헤픈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슬픔의 사유가 정말이지 너무 복합적이라서 평소보다 감당하기 힘들었다. 롱패딩에 돌돌 말린 채 추운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제발 파리에서는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마치 기도에 응하듯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코트 없이 외출해도 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날 반겼다. 기숙사 키를 받은 후에 Monoprix와 Carrefour에서 세제, 옷걸이 등 필수품을 사느라 정신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에 있다는 사실과 뺨을 스치는 따스한 미풍을 맞는 감각에 벅차올랐다.


그리고 이틀 후 최악의 한파가 찾아왔다.

기온은 한국보다 높았지만 유럽의 추위는 한국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뭔가 음침한 구석이 있다.

유럽의 추위는 우울과 닮아서, 찝찝한 습기가 옷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부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순식간에 손끝까지 얼어버린다.


날씨는 변명일 수도 있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적응이 힘들었다는 설명도 거짓말일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캐나다+영국+미국 애들한테 입양당하고 너무나 빨리 적응해버림. 사진은 센느강 위 선상 파티


매일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을 가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유럽의 추위처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불안감은, 이 죄책감은 뭘까?



59 Rivoli의 외관만 봐도 뭔가 평범하지 않다.

현대적 상점들로 둘러싸인 Châtelet 역 사이에 혼자 낡고 알록달록하고 시끄러워서 마치 혼자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1999년 가스파르 들라노를 포함한 예술가 무리가 15년간 빈 공간으로 남겨졌던 건물을 불법적으로 점유했다. 파리 의회가 그들을 몰아내려고 했는데, 미디어에서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하며 반대 여론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후 59 Rivoli 건물은 서서히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이 건물에서 예술가들은 살아있는 전시품이 된다. 본인의 작업 공간을 본인의 예술관을 담아 꾸미고, 조그만 초상화나 습작들을 판매하며, 초저가의 전시회, 파티, 콘서트를 개최한다.


작은 아파트 크기의 스튜디오를 구경하려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파이럴 계단을 따라 6층짜리 건물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벽면은 사람만 한 그림들로 점철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현대적 텍스쳐로 만들어진 종이비행기나 조형물을 대롱대롱 달았다.


작품들은 거의 모두 실험적이고 개성이 강했다.

각 층을 올라가고 다른 예술가의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냄새와 시간, 날씨가 변했다고 느낄 정도로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됐다.


현대 미술과 상업 미술, 그리고 장식 예술 사이의 모호한 영역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다다이즘에 영향받은 작품들


인물과 색채에 집중한 작품들. 우측 작품들은 샤갈이 떠오른다.


그 외 마음에 들었던 공간들

미완성의 작가들도 관대한 대접을 받는 59 Rivoli의 분위기를 한국에 갖고 가고 싶어졌다.

추상화 캔버스 위에 5분 내로 나의 느낌을 포착해 준다는 문구에 이끌려 한 화가의 작업대 앞에 앉았다. 큰 키와 마른 체형, 창백한 피부 때문에 예민한 예술가의 인상이 있었는데, 입을 여는 순간 너무 발랄하셔서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De quel pays êtes vous?(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Je suis Coréenne"

"Ah! 안녕하세요!"


발음이 꽤나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본인이 아는 모든 한국어 단어들을 나한테 던졌고, 난 문맥에 맞게 얻어걸린 몇 개의 단어들에 열심히 호응했다.


손놀림이 거침없었다. 분명히 몇 분 전만 해도 형태가 없는 색깔 범벅의 캔버스 위에 나를 닮아 입꼬리와 눈가가 위로 삭 올라간 여성이 태어났다. 팔 대신 날개가 생겼고, 내 뒤에는 불규칙적인 건축물들이 탄생했다. 머리 위로 별을 하나 그리니 그림은 완성됐다.


한국어보다 서투른 영어로 더듬거렸다.


"I drew a star because you are a star. Spread your wings and fly over the unknown city! (별을 그린 이유는 네가 별이라서야. 날개를 펼치고 불분명한 도시 위로 날아가!)"


돈을 벌기 위한 연기, 또는 자기기만적인 웃음이라기에는 그의 미소가 너무나 크고 진실됐다. 그냥 느낄 수 있었다. 물질적인 풍요나 전문적인 성공을 넘어선 "진짜 행복"을 발견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였다.


저와 닮았나용?


그날 저녁 E와 즉흥적으로 저녁 약속이 잡혔다.


E는 나보다 먼저 프랑스에서 2년간 교환학생 생활을 보냈다. 언니는 내가 나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 특성들(예술에 대한 조애, 모험적인 태도, 똘똘함, 쌈빡함?)을 배로 가진 사람이다. 결이 비슷한데 나보다 성숙하다. 미풍과 태풍의 차이처럼!

예전부터 친해지고 싶었지만 계속 기회가 없었는데, 결국 첫 밥약을 무려 파리에서 하게 됐다.


Châtelet역 근처 펍


언니도 파리에서 지내며 나의 불안감과 죄책감을 공유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에 지내면서 은근히 외로운 순간들도 많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보다 더 생산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 하는 고민도 많을 거야. 그런 잡념들 때문에 점점 나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 물질적인 피해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팔이 잘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해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타지에 혼자 온 거잖아.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은 모두 해 봐야지.. 예지가 하고 싶었던 것들 모두 하고 가!"


한국에서 컨설팅 커리어를 확정한 채로 교내 영화 공모전에서 우승하고, 그다음 날 파리로 놀러 와 학생 시절에 사귄 현지인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갈 예정이었던 E.

웨이터에게 유창한 프랑스어로 주문하는 언니의 여유가 한국에서 봤던 그녀의 치열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멋지다고 느꼈다.




정답은 언제나 언제나 한 개보다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가 선택한 정답을 내가 사랑하고 변호하고 또 증명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먼지 쌓인 낡은 6층짜리 건물에서도, 지구 반대편에서도, 혼자 기숙사 방에 앉아서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기 확신은 성격도, 경험치도 아닌 선택이다.


출국 직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서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 같다고 찌질 댔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너무나 따땃한 yyy <3


너네는 이미 나를 그런 사람으로 봐주는 걸까?


그날 밤에는 하나님인지, 하늘인지, 운명인지 모를 미지의 존재에게 두 손을 모아 다시 기도했다.

이번에는 막연히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지 않았다. 대신 내가 어디서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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