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의 유럽여행 (피렌체 1): 다비드상, 베키오 다리, 중국인 Y
거의 첫 “혼자 여행”이다.
이건 다 파리 잘못이다.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나에게 너무나 차가웠다. 따뜻하고 귀엽고 나한테 잘해줄 것 같은 이탈리아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느껴졌다. 주민들의 음성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인토네이션은 진한 사투리를 연상시켰고, 파리 길거리의 향수 냄새 빵 냄새 대신 가죽과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설날에 조부모님을 뵈러 경상도로 내려가는 여정이 떠올랐다.
공항에서 피렌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오르는 순간 역무원과 부딪혔다.
“Pardon!”
나도 모르게 프랑스어가 튀어나왔다. 서투른 발음이었지만, 분명 본능적이었다. 계산하려고 할 때도 혀 끝에서 나도 모르게 "Merci!"가 맴돈다.
아직도 말씀하시는 모든 단어에 사투리가 배어있는 아빠지만, 경상도에 가기만 하면 항상 당신의 사투리가 옅어졌다며 서운해하시는데, 이런 기분이셨을까?
버스에 탄 후 30분이면 피렌체 시내에 도착한다. 그런데 웬걸, 따뜻한 미풍은커녕 파리보다 더한 칼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들오들 떨며 버스에서 내리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감각이 없어진 손끝으로 구글 맵스를 눌렀다.
날 곧바로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자만이었나? 서둘러 예약한 한인민박에 짐을 맡기고 실내에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내의 다비드상은 피렌체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기 때문이다.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의 가장 유명한 조각상이다. 곱슬머리와 탄탄한 엉덩이로 뭇여자들의 이상형으로 뽑히는 다비드상의 형태는 현재에나 ”다비드“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상이지, 16세기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자신보다 곱으로 거대한 골리앗에게 던질 돌을 겨누는 장면도, 던지는 순간도 아닌, 상대를 응시하고 공격을 계획하는 결심의 순간을 포착한 예술가는 미켈란젤로가 처음이었다.
고딕 양식의 조각상과 종교화를 지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린 곳이 있다.
난 사실 미술관에 가면 인파가 몰린 장소에서 사람 구경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멋쟁이처럼 슈트를 차려입은 아랍계 남성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비드의 발 밑에서 몇 초에 한 번씩 포즈를 바꿔가며 여자친구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 군말 없이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걸 보니 여자 쪽에서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수학여행 중인 것 같은 이탈리안 중학생 무리는 스케치북에 다비드의 얼굴을 습작하고 있었다. 얼마나 잘 그렸나 슬쩍 확인해 봤더니 잘생긴 코를 아주 감자로 만들어놨다.
나도 그들의 일부로 스며들어 다비드를 올려다봤다.
생각보다 거대해서 그런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눈높이보다 조금 위에 위치한 종아리와 허벅지였다. 온몸에 힘을 줬을 때 생기는 근육의 파임. 좀 더 위를 보니 팔뚝과 목 주변도 그랬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골리앗을 바라보는 눈빛과 집중해서 잔뜩 찌푸린 이마와 눈썹이었는데, 너무 거리가 멀어서 전혀 안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멋졌다. 다비드의 진짜 전투, 진짜 상대, 진짜 목표에게만 보여주는 진짜 눈빛!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그저 객기와 눈 가린 믿음으로 움직이는 어린아이가 아닌, 강한 용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전략가로 그려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은 분명한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다비드상 아래서 24분이나 보낼 수 있다는 거고, 단점은 프사에 올릴 사진을 못 찍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점은 조금의 뻔뻔함과 근거 부족한 자신감만 있으면 금방 소거된다.
파리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생긴 버릇이긴 한데,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만 있으면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으며 “혹시 한국인이세요? 두 분 사진 찍어드릴까요?” 한다. 한국인들에게 사진과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니까, 나름 파리에 (아주 짧게) 사는 사람으로서 좋은 기억과 예쁜 사진을 선물하고 싶다.
퐁피두에서 커플도 찍어줬고, 튈르리 공원에서 일본인 부부도 찍어줬다.
우리 코리안들은 마음의 빚을 잘 못 지기 때문에 대게는 “저희도 사진 찍어드릴게요!” 하면서 보답하려고 하신다. 파리에서는 항상 거절했지만, 피렌체에서는 나도 이방인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차례 사진을 부탁드렸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또래로 보이는 장신의 남자가 눈에 띄었다. 살짝 파마한 단정한 머리에, 요즘 유행하는 통 큰 바지를 입고 체인 목걸이를 맨 모양새를 보니 무조건 한국인이었다. 그가 손에 쥔 후지 필름 카메라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걸어갔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남자는 불필요할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눈, 코, 입, 얼굴형이 모두 둥글고 선한 인상이라 그런지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Do you speak English? I thought you were Korean! (영어 할 줄 알아? 한국인인 줄 알았어!)”
”No, I’m Chinese. (어, 나 중국 사람이야)”
알고 보니 Y는 영국에서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6년간 유학 중인 중국인이었다. 로보틱스 전공이었는데, 이과생임을 감안해도 유학생 치고 너무 영어가 서툴렀다. 서로 이름을 교환하고 같이 다리를 건너게 됐다.
“너도 카메라 갖고 가네? 작가야?”
“아니, 그냥 취미로 찍고 있어. 난 너 카메라 보니까 무조건 사진 잘 찍을 것 같아서 말 걸었지. 사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
“중학생 때부터 해서 그래도 10년은 됐네. 난 관찰하는 걸 좋아하거든.”
“오, 그래? 그럼 이거 궁금하다. 정적인 것들을 관찰하는 게 좋아, 아니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좋아?”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움직이는 걸 찍는 게 조금 무섭더라고. 그래서 건물이나 연필꽂이 같은 것만 찍었어. 음… 근데 사실 사진이 좀 늘고 나니까 뭘 찍어도 완전히 정적인 건 없는 것 같아.”
Y는 “완전히”라는 단어를 뱉으며 양손을 수직으로 만들고 살짝 흔들었다.
“꽃이나 나무도 같은 자리에서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도 1초의 차이로 아예 달라지거든.”
Y는 스타벅스에 갈 때 절대로 시즌 메뉴를 주문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대신 항상 시키는 카페라테를 마실 때마다 그 고소함에 집중하고 때로는 미세한 맛의 변화를 잡아내는, 익숙한 것들을 좋아하는 섬세함을 갖고 있었다.
대화를 나눈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안 될 텐데, 그의 영어가 왜 그리 서툴렀는지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영국까지 갔는데도 중국인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고, 영국 가수의 팬을 하기보다는 런던에 투어 온 중국인 래퍼 Jay Chou의 콘서트에 세 번 연속 갔다는 Y. 나한테 공연 영상 하나를 앨범에서 굳이 찾아 보여주기까지 하며 눈을 반짝였다. Y는 영국의 펍과 축구 경기는 가면서 오아시스나 블러는 몰랐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는 도중 Y는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예쁠 것 같은 포토스팟을 찾아냈다.
피렌체를 경제적으로 장악한 메디치 가문은 여느 시대의 권력가와 같이 격 떨어지게 일반인들과 같은 길에서 걷기를 거부했다. 일반 길보다 높은 고도에, 그리고 지하 도로로 비밀리에 메디치 전용 통로들을 만들었는데, 그런데도 아래서 진동하는 피와 오물 악취를 견딜 수 없다며 베키오 다리 위 가축 도축 비즈니스를 밀어내고 귀금속 상점들을 집합시켰다. 지금 바로 건너편의 alle grazie 다리에서 베키오 다리 방향으로 바라보면 베키오 다리만 번쩍번쩍 빛난다.
내가 빨강, 초록, 파랑이 감각적으로 조합되어 모네의 그림처럼 멀리서 봤을 때 오묘한 빛깔로 빛나는 팔찌, 끼고 다니면 귓불이 금방 늘어나 버릴 것만 같은 무거운 금속 귀걸이 등에 정신 팔린 사이 Y는 귀신같이 사람도 없고, 빛도 적절한 곳에 가서 서게 했다.
전문 스냅 같은 사진을 건졌다는 고양감 덕도 있겠지만, 왠지 피렌체가 조금은 따스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고독할 것 같다고 기대했는데, 왜 파리에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신나지?
Y와의 조우 이후, 종이에 베인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아려오는 것과 비슷하게 홀로 온 여행의 장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취향으로 코스를 짤 수 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스케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전혀 일면식 없지만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토스카나의 해를 맞고, 딸리아뗄레를 먹고, 길거리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눈부시다.
피렌체를 비롯한 혼자 떠날 앞으로의 여행들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