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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Feb 13. 2024

아이슬란드 혼자 가지 마세요. 아니, 혼자 가세요.

고집쟁이의 유럽여행(아이슬란드): 오로라, 바트나요쿠틀, 외로움에 대하여

오로라를 보려고 아이슬란드에 갔다.

그런데 결국 오로라도 못 봤고, 감기에 걸려 열을 펄펄 냈고, 흰 눈밭에 누워서 인생 최대의 고독을 느꼈다.

그런데도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 중 최고였다고 확신한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행성에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에 세 번 이상 눈보라가 시작됐다가, 멈췄다가, 반복한다. ‘오늘은 날씨가 평화롭네?’ 생각하고 나섰다가도 십 분 만에 얼굴로 우두두 우박이 날아온다.

아이슬란드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딱히 없다. 차바퀴자국과 발자국으로 유추할 뿐이다. 횡단보도도 어차피 눈으로 뒤덮일 거라 의미가 없어서 자포자기하고 따로 그리지 않는다.

하늘도 지구 같지가 않다. 파란색일 때는 이상하리만큼 경쾌하고 진한 색이고, 분홍색일 때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선명한 분홍색이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숙소를 잡았다. 유일한 시내인 레이캬비크에서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과 희한한 모양의 성당을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모양의 할그림샤 성당


이틀짜리 짧은 투어를 통해 이동했다. 큰 SUV에 12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탑승해 이틀간 가이드를 따라 랜드마크를 돌아다니는 계획을 따르기로 했다.

거대한 폭포인 스코가포스, 매년 세명 정도의 관광객은 파도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는다는 레이니스피야 해변, 청록색으로 불투명하게 빛나는 바트나이외쿠틀 얼음 동굴이 포함된 바트나이외쿠틀 빙하 국립공원 등을 볼 수 있었다.


투어 중 마주친 생소한 풍경들


아이슬란드 면적의 8%를 덮고 있는 바트나요쿠 틀은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빙하인데, 그 빙하가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하고서부터 조금 이상한 감정이 시작됐다.


투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왼쪽으로 몰려가 빙하가 녹은 곳에 생겨난 바다를 구경하러 갔는데, 난 자꾸만 오른쪽에 펼쳐진 빙하들에 눈이 갔다. 바다에 코하스코 젤리 조각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푸른빛의 불투명한 빙하들. 멀리서 봤을 때는 그 모양이 어린 시절에 갖고 놀던 장난감과 비슷해서, 크기가 이렇게나 거대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밭 바로 옆에 얼음 언덕 여러 개가 줄지어 이어져있었다.

얼음 언덕을 등반하게 해주는 안전장치를 잡고 온몸의 무게를 팔로 지탱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구조였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나 하얘서 안전장치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잘 안보였다. 날 어디로 이끌지도 모르면서 등반을 시작했다.


얼음 언덕의 꼭대기에 오르고 사방을 둘러봤다.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바람이 주기적으로 머리칼을 헝클였다. 모자를 눈썹 위로 뒤집어써서 정신없이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진정시켰다.


눈앞에는 작은 빌딩 8채 정도를 가로로 붙인 정도의 길이를 가진 거대한 빙하가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뭔가 살아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살아 움직여야 정상인데,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섬뜩해서 계속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고개를 돌려서 오른쪽을 쳐다봤다. 하늘과 땅의 미세한 채도 차이를 제외하고는 온통 하얀색이었다. 정가운데에 시선을 고정하면 형태도, 깊이도 없는 하얀색밖에 안 보였다. 

이번에는 왼쪽을 쳐다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대했던 호수 위에 떠 있는 빙하가 이제 와서야 다시 자그마해졌다. 그렇게 거대했던 것들이 거리를 두니 이렇게나 조그마해지다니.


언덕 아래에도 길이 이어졌다. 경사가 제법 있어서 다시 올라오는 방법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언덕 아래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15분쯤 걸었나, 호수는 이제 눈을 찌푸리고 노려봐야지 형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양 옆은 완전한 하얀색밖에 없었고, 내 앞에는 안전장치의 도움으로도 더 이상 등반할 수 없는 거대한 산밖에 없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었다. 희고 끝이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완전한 고독이었다. 이렇게 혼자일 수 있구나. 

그런데 동시에 전혀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거대하고 영적인 무언가에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길을 잃었을 때의 외로움과는 다른 결의 감정이었다. 길을 잃었지만, 내가 지금 당장 꼭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는 감각… 그 순간 난 정말로 자유로웠다. 어떤 사념도 지금 나를 방해할 수 없었다. 


더 앞으로 걸어 나가도 같은 흰색만 이어져서, 더 이상 걸어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또 안전장치가 끝나는 지점이라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말라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순간에 심취하긴 했지만, 오늘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서 있던 자리에 풀썩 누워서 하늘을 봤다. 하늘도 하얀색이었다. 바람을 막아주는 모자를 벗고 마침 포근하게 내리는 눈을 얼굴로 맞았다. 입을 벌렸다. 눈이 혀 위에서 녹으며 조금 달콤한 맛을 냈다. 

계속 입을 벌리고 있다 보니 갑자기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졌는데, 그걸 실수로 온통 목구멍에 그대로 넘겨버려서 콜록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15분 정도 지난 그때쯤에는 나도 모르게 조금 울고 있었다. 



완전히 혼자인 것이 이렇게 황홀할 줄이야. 하얀색 세상이 날 위로하는 기분이었다.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반대쪽에 있는 바다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엉덩이의 잔여 눈을 털고 일어나서 반대 방향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나? 이상하게 정수리가 추웠다. 그제야 바람을 온전히 느끼겠다며 벗어던진 털모자를 땅바닥에 버리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슬란드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또 마음을 바꿨다. 온통 흰색이었던 세상에 조금씩 어두운 푸른색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빙하 끝으로 내려가 모자를 낚아채고 다시 등반을 시작한 시점에는 너무 어두워져서,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폭설 사이로 그전에는 빛에 가려졌던 날카로운 빙하의 그림자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방금 전까지는 혼자라서 좋았는데, 갑자기 진짜로 혼자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조차 무서웠다. 빨리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너무 강했다. 전과 다르게 딱딱하고 뾰족해진 눈이 자꾸만 얼굴을 때려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여리여리한 편은 아닌데, 안전장치를 잡고 올라가다가 두 번 정도 쓰러졌다. 지금도 왼쪽 골반에 검푸르게 남은 멍을 보면 그때의 하늘이 연상된다.


그 외로움에서부터 가능한 빠르게 도망쳤다. 다시 SUV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눈이 너무 심하게 쏟아져서 투어 버스가 잠깐 멈췄다가 이동해야 할 정도였다.


새벽 두 시, 새로 사귄 친구인 Emma와 숙소 밖에서 오로라를 찾으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얼 것 같은데도 북쪽을 향해 카메라를 대고 노출을 최대화해 사진을 찍어봤지만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날 밤부터 감기 기운이 심해지더니,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을 갈 때쯤에는 열이 펄펄 났다. 타지에서 아프면 당연히 서럽다. 그날 밤 옆 자리 이탈리아인의 코골이를 들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콜록대며 잠을 청했다. 그때 그 외로움을 상기하며. 너무 아파서 오로라를 찾으러 나갈 힘도 없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 기회였다. 마침 앱으로 확인한 오로라 지수도 여행 중 가장 높았다. 오늘이 날일 것 같았다. 20만 원짜리 오로라 헌팅 투어를 신청했다.


시작 3시간 전에 투어가 취소됐다.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레이캬비크 시내에서는 딱히 할 게 없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를 서성였다. 한 LP바가 눈에 들어왔다. 각 자리마다 하나씩 LP 플레이어와 헤드폰이 연결되어 있었고, 벽에는 조그만 가게 크기와 대비되는 방대한 양의 LP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잭다니엘 하이볼 하나를 주문하고 LP판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옆자리에 영국인 부부 한쌍이 와서 앉으셨다. 둘 다 내 부모님보다 열 살 정도는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젊었을 적에는 상당한 미인들이셨을 것 같았다. 

남편은 키가 작고 머리가 거의 벗어졌지만 얼굴에 주름이 멋지게 져있었고, 웃음이 많은 사람들만 갖고 있는 상냥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옷을 센스 있게 입었다. 남편이 무슨 말만 하면 호탕하게 웃었다.

둘은 아직도 서로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zebra를 “지브라”가 아닌 “제브라”로 발음하는 것이 미국인 같다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놀렸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와서 Simple minds랑 The Zombies 중에서 고민하고 있는 게 신기했는지, 남편분께서 말을 걸어왔다. 

16살인 친구 손녀는 비틀즈도 모르는데, 코리아에서도 영국 밴드가 인기가 많냐며 신기해하셨다. 웃으며,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는 밴드가 비틀즈라고 설명했다. 혼자 목욕하며 Abbey road를 들으신다고 얘기했다. 

부부는 예전에 CD를 모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요즘 애들은 CD랑 LP판의 차이도 모른다며 한탄했다. “그럼 우리 셋은 같은 세대인가 봐요! “ 했더니 깔깔 웃으며 좋아하셨다. 나랑 같이 LP판들을 넘기다가 Cream의 Wheels of Fire이랑 The Cardigans의 Life 앨범을 하나씩 추천해 주셨다.


LP판을 혼자 작동시켜 본 적 없는 내가 기계 앞에서 헷갈려하자 남편분께서 LP판을 대신 끼워주셨다. 음악을 들으며 그 부부를 꽤 오랫동안 바라봤다. 결혼 30년간 당연히 위기도, 갈등도 있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둘은 서로 꼭 맞는 퍼즐 조각처럼 보였다.

내가 아이슬란드에 온 3일 내내 오로라를 못 봤다고, 꼭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이야기했더니 부부는 자기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오로라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에는 못 찾았다고 했다. 둘이 해피아워에 랜덤한 식당과 펍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아이슬란드까지 왔는데도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는 것이 아직도 더 재밌었나 보다.

마지막 날 방문한 LP바 겸 펍

순간 저게 내가 정말 원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성 있는 관계, 내 사람.

외롭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외로울 용기가 없다면 평생 외로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광활한 얼음판에 혼자 섰을 때의 압박감을 극복할 수 없다면, 내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을 안아줄 수도 없다. 순간의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품으로 도피하면 영원히 도망치는 인생을 살 것 같았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외로움을 견디는 걸 넘어서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파리로 돌아와서 약을 먹었더니 끈질겼던 감기가 금방 나았다.

그리고 핸드폰 밝기를 최대한 높여봤더니, 찍을 당시에는 못 봤던 오로라의 초록색 흔적이 보였다.

혼자 바보처럼 실실 웃었다. 


나를 위한 것들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할 뿐. 내가 예상한 오로라의 모습이나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그게 오로라가 아니진 않은 것처럼.


해결책의 갈피를 잡기 시작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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