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의 유럽여행(스페인 1): 피카소, 호안 미로, 거트루드 스타인
역시 나는 럭키걸이다!
피카소 미술관과 호안 미로 파운데이션에서 각각 개최하던 미로-피카소 특별전이 신기하게도 내가 바르셀로나에 방문한 둘째 날까지만 전시될 예정이었다.
도착한 날에 피카소 미술관, 그다음 날에 호안 미로 파운데이션을 가기로 했다.
1917, 큐비즘과 네오클래식 스타일을 세련되게 합친 피카소의 무대 디자인을 보고 호안 미로는 한눈에 반한다. 1920년도에 파리를 방문하자마자 Rue de la Boetie에서 피카소에게 접근한 호안 미로. 둘은 50년간 상호 간 예술적으로, 인간적으로, 재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우정을 지속한다.
첫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양 옆으로 마치 비교하라는 듯이 배치된 각 작가의 두 그림이 눈에 띈다. 피카소와 미로의 눈에 여성의 신체가 어떤 의미였는지 직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이때부터 나도 모르게 피카소 작품에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미로의 여성 누드는 미로의 초기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가 전형적으로 자주 쓰던, 베이컨이 떠오르는 깔끔한 선과 조금 뭉개지는 듯한 마무리, 그리고 에른스트를 연상시키는 색채 배치와 배경을 강조하는 회화 기법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여성의 감정이다. 자기 앞에 나타난 불꽃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 지르는 여성의 당혹스러움은 그 표정에 비해 비율적으로 훨씬 큰 배경에 거의 잡아먹히다시피 하며 강조된다.
바로 옆 피카소의 그림 속 여자는 미로의 작품 속 주인공과 거의 같은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보고 있으면 불쾌한 기분이 든다.
당시 그의 인생의 사랑이었던 여자 올가 고콜로바는 가슴 두 개, 직선 두 개로 표현된 성기, 그리고 영혼 없는 동그라미 두 개로 표현된 눈으로 해체되어 빨간 의자 위에 널브러져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올가가 아닌 화가인 피카소이다.
한 여자와의 관계가 끝나면, 때로는 끝나기도 전에 다음 여자 그다음 여자로 옮겨가는 피카소의 개인사가 연상됐다.
피카소는 많은 사람들이 믿듯이 여자를 싫어했던 것일까? 자신의 예술을 위해, 그리고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여자를 이용한 것일까?
피카소 미술관의 나머지 전시관들을 돌아본 후 내린 나만의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닌 것 같다.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 까사헤마스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자살한 이후, 그의 빈곤과 사회적 소외감이 우울에 더해 피카소의 Blue period이 시작된다. 이 시기 피카소가 그리는 풍경, 인간, 사물은 모두 푸른 배경 앞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그가 그리는 자화상 속 수염 난 남자들은 모두 영혼 없는 눈을 하고 캔버스 밖으로 멍 때린다.
그러다가 1904년에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며 피카소의 삶은 피어난다. 눈을 가렸던 우울의 렌즈가 벗겨지고 근거 없는 희망으로 교체된다. 그 유명한 Rose Period이 시작된다.
또, 이 시기에 예술적인 조언을 주는 것은 물론 피카소에게 재정적인 도움이 될 사람들을 소개해주어 상업적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 레즈비언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과의 관계도 깊어진다.
파리의 룩셈부르크 뮤지엄에서 개최했던 "피카소-거트루드 스타인"전도 관람했었는데, 그때 스타인의 초상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읽었다.
사실 이 그림은 스타인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피카소에게 "도대체 누굴 그린 거냐"라고 물을 정도였는데, 그럴 때마다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Everybody thinks she is not at all like her portrait, but never mind, in the end she will manage to look just like it (모두 그녀가 이 초상화와 닮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결국 언젠가는 그녀는 이 초상화처럼 될 테니까.)"
그런데 재밌는 건, 거트루드 스타인 본인은 이 초상화를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강인한 자세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사시의 눈빛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여성이었던 거트루드 스타인과 서로 큐비즘과 네오클래시즘에 대한 깊은 논의를 나누며 서로의 예술에 그렇게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 피카소라면, 여자를 그저 싫어했을 리는 없었을 테다.
피카소는 엄청나게 솔직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삐쭉삐쭉하게 그려낸 여성의 신체는 공격적이라기보다 복수심에 불타는 피카소 입장의 사실로 보인다. 당시에 피카소 입장에서 올가는 가해자였으니까.
그리고 본질을 그려내려고 했던 예술가였던 것 같다. 그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지라도.
예술가의 자화상은 그가 자기 자신을 보는 색깔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은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선에 영향을 준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Blue period 동안 피카소가 자기 자신을 잔인한 세상 속 피해자라고 인지하여, 우울하지 않은 세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호안 미로가 바라본 세상은 어땠을까?
피카소는 미술을 정복하려고 했고, 미로는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미로는 자기 자신을 예술가이자 시인으로 정의했다.
자연, 문학, 동양 사상에 주로 영향을 받던 초기 작품과 비교해 50년도로 넘어가며 그가 주로 사용한 소재는 여성, 새, 별 등 평화롭고 자연주의적인 성격으로 변모했다.
호안 미로의 작품을 보면 세상을 직관적으로만 보던 어린 시절의 시선을 되찾은 감상을 느낄 수 있다.
꽃은 꽃이다.
꽃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순간 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순간 그 꽃은 또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그리고 그 꽃과 비슷한 것들은 또 의미가 변한다.
호안 미로의 그림에서 꽃은 다시금 꽃이 된다.
나중 가서는 푸른 바탕에 점 한 개, 선 하나를 배치할 정도로 작품이 단순화되었다.
"This simple line is for me the sign that I have conquered freedom. And in my view, to conquer freedom is to conquer simplicity. So, in the end, with one line, with one colour, you have enough to make the painting. (이 단순한 선 하나는 내게는 내가 자유를 정복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자유를 정복한다는 것은 단순성을 정복한다는 것이다. 즉, 결국에 선 하나로, 색 하나로, 나는 그림을 만들 재료들이 충분하다.)"
똑같이 표면 아래 진실을 파악하고자 한 두 예술가인데, 그 해석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자연을 사랑한 젊은 미로가 하이라이트 한 괴테의 한 문장.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관점!
"Do not say that real life is lacking in poetic interest, because you prove yourself to be a poet precisely when you have the spirit to discover an interesting aspect of an everyday object (현실 세계에 시적인 미학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일상적인 물건의 흥미로운 구석을 발견하는 영혼이 존재할 때 그는 시인이 되기 때문이다.)"
특별전을 보며 예술가 피카소보다도 인간 피카소, 그리고 나이 듦에 따라 점점 변한 그의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브런치에 끄적이는 내 글들도 나이 들어서 다시 읽어보면 미숙하고 진한 색채에 물들어있겠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 때는 내 눈앞이 온통 검은색인 줄도 모른다.
더 성숙해진 내가 돼서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며 이제야 그 색을 알아보고 부끄러워하는 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