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의 유럽여행(네덜란드 1): 암스테르담 홍등가, 성매매
쾌적하고 현대적인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축축한 잔디 같은 대마초 냄새가 점점 강해지는 걸 느끼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홍등가, 암스테르담의 창녀촌에 도착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삼, 사 층짜리 거대한 건물들의 내부를 대부분을 공개하는 커다란 창문 속 각각 한 명 (때로는 두 명)의 여자가 들어오라며 유혹한다.
어떤 여자는 커다란 가슴을 간신히 가리는 멜빵과 교복 같이 생긴 - 하지만 당연히 교칙에는 어긋날 길이의 - 치마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쓴 채 몸을 로봇처럼 좌우로 흔든다.
다른 여자는 바짝 마른 모델 같은 체형이다. 망사 스타킹과 속옷만 입고 왕족처럼 도도하게 아래의 관광객들을 내려다본다.
1층 창문을 지나쳤다. 검은색 모노키니를 입은, 입술이 두껍고 가슴과 엉덩이가 부자연스럽게 거대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속눈썹이 짙은 눈으로 윙크했다. 앉아 있던 의자 위로 엉덩이를 찧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하며 나한테 들어오라며 검지 손가락을 까딱였다.
유혹에 응한 관광객이 창문을 문처럼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안에 있던 사람은 수백 번 해봤다는 듯이 당연하게 커튼을 차락 닫는다.
암스테르담 사람의 큰 신장만큼 거대한 건물 속, 반 이상의 방들에 커튼이 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옆 건물에서 추운 날씨에 대비해 털모자와 패딩을 입고 핫초콜릿을 홀짝이는 커플, 그 앞에서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 대비해 대기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경찰들을 봤다.
이보다 대비감이 큰 상황이 또 있을까?
관객 앞에서 실시간으로 성관계를 하는 라이브 섹스쇼도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었다. 학생 할인(?)을 해주겠다며 우리를 설득시키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가장 짧은 공연도 가격이 40유로 정도로 꽤 비싼 편이었다.
우리는 대신 2유로를 내고 1분간 볼 수 있는 쇼로 이 이상한 곳을 체험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합의했다.
2유로를 내면 두 명이서 들어가 1분가량 쇼를 볼 수 있었다. 뭘 예상해야 할지 모른 채 V와 함께 칸막이에 들어갔다.
오락실 화면같이 세로로 긴 스크린이 있었고, 그 앞에는 동전을 넣는 구멍이 있었다. 동전을 넣고 잠시 기다렸더니 불투명했던 눈앞의 화면이 걷어지고 내부를 볼 수 있게 됐다.
50cm도 채 안 되는 거리 앞에서 적어도 40대는 되었을 여자가 초록색 레이스 브래지어를 제외하고는 전부 벗은 채 천천히, 연속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팔을 앞으로 쭉 뻗고 고양이 자세를 취했다가, 다리를 한쪽만 치켜올렸다가, 내렸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서 주름진 손으로 처진 가슴을 쓸었다가... 태엽 인형 같았다.
육각형으로 된 무대의 중간에서 움직이는 그녀를 둘러싼 총 12쌍의 눈들.
벤담의 판옵티콘 같은 구조 속에서 그 여자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12쌍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동작을 반복했다.
파란 눈이 나와 마주쳤다.
눈이 텅 비어있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속이 울렁거렸다.
V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시선이 화면 속 쇼 대신 내 옆의 벽을 향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진짜 솔직히. 너 이거 보고 조금이라도 흥분돼?"
"아니. 나 이거 그냥 좀 슬퍼..."
우리는 마지막 40초가량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얘기를 했다.
2000년도에 암스테르담에서 성매매가 합법화된 이후 위생 문제와 안전성 같은 기존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갖은 부작용도 발생했다. 인신매매, 마약 문제, 2차 범죄.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 없이 심화되다 보니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2009년 "프로젝트 1012"를 실행했다. Nieuwstraat, 그리고 Oudezijds Achterburgwal 두 동네에서만 성매매를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 실행 이후 성매매는 음지로 이동하거나 덜 부유한 이웃 도시인 브뤼셀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 인신매매는 더욱 잦아졌다.
행복한 창녀들과 건강한 고객들이라는 이상은 달성하기 힘든 과제임이 분명하다.
실질적인 문제를 차치하고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창녀촌임에도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이상한 위화감이 맴도는 곳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조차 창문 속 성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익숙해져 버렸다. 더 이상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설정된 마네킹으로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 저 여자들이 인간으로 안 보이는 것처럼, 저 여자들도 내가 인간으로 안 보이겠지?
마음이 심란해져서 친구들에게 먼저 들어가겠다고 인사하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는 사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
관계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커튼 뒤에서 인간 아닌 입술을 맞추고, 인간 아닌 가슴을 만지고, 인간 없는 섹스를 하고 있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갑자기 시작한 만큼, 조금 걷다 보면 또 갑자기 홍등가의 거리에서 벗어나있다. 다시 깔끔하고 점잖은 암스테르담의 풍경을 마주했다. 커튼을 제치고 밤 거리로 다시 나온 고객들처럼, 나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