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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Jun 05. 2024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의 영혼들은 어디로 모일까?

고집쟁이는 교환학생 (16): 파리의 조각들 - 1

1. 튈르리 정원



Tuilleries 정원 정 가운데에는 인공 호수가 있다. 빨강, 노랑, 파랑의 깃발을 달고 전동 모터 배들이 호수를 가로지른다. 

호수를 둘러싼 초록색 의자들 몇 개는 허리를 대고 앉아 있게 바로 서있고, 몇 개의 의자들은 기대 누울 수 있게 둔각으로 치우쳐 있다. 


초록색 모자를 쓴 유치원생이 리모콘으로 전동 모터 배들을 조종한다. 집요한 시선도, 서툰 걸음도 계속 배를 쫓는다. 

어른들의 다리를 가로지르며 무심하게,

"Attention, monseiur! (여러분, 조심해 주세요!)”

터져 나오는 웃음.


계속 호수 주위를 맴도는 아이를 몇몇은 애정, 몇몇은 조금의 짜증, 몇몇은 호기심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아이의 부모님에게 전했다,

"Tres mignon. (너무 귀여워요.)"


밥을 복스럽게 먹는다고, 걸음이 씩씩하다고 칭찬받는 나이와 살이 찌니까 밥을 덜 먹으라고, 보기 싫게 성큼성큼 걷지 말라고 조언받는 지금 사이 과도기는 어디까지였을까?

존재 자체로 사랑받던 어린 시절을 낭비한 후, 무의식적으로 친구에서, 애인에서, 작업물에서 그 감정을 갈구한다. 조건 없는 사랑을 갈망한다.




2. George V 지하철 역



George V 역 앞 계단 정 중앙에 한 노숙자가 무너진 종이인형처럼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다.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은 안 씻은 지 며칠째인지 가늠이 안 갈 정도로 결 사이에 기름이 겹겹이 껴, 손가락 사이에 넣고 마찰을 주면 낙엽처럼 부서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멀리서도 맡을 수 있는 지린내로 인해 속이 울렁거렸다. 노숙자의 사타구니를 봤다. 

겹겹이 싼 오줌 때문에 바지가 진한 노란색으로 염색됐다.

동공이 날 향한 것 같아 멀리 돌아 걸어갔다. 뒤를 따르는 행인들도 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처럼 본능적으로 그를 피해 크게 O 자를 그리며 한 행렬로 그를 피해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선다.

다시 보니 거의 회색으로 탁해진 눈은 더 이상 영혼을 담고 있지 않다. 저음으로 아주 작게 "으어어" 하며 떨리는 손가락을 허공에 가리켰다.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의 영혼들은 어디로 모일까?

그리고 인간은 얼마나 외로워졌을 때 비로소 그 이전에 체득했던 사회적 규칙들을 완전히 망각할까?




3. BNF



BNF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은 1년 회원권을 끊고 다니는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이다. 

도서관 자체도 세련됐지만, 해먹처럼 기대 누워서 풍경을 보며 공부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자리는 따로 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쌍의 커플이 같은 의자에 앉아 있다. 

여자의 마른 엉덩이가 남자의 허벅지에 걸쳐 있다. 

그녀를 지탱하는 동시에 힘을 주지 않는 척을 하느라 남자의 왼쪽 종아리의 핏줄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왔다.

여자는 남자의 장발 머리칼을 귀 뒤로 쓸고 귀 속으로 키득거리며 뭔가를 속삭인다. 

남자는 가죽 팔찌를 낀 굵은 팔로 여자의 허리를 꼭 감싼다. 

깍지 낀 손가락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놓지 않을 거라는 무언의 약속처럼 보인다.


그들의 애정행각은 개인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의 연극성이 있었다. 

불필요하게 큰 목소리로 긴밀한 대화를 자발적으로 유출시켰다. 

짧은 프랑스어 실력이지만 주워들은 몇 개의 단어들, 


tes yeux 너의 눈

vraiment정말?

une balade 노래


그들이 노출시키고자 하는 견고한 사랑이라는 연극의 관객은 누구였을까?

타인에게 젊음과 열정을 과시하는 것

혹은 상대에게 영원을 약속하는 것

혹은 자신에게...




4. 주말 마켓



일요일마다 열리는 썬데이 마켓. 

5명의 여고생 무리가 게걸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양한 치즈를 판매하는 매대를 지나친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만 눈에 띄게 가볍다. 

한 명은 손에 케밥 랩, 한 명은 바나나 누텔라 크레페를 들고 있다. 

모두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로우라이즈 청바지, 무채색의 크롭티, 작은 가방, 두피가 아플 만큼 바짝 올려 묶은 포니테일. 


게 중 가장 키가 큰 여자가 진한 프랑스 억양으로,

“Everybody was kung-fu fighting” 노래를 부르며 폴짝 뛰어 지나쳐 갔다. 


한국이든 프랑스든 사실 어디든 옷과 태도만 보고 10대와 20대 중반 이후의 여자를 구분하는 것은 예상보다 쉬운 일이다. 

어릴수록 성숙해 보이고자 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어려 보이려고 한다. 


어떻게든 옷으로, 말투로, 몸을 지탱하는 자세로 자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여자는 진득한 자기혐오를 갖고 있다. 

그래서 모녀관계는 복잡하다.

인생의 경로가 어떻든, 자기와 같은 인생을 딸에게 동일하게 물려주고자 하는 어머니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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