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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Sep 23. 2024

무의식 중에 변조되는 기억으로 우리는

미술고집(1): 타나아미 게이이치, 도쿄 국립신미술관

정말 일본 스러운, 일본인다운 전시다.

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내게 일본 스러운 건 뭐지?' 


내가 좋아했던 일본의 문화를 떠올렸다.

중학생 때 "진격의 거인"을 재밌게 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도 몇 개는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도 빠져서 읽었었다. 

그리고 내가 거부감을 느꼈던 일본의 문화를 생각해 봤다.

미성년자처럼 앳된 여자아이의 치마 속을 강조하는 애니메이션, 감동 공식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드라마 등.


한 국가의 문화는 그 국가의 정서를 관통하고, 한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 정서를 알게 모르게 기록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관람한 타나아미 게이이치의 작품들은 정말로 일본 스러웠다. 전후의 트라우마, 빠르게 유입되는 외부의 문화 환경, 그리고 그로 인해 일본인들이 느꼈던 피로와 혼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적인 이미지에서 주인공만 동적으로 움직이는 작품들에서 타나아미의 의문도 명확히 보였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시시각각 꿈틀거리며 적응하고 변모하는 화풍을 통해 당시 일본 역사의 추함과 화려함을 엿볼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의 배경으로 차용될만큼 세련된 외관을 가진 도쿄 국립신미술관


1. 유년기: 미국과 팝아트


1936년, 섬유 도매상을 운영하는 가족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세계 2차 대전의 발발과 종식을 목격한다. 자연스럽게 전쟁, 죽음, 그리고 몰락의 이미지에 몰두하게 되는 타나아미.

그 와중에 그는 어릴 적 일본에 물 밀리듯이 유입되는 슈퍼히어로 만화나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미국 문화에 심취했다. 복제되는 예술은 모두 진품이라는 앤디 워홀의 주장에 매혹된다. 따라 재구성은 곧 하나하나 새로운 작품이라는 관념론을 바탕으로 인생 전반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모방, 합체, 복제를 시도한다.



콜라주나 팝아트, 삽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미국과 일본 이미지의 혼재는 포르노그래픽한 동시에 엄청나게 감각적이다. 


2. 청년기: 그래픽 디자이너의 애니메이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는 동시에 타나아미는 요지 쿠리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정 속 동을 추구하는 작품들은 그가 어렸을 때 집착했던 "베티 붑, " "뽀빠이, " 그리고 여러 디즈니 영화들과 일본의 카미시바이 (=구연동화) 문화의 합이다.



그의 실험적인 애니메이션들은 일본의 문화를 주도, 내지는 독점했던 닛폰 TV 방송망이 찍어내는 대량 생산된 이미지를 풍자한다. 


3. 중년기: 조각 - 중국 민속 문화와 생사의 경계


타나아미는 40대 중반에 떠난 중국 여행에서 본 자연경관과 불멸의 마법사에 대한 민속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동시에 과로와 불면증으로 결핵에 시달리고, 그는 4개월 가까이 입원하게 된다. 생사를 오가며 복용한 약물로 인해 밤마다 환각에 시달리게 되는데, 타나아미는 반복적으로 특정적 이미지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예시를 들면: 살바도르 달리의 "The Madonna of Port Lligat, " 왜곡되고 뒤틀린 병원 앞 소나무의 이미지, 그리고 거북이 호랑이 등의 전형적인 아시아틱한 이미지들. 


자세히 볼수록 이질적인 텍스쳐와 색감의 융화가 인상적이다.

뒤틀린 소나무의 이미지는 조선 왕조의 민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木"에 영향받아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듯 강렬한 색감을 띄어 재해석된다. 기존의 팝아트식의 화풍에서 전환점을 만난 것이다.


4. 노년기: Baku - 삶의 재고, 죽음이라는 홀림길


그 후로도 타나아미의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모한다.

긴 책상에 앉아 어렸을 적 머리를 떠나지 않던 이미지들을 회고해보기도 하고, 뉴욕을 방문해 앤디 워홀을 비롯한 감독들을 만나 영감을 받아 실험적인 영화들을 제작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마지막 모티프 중 하나는 Baku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Baku는 악몽을 먹는 괴물로 표현된다. 자기 전 그 인형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악몽을 먹어준다.

타나아미에게 예술은 본인이 Baku가 되는 과정이었다. 유년기부터 겪었던 절망들: 전후 트라우마, 쓰나미같이 쏟아지는 이미지들, 병원에서의 경험들을 긍정적인 (쓰읍..) 이미지로 변환시켰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는 더욱 정확하게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실제로 보면 "헉!" 소리 나는 거대한 조형물과 기괴한 스케치들

일본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타나아미의 작품 세계 속에서 당시 유행하여 영향을 준 예술 형식들을 유추할 수 있다. 또,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이미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미국의 원자폭격, 불타는 도시, 집에서 헤엄치던 꼬리가 찢긴 일식 금붕어.


타나아미는 모든 이미지, 모든 입력, 모든 기억은 실시간으로 머릿속에서 뒤섞이고 변형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명화 하나를 수십 번이나 재해석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하나의 주제에서 샘솟는 수많은 가능성과 수많은 what-ifs들을 제시한다.


신주쿠의 화려한 밤거리를 걸었다. 이 밤거리도 혼란한 타나아미의 작품세계만큼 복잡했다.

간판에 목소리가 있다면 들어오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을 것 같이 번쩍번쩍 빛났다. 영화관 건물들 사이에 거대한 고질라 모형이 고개를 내밀었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과할 정도로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전시를 회고하며 느낌에 집중했다.

우리나라와 붙어있으면서 전혀 다른 역사를 그려낸 일본의 "느낌."

그래서 우리나라와 닮으면서도 가장 거리가 멀게도 느껴지는 일본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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