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7탄
2024년 4월 1일, 횡단21일차. 사라토프에서 볼고그라드까지 450키로 달리면 되는 날.
하나는 마트 미용실에서 300루블짜리(4500원) 커트를 했다. 시원하고 저렴하다! 다듬는건 대충 하셨는지 은근히 가지런하지는 않다ㅋㅋ한국에서 커트하고 가자고해도 말을 안듣더니 이럴려고. 나는 마트 자판기에서 100루블 아메리카노를 뽑았다. 뜻밖에 러시아에서 마신 커피 중 제일 맛있었다. 메가커피같은 프랜차이즈 맛이랄까.
짭게 친 머리스타일, 그리고 100루블 커피!
마트에서 산 샌드위치와 과일로 늦은 아침을 먹고 이동을 시작했다. 이젠 해가 들면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야 하다니. 이제 진짜 봄인가? 내심 흐뭇했지만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르고…
뭐가 좋은걸까? ‘쉽지만 지루한 길’과 ‘힘들지만 풍경좋은 길’ 중에…
볼고그라드를 향해 달리는 중에 믿음직한 러시아 길 친구 얀덱스 네비는 우리에게 조금 우회하는 길을 알려줬고 우리는 이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역대급 포트홀과 싸우며 70키로 이상을 달려야 했다. 아마 얀덱스는 명석하게 계산하여 교통정체 등으로 더 오래 걸리는 길보다는 차 한대 없는 이 길을 알려줬겠지만 포트홀은 계산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캠핑카 레디가 망가지고 있구나 싶은, 엄청난 비포장길에 모든 것이 떨어져 나뒹구는 상황 속에서도 봄이 오는 풍경은 진짜 끝내줬다. 물이 흐르는 강가, 거위떼, 소, 풀빛 들판, 황량한 서부극의 풍경, 달리는 기차, 새로운 지형… 그래서, 우리가 이 길로 들어선 것과 아닌 것 중 뭐가 좋은 것이었던 걸까? 또 생각해본다.
날씨가 따뜻해지는데, 에어컨이 고장났다.
간사한 인간은 어제까지 히터를 틀다가 오늘 따사한 햇볕 아래서 에어컨을 틀었다. 어라? 에어콘이 안 나온다. 가스 문제면 간단하지만 콤프레셔가 고장났다면… 잘하면 남은 여행에 에어컨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절망이 잠시 드리웠지만 지금은 신기하게도 안되면 어쩔수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기나긴 길을 포트홀과 비포장으로 연속 따귀를 맞으며 오다보니, 결코 원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관대해진 것 같다.
주유를 위해 평점5의 끝내주는 주유소에 도착했다. 경치도 끝내주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화장실을 보유한 곳에서 우리는 핫도그로 허기를 때우며 에어컨을 점검했다. 컴프레셔가 망가졌다! 수리에 큰 돈이 드는데다 과연 고칠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심란한 마음을 이끌고 해질녘 볼고그라드에 도착했다! 차가 멈춘건 아니잖아? 일단 생각을 멈추고 하고 싶었던 볼가강 밤산책과 맥주와 맛있는 음식을 즐기자!
그동안 도시에 가더라도 너무 추웠기때문에 바깥 활동을 잘 하지 못했다. 볼고그라드는 도착 전부터 우리에게 시베리아 횡단 여정을 마감하는 마지막 도시 여행이었고 일기예보는 낮기온 20도 정도로 맑고 선선했기에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도시입성을 앞두고 우리는 트럭카페에서 목욕재개를 했다. (다음 목욕은 그 후 6일만에 하게 된다ㅋㅋㅋ)
볼고그라드, 드디어 봄.
볼고그라드 도시 중심인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 앞에 차를 세웠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 성당은 붉고 아름다웠고 날이 따뜻했다. 처음으로 나들이 복장(그나마 격식을 갖춘 옷을 한벌씩 가져왔다)을 갈아입고 가볍게 밤산책에 나섰다. 시베리아 횡단 동안 매일 상상했던 그 순간이었다. 선선한 밤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걸으니 마치 서울에서 한강 근처를 산책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볼가강을 끼고 있는 도시라 그럴지도 모른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공원을 지나 강가에 갔다가 기대하던 레스토랑에 갔다. 생맥주를 다양하게 파는 집이었다. 똠양꿍(러시아에 의외로 똠얌이 많음), 훈제삼겹, 피시앤칩스를 시켰다. 매우 맛있지만 양이 많았다. 러시아 카페에서는 디쉬1개가 거의 0.5인분인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는 진짜 1인분이었다. 쉴새 없이 달렸고 긴장한 탓에 술 한잔하며 잠든 날은 별로 없다.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도시의 밤을 즐겼다.
여깁니다.
누군가 볼고그라드에 온다면 추천하고 싶은 집!
Gastropab Biblioteka
Ulitsa Alleya Geroyev, 2, Volgograd, Volgograd Oblast, 러시아 400052
이렇게 시베리아 횡단의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