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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입국이 거절됐다.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9탄

by 공구부치


2024년 4월 4일, 조지아 입국이 거절됐다.


조지아 입국할때 동승자는 내려서 건물에서 별도로 입국심사를 받고 운전자는 차와 함께 심사를 받는다. 나는 금방 넘어왔는데 하나와 차가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불안해하고 있는데 하나가 잠깐 뛰어와서 문제가 생겼으니 기다리라 한다. 멀리서 보기에 차를 다시 돌리더니 국경을 넘지 못하고 서 있었다.


하나나 나나 러시아 전화는 먹통이 된 상황에서 서로 간에 연락이 두절됐다. 일단 나는 국경에서 급히 조지아 유심을 사서 끼웠고, 잠시 와이파이에 연결된 하나와 극적으로 카카오 전화 연결에 성공, 우리 캠핑카 통과가 거부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락이 두절되고 소식도 알 수 없는 수십분의 시간 동안 피가 바짝 말랐다.


일단 나는 영사콜센터에 앱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한 뒤 조지아 영사관으로 연결됐다. 조지아 국경에서는 우리더러 입국하려거든 사람만 입국하고 차량은 여기 두고가라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지아 입국한지 10분만에 다시 출국(?)하여 국경을 못 넘고 있는 캠핑카와 하나에게 가야 했다.


다시 이미그레이션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내가 러시아 비자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출국시켜줄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인은 러시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기에 문제 없다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세 번을 쫓겨난 끝에 겨우 영사관과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겨우 다시 조지아를 출국(?)할 수 있었다. 국경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서 재회했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안도가 되었다. 조지아 영사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곤경에 처한 나약한 여행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것을 포함해서 실제로 여러 시도를 매우 빠르게 진행했다.


우리를 실제 막아선 국경 경찰에게 영사관 직원을 바꿔줄테니 조지아어로 상황을 주고받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통화는) 금지/거절이라고 하며 너희가 직접 이야기해야한다, 입국거부 문서를 운전자에게 이미 줬다고만 했다. 조지아 내무부 명의의 무시무시한 입국거부 문서를 보니 이의제기 하고 싶으면 10일안에 하라고 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입국 거부문서를 들여다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차량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운전자에 대한 거부였다. 이상했다. 우리에게 조지아 가고 싶으면 차를 놓고 들어가라고 하면서 입국거부 문서를 발부하다니. 앞뒤가 안맞았다. 그런 이유로 결국 이 문서의 무게감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입국 거부된 표면적인 이유는 이랬다.


1. 한국 자동차 번호판과 차에 부착한 스티커의 영문 번호가 같은 번호인지 증명할 수 없다. (해외에 나가는 차량은 영문 스티커 번호판을 붙인다. (예) **라**** =**RA****)

2. 조지아를 통행하려거든 러시아나 다른 나라 차 같이 금속번호판을 달아라.


이렇게 하는게 정석

참고로 육로 횡단하여 조지아 입국하는 거의 모든 여행자와 차들은 같은 통관 대행사를 이용한다. 알아보니 작년에 넘어간 90여명 중 조지아국경에서 번호판이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고 전체 국가에서도 없었다고 했다. 한국번호판을 맘대로 훼손하면 불법이 된다. 한국번호판으로 임시 수출입 통관을 한것이기 때문이다. 임시 수출입 차량은 여행자가 본국에 돌아가 해당 구청에 복귀 신고도 해야 한다.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으나 금속으로 제작된 영문 번호판 가져오라는 대답만 반복됐다.


목요일 저녁이었다. 영사관에 조지아어 레터를 부탁했고, 방안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셨다. 우리에게는 금요일 하루가 남아있었다. 주말이 되면 관공서는 멈추고, 우리는 기약없이 주말을 이 곳에 갇혀있던지, 아니면 러시아로 되돌아가서 2천키로 정도 올라가 에스토니아로 나가던지 선택해야했다.


대사관이 보내준 레터의 내용은 이렇다. 다시 국경 통과 시도할때 책임자에게 보여주려는 생각이었다.


1. 한국정부는 (한국인)해외여행자에게 영문 번호판을 별도로 발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량 임시수출입 절차를 밟고 영문자동차등록증을 갖고 여행을 다닌다. 이건 모든 자동차 해외여행시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영문자동차등록증 이미지를 첨부하며) 이 등록증은 한국정부가 공식발급한 문서이다.

3. 이에 여행자들의 통과를 요청한다.


그 사이 고마운 분들과 많은 통화를 했고 적극적으로 방법을 알아봐주셨다. (슈퍼스타게스트하우스 장사장님, 통관대행사 대표님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한밤중에 온 현타로 아이유 영상보며 마음 다스리는 중인 하나. 머리 못감은지 5일 지남


일단 국경 검문소 앞에서 개기기로 했다. 차를 두고 떠나면 또다른 출입국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아무래도 눈에 보여야 뭐가 해결될 것 같아서였다. 일단 현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통관대행사 대표님 이야기에 용기를 내서 새벽3시경 다시 입국심사를 받으러 가봤다. 아침에 다시 오라고 하길래, 그냥 가긴 아까워서 사무실에도 올라가서 다른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보았지만 결론은 같았다. 처음 우리를 입국심사했던 경찰이 집에 안가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그새 영사관은 레터를 보내주었고 우리는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국경 통과를 시도했다. 이때가 최악이었다. 우리가 끝까지 버티자 우리를 처음 입국 거부했던 그 경찰은 고압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가라고 하며 통역관을 불러오더니 우리 앞에서 카메라를 켜고 “너희는 지금 당장 돌아가라”는 공증을 해버리는 것 아닌가.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큰 소리로 나가라고만 외칠 뿐이었다. 끌려나가는 것만은 막아야 겠다 싶어 다시 캠핑카로 퇴각했다.


3번의 뺀찌를 먹고 24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지쳤다. 나는 두번이나 울뻔했다. 정확히는 울먹였다. 한번은 조지아 영사님과의 통화 중에 이렇게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막막해서. 또 한번은 우리 연락을 기다릴 엄마와의 통화에서, ”난 괜찮아!“라고 했지만, 하나 말로는 나는 이미 목소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의 표정이 엄청난 걱정 모드로 바뀌는 것을 보고 끊고 나서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느새 점심 시간이 지나버렸다. 우리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짜장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다. 엄청 아끼던 음식인데 지금 먹는 것이 이 짜장면의 가치에 걸맞아 보였다. 갑자기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우리 차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처절하게 쫓겨난 우리는 “이제는 국경에서 빨리 꺼지라는 것이구나”하며 놀라서 문을 열었다.


“해결책을 가져왔어”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는 먹던 짜장면을 서둘러 정리하고 경찰을 따라갔다. 트랜싯이라 불리는 조지아 임시 번호판을 달고 국경을 넘는 방법이었다. 트랜싯 번호판을 국경에 있는 은행에서 구입해서 달고 다니다가 출국할 때 반납하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한 켠에서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내보내준다니 이게 어딘가 싶어 시키는대로 얼른얼른 일을 진행했다. (번호판 가격은 크게 비싸지 않다. 한국돈 5만원이 조금 안되었던 듯 하다.)


트렌싯 번호판
바로 붙임


아래 위 번호가 안맞지만 이 상태로 탈출


그 때 우리가 짜장라면을 먹지 않았더라면? 지난 이틀간 너무 멘탈이 털리다보니 입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러시아로 다시 길을 떠나려면 기운을 내야 하니 밥을 챙겨먹자는 것이었는데, 이 짜장면을 먹지 않고 경찰이 오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났더라면? 진짜 한치 앞도 모르는거구나 싶었다.


조지아 영사관과 통화해보니 내무부 등과 소통하며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해외에서 이렇게 빨리 문제가 해결될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너무 고마워서 이후 외교부 게시판에 감사글도 남겼음)


(지금 보니 사진이 거의 안남아있다. 비장한 상황설명 영상은 남아있지만 여기다 올리긴 너무 웃겨서)


4월 5일 금요일 오후 4시, 밤을 새고 국경을 탈출했다.


누가 잡을새라 속도를 높여 달렸다. 이 일이 없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조지아의 풍경을 보니 정말 눈물이 났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3천키로를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정말 다행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국경을 넘지 못하고 돌아갔다면 에스토니아 국경을 넘을 때 너무 두려웠을 것이라는 거다.


조지아 국경을 넘자마자 웅장한 카즈베기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사람에게는 CG같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지형과 높이, 깊이, 넓이였다. 조지아를 보기도 전에 정이 다 떨어진 줄 알았던 우리는 놀라운 풍경에 감탄하며 길을 달렸다. 약 20키로도 달리지 않아 우리는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향했다. 카즈베기 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산위의 교회로 잘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다.


잘보면 보이는 교회 아래 노란 머리 레디


아름답다


교회까지는 너무 가파른 길이라 겨울철에는 현지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들었다. 하지만 길이 꽤 녹아 있는것 같아 과감히 도전! 결론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너무 쫄렸다. 엄청난 급경사와 커브, 거의 다와서는 덜 녹은 눈때문에 차체가 걸리는 등 위기의 순간이 잠시 찾아오기도 했다.


솔직히 이 교회와 풍경에 대한 감상은 지금 크게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조지아의 첫 여행지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만큼은 생생하다. 드디어 이 곳을 여행하게 되었으며, 극한의 해방감과, 그리고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하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다. 여행하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지배하는 이 곳의 공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몹시 피곤해보임


여행하는 사람들 속에서 행복함


그리고 우리는 다시 산을 내려와 마을 건너의 대형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에 주차해도 땅이 기울어 있어서 우리는 비틀거리다 잠깐씩 술에 취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여행을 시작하고나서 행복수치는 이날이 최고였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캠핑카에서 밥을 했고 아껴둔 된장찌개를 끓였다. 맥주 한잔을 따라주며 시베리아 횡단 동지들의 유튜브를 봤다. 그리고 조금씩 한쪽으로 미끄러지는 기울어진 캠핑카에서 기절한듯 잠들었다.


된찌와 함께 우리보다 조금 일찍 출발한 하퍼루트 유튜브 시청


기울어졌지만 평온한 우리집에서 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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