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드디어 조지아! 카즈베기에서의 첫 숙소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20탄

by 공구부치

유라시아 횡단 시작 후 처음으로 숙소를 구했다. 단돈 33달러. 방안에 화목난로가 있고 3면에 창 밖으로 웅장한 카즈베기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니지, 동네를 끼고 있으므로 산은 좀더 아늑한 풍경이 되었다. 지친 심신을 회복할 겸 우리에게 주말은 없을수도 있는(국경에 묶여있어야 했던) 시간이므로 무엇을 하려하지 말고 계획없이 되는대로 지내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 테라스

여행해보니 우리는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고 좋은 곳과 싫은 곳이 확실해서 패스도 빠른 여행자들이라 또 어딘가로 움직이고 싶어할수 있으니 이런 잉여의 시간은 왠지 설레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 앞에 차를 주차하고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구경에 나섰다. 택시기사들이 호객하고 환전소와 카페 등이 옹기종기 들어선 트레킹 시작점 마을, 소와 말이 자연스럽게 산책을 다니는 곳이었다. 아직은 좀 쌀쌀한 초봄 날씨.


옆집 사는 소들

여행자 바이브에 신났음


문을 연 식당이 많지도 않았지만 구글 평점을 보고 찾아간 식당은 온갖 나라 인사말을 구사하는 주인장 덕에 여행을 즐겁게 시작했다. 근데 우리 입맛엔 딱히 맞지 않았다. 너무 짰고, 짰으며, 짰다. 주인장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하우스 와인도 그냥 그랬다.


조지아는 와인의 성지라는데 시그나기에 갔을 때 와인투어를 제대로 해봐야지 싶었다. 우리 옆으로는 러시아, 스페인 여행자들이 자리잡았고 모두 비슷한 메뉴를 주문했다. 이를테면, 주인장이 우리를 가리키며 “쟤네가 주문한게 그거야, 너희 맛있니?” 그러면 ”오, 우리도 같은 것으로“ 이런 식이다.


조지아의 첫 식사는 솔직히 별로였으나, 어제 게르게티 사메바교회와 마찬가지로 여행자 바이브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 이제 진짜 여행을 시작한 느낌도 들었다.


조지아 첫끼, 특히 저 미트볼이 짜다
조지아 빵 푸리를 처음 산 날

친절한 게하 주인이 얼리 체크인을 시켜줘서 2시에 입실한 후로는 일주일만에 깨끗이 샤워를 했고,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까먹고, 누워 있거나, 수다를 떨고, 바깥을 내다보고, 무엇보다 넷플릭스 신작 닭강정을 보며 히히덕 거리며 맥주 한잔하는 저녁을 보냈다. 무지하게 행복했고 감사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2024년 4월 7일 일요일, 100%충전 완료, 본격 여행 시작!



타닥타닥 타오르는 화목난로와 함께 바삭한 하얀 이불을 덮고 잘 자고 일어난 아침, 우리의 컨디션은 충분히 회복됐다. 카즈베기산 하이킹을 하고싶었지만, 정보 수집 결과 지금은 눈이 쌓여 올라갈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트빌리시를 향하는 길에 이 곳 저 곳 들러보기로 했다. 여행 가이드 친구가 알려준 구다우리 전망대를 향하는 길에 케이블카를 발견하고 차를 돌렸다.


화목난로가 정말 좋았던 조지아 스테판츠민다 게스트하우스
모든 장작 소진


하이킹이 어렵다면 케이블카라도 타보자!


스키장에서 운영하는 곤돌라였고 총 세 번에 걸쳐 케이블카를 갈아타며 정상으로 향했다. 어느새 해발고도 2000미터가 훌쩍 넘었고 온 세상이 하얀 산 위로 향했다. 모든 케이블카를 다 타보는 것이 1인 23000원 정도로 카드결제도 가능하다. 결론은 매우 타길 잘했다는 것. 전망만 보려면 그보다 저렴한 2회권을 끊는 것도 좋다. 멋진 풍경 실컷 보고 내려왔다. 케이블카 질릴 때까지 탈 수 있다.


케이블카 금액표
이 카드로 케이블카를 무제한 탑승 가능
구다우리 방문 인증
힘 안들이고 정상 사진 촬영



Kobi-Gudauri Ski Resort

Kobi-Gudauri, Kobi 조지아


트빌리시로 향하는 길은 엄청났다. 무시무시한 산위의 터널들이 이어지고 엄청난 포트홀과 끝없이 이어지는 화물트럭들, 주요 구간은 교행이 어려운 좁은 길이라 한시간 가까이 정차해서 기다리기도 했다. 김하나 인생 극악 난이도의 운전이었으나, 고도 2900미터의 깎아지른 고산 도로에서 보는 카즈베기산의 장엄한 풍경은… 우리가 진짜 세계 여행 왔구나… 하는 감각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고작 70키로를 2시간동안 운전해 와서 해발고도 790미터의 아나누리 요새 앞 강가 공터에서 잠을 청했다.


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 가는 고산도로


2024년 4월 8일 월요일, 드디어 노지 캠핑의 세계로


조지아부터 본격적으로 파크포나잇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파크포나잇은 캠핑카여행자들이 차박지를 공유하는 앱으로 유라시아 횡단여행자라면 1순위 필수앱이다. 첫번째로 픽한 이 곳은 캠핑카로 하루 보내기에 아주 좋았다, 창밖으로 아나누리 요새가 보이고 전면은 강이 흐르며, 파쇄석에 평탄한 바닥으로 되어있다.


유튜브로만 보던 오프로드용 유럽 캠핑카 한대, 그리고 좀 늦게 러시아 캠핑카 한대가 들어왔다. 3대의 캠핑카가 있으면 세상 힘이 되고 아늑하다. 우리는 절대 혼자 있는 캠핑은 좋아하지 않는다 ㅋ 저녁식사로는 크림파스타를 해봤다. 러시아에서 사온 소스가 꾸덕하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많이 사올걸… 처음으로 작은 마트에 들렀다. SPAR라는, 유럽에서도 볼 수 있는 마트다. 조지아 물가는 러시아보다 좀 비싼것 같았다. 일단 식당도 러시아보다 비싸다.(그 이후 모든 곳이 러시아보다 비쌌닼ㅋ)


독일 캠핑카 이웃

아직은 유럽 캠핑카가 신기할 때


맛있는 러시아 크림스파게티

조지아에 들어오며 우리 여행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렇게 조지아 입국을 전후한 다이나믹한 일주일을 정리하고, 아나누리 요새 산책에 나서야겠다. 캠핑카 여행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는 조지아 여행이 시작됐다. 길 가다 재밌어 보이거나 좋은 풍경이 나오면 세우면 되고, 나의 앞마당이 매일 바뀌는 설레임. 집을 나서면 바로 멋진 곳으로 산책을 갈 수 있다는 것.


집 앞 풍경

오전 일찍 아나누리 요새에 갔다. 예상과 달리 사람이 많았다. 개도 엄청 많았다. (조지아는 모든 곳에 개가 많았다.) 조지아는 초기 기독교 유적을 많이 볼 수 있고 이 곳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는 역사와 유적에 좀 취약한 편이라… 관심있는 분들은 검색해 보시면 된다. 스테판츠민다에서 트빌리시로 향하는 길에 편안하게 차박하고 여행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인건 분명!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처럼 한바퀴 쫙 돌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나누리 요새


관광객1
관광객2


비오는 므츠헤타 돌아보기


므츠헤타는 트빌리시 들어가기 전 들러볼 수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기대하며 갔지만 비가 죙일 주룩주룩 내리는 것 아닌가. 아무리 좋은 곳도 비가 너무 오면 여행이 힘들고 좀 처량맞아 보인다. 그래서 진짜 마을 한바퀴 돌고 트빌리시로 떠났다. 그래도 예뻤어. 그치? 다만 주차장 아저씨가 우리에게 주차요금을 더 비싸게 징수해서 기분이 좀 그랬고, 아무튼 여행지란 참 사람과 상황따라 케바케인것 같다.


우리 차는 3라리인데 5라리 받음


그렇게 저녁 무렵 우리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하게 된다. 행복한 기억을 많이 남긴 아름다운 트빌리시 3일은 다음 편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지아 입국이 거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