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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트빌리시에서 3박4일 여행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21탄

by 공구부치

2024년 4월 8일, 트빌리시 도착


국경에서의 혹독한 시간 덕분에 조지아에 대한 기대가 크게 없어진 상태였다. 트빌리시에는 월요일 저녁 무렵 도착했다. 유튜버 민지영TV님에게 소개받은 대통령궁 앞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해가 저물었지만 도시 구경은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주변 산책을 나갔다.


우리가 주차한 이곳은 여행자에게 최고의 장소였다. 바로 옆에 잘 정비된 공원이 있었으며, 멋진 뷰를 자랑하는 평화의 다리가 놓여있었다. 이 공원에는 나리칼라 요새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고 쿠라강이 흘렀다.


환상적인 앞마당, 평화의 다리
쿠라강 야경
올드 트빌리시 가는 길


알고 봤더니 <평화의 다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명소였다. 평화의 다리를 건너 골목으로 접어들면 관광객 대상의 레스토랑이 밀집한 좁은 골목이 나온다. 호객행위가 있었고 조지아 전통 음식을 파는 곳인데 우리는 거기서 음식을 사먹진 않았다. 이 골목을 지나면 올드 트빌리시 거리가 나온다.



하나는 여기에 오니 이제사 외국에 온 것 같다고 했다. 하긴, 러시아 횡단 기간은 마치 출퇴근 하듯이 잠에서 깨면 달리는 것이 일이었고 해가 지면 퇴근하는 듯한 삶을 살았다. 신기하게 그런 루틴이 좋기도 했다. 아무튼 러시아를 건너왔음을 완전히 실감한 시간. 우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트빌리시 야경에 크게 흥분해서 내일 제대로 된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2024년 4월 9일, 조지아 독립기념일 트빌리시 구경하기



둘째날이 밝았다. 러시아 횡단 때는 늘 새벽에 일어났지만 신기하게 도시에 오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오전 느즈막히 가방을 챙겨 어제 봐둔 올드 트빌리시 거리로 향했다. 오늘은 할일이 있다. 열흘 묵은 빨래, 환전, 그리고 유심 구입!



세탁은 순조로왔다. 빨래를 큰 가방에 싸들고 나온 우리는 구글을 뒤져서 나온 코인워시에 가서 빨래를 맡겼다. 그러고는 인근 카페 아무 곳이나 가서 빨래가 다 되길 기다렸다. 아무 곳이라고 하기엔… 커피가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다. 여행 시작 후 사먹은 커피 중 최고였다. 카페 이름도 <데일리 그라인드>, 매일 그라인딩 한다는 뜻이겠지! 누군가 트빌리시에 온다면 추천할만한 집이다.


빨래방 방문
올드 트빌리시 거리
데일리 그라인드 카페

두 곳 정도를 다니며 환전을 했다. 시내에 환전소는 정말 많다. 가는 곳마다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환율이 좀더 좋은 곳이 있으니 한번에 많이 하기 보다는 필요할때마다 비교해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점심은 현재 유라시아 횡단중인 민지영TV의 민지영님이 추천해준 푸드코트로 갔다. 구소련 건물을 리모델링한 멋진 곳이다. 루프탑에서 보는 경치가 멋지니까 꼭 올라가보자!



정작 문제는 유심이었다. 가장 대중적이고 잘 터진다는 <막티>에서 개통하려고 찾아갔더니만 매장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 아닌가. 알아보니 하필 4월 9일은 조지아 독립기념일이라 영업을 안하는 것이었다. 그때 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며칠 전 국경에서 급히 구입한 유심은 이 날 오후 5시가 되면 만료되기 때문에 그 전에 유심을 새로 해야했다.


내가 처음 구입한 유심은 <실크넷>이라는 통신사다. 앱을 다운받아서 탑업(조지아부터 유럽까지 보통 선불유심은 앱으로 돈을 충전해서 데이터를 구입할 수 있다)을 해보려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카드가 계속 결제 오류가 떴다.


조지아 국기를 망토처럼 뒤집어쓴 사람부터 여기저기서 판매하는 손깃발, 휴일에 들뜬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유심을 찾기 시작했다. 어제 므츠헤타에서 막티 매장을 봤을때 그냥 할걸! 여행하면서 후회는 대체로 소용이 없다. 지나가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지나가며 봐뒀던 통신회사에서 40기가(1달)에 26라리를 주고 했다.


지금은 그 통신사 이름도 기억 안나는데… 조지아에서는 무조건 막티로 개통하길 바란다.


그리고, 탑업(충전)은 앱을 쓰지 않고도 여러 방법이 있다. 조지아에는 온갖 공과금, 대중교통 충전 등을 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아주 곳곳에 있는데 여기서 핸드폰 탑업도 쉽게 된다. 아니면 거리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돈을 내면 바로 탑업 해준다.


돌아다니다 황학동 벼룩시장 발견


카즈베기 맥주공장에서 생맥주 마시기


그제서야 트빌리시 휴일 풍경도 눈에 들어오고 갈증도 났다. 이제 오늘 하기로 한 일을 다 했으니 꼭 가보고싶었던 카즈베기 비어로 향했다. 시원하고 맛있는 라거인 카즈베기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이 여기 있고, 이 곳에서 생맥주를 바로 짜서 포장해갈 수 있다고 한다.



Kazbegi Beer

68a Dimitri Uznadze St, Tbilisi 0112 조지아


게다가 직접 술과 안주를 사서 마실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이뤄진 이 곳은 오래 걷느라 덥고 지친 우리에게 최상의 맥주 맛을 보여줬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두툼한 유리잔에 담겨 나온 생맥주 한잔이 2천원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세지 안주는 조지아 음식 답지 않게 짜지 않고 맛있고 저렴했다. 심지어 안주도 kg 단위로 판매한다. 생맥주 4잔과 소세지 500g에 35라리 냈다. 분위기는 조지아 아저씨들의 성지 같은 느낌ㅎㅎㅎ



우리는 집에 가는길에 1층에서 생맥주 1.5리터를 포장했다. 1.5리터가 6.5라리밖에 안하니 3천원 조금 넘는 셈. 줄을 섰지만 낄 곳을 찾지 못한 우리를 가리키며 조지아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이제 얘 차례야”하며 알려줬다.(국경 경찰 트라우마 조금 치유) 안주도 함께 파는데 러시아에서 먹었으나 그담에는 찾기 어려웠던 짜고 쫄깃한 훈제 치즈를 발견했다! 하나에 2라리. 굿 프라이스! 우리는 현지 사람들 하듯이 거품이 넘쳐버린 맥주병을 수도꼭지에 대고 씻은 다음, 해질녘 강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 집으로 갔다.


맥주를 품에 안고 좋음


낯선 도시 한 가운데 우리 집이 있는 이런 삶. 이제 후딱 가겠지? 어쩌다 열심히 보기 시작한 <눈물의 여왕>을 보며 잠들었다.


2024년 4월 10일, 트빌리시 3일째,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오늘은 관광객 모드였던 어제와 달리 현지인 느낌으로 살아보고자 했다. 게다가 오늘의 중대한 미션은 퀴어 바에 가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안가는 퀴어 바에 굳이 해외에서 가려니 어색하긴 하지만 조지아도 성소수자가 크게 존중받지 못하는 보수적인 국가이다보니 이곳의 퀴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어디나 그렇듯 퀴어바는 밤늦게 열기에 안전하게 근처에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단 34달러, 퀴어 바까지 도보 90미터다!


방을 잡고 보니 주변에 크고 작은 바나 식당이 구석구석 들어차 있어서 어제와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더 트빌리시 사람들에게 가까워진 것 같달까? 에어비앤비 문연 후 거의 첫 손님을 맞은 듯한 주인은 프랑스남자였고 부인이 조지아인이라고 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딸을 데리고 친히 우리를 마중나왔다. 케이팝 덕분에 요즘 한국인은 왠만하면 호감의 대상이나 우리가 정작 케이팝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 “땡큐”하며 허허 웃었다.

열심히 꾸민 집에서 잘 쉬었다


무려 화장실 2개에 주방과 거실, 베드룸을 갖춘, 웰컴 탄산수, 생수, 초콜렛도 먹으라고 준비해준데다 목욕용품까지 모두 갖춘 곳이었고 주인은 틈만 나면 친절하고자 애썼다. 퀴어 바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우리와 맞닥뜨린 주인은 잘생긴 강아지와 밤산책을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가 종일 집 주변에서 나는 공사 소음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컸다. 우리가 대부분 시간을 밖에 있었다고 하자 크게 안도하며 종국에는 우리가 와줘서 너무 감동받았고 다시 보자는 이야기까지 하니 그의 숙박업이 진심으로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휘적휘적 걸어서 트빌리시 한바퀴


낮에는 재래시장에 가서 수영복을 샀다. 노련한 상인은 내가 거절할 새도 없이 꼭 맞는 수영복을 골라주었다. 한국에서는 래시가드로 온 몸을 꽁꽁 감싸지만 여행을 하면서 래시가드는 그저 말리기 힘든 옷가지들일 뿐이다. 이 때 산 수영복은 온갖 유황온천과 수영장, 바다수영 친구가 되는데…


한번 먹어봤는데 난 별로다


원두를 샀는데 맛은 없다


온갖 것을 다팔고 가격도 저렴한 시장 구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휘적휘적 걸어서 공장을 개조한 호스텔 및 문화공간인 “파브리카 트빌리시”에 가 보았다. 멋진 라운지와 독특한 샵, 야외 공간을 갖춘 카페와 맥주집 등 공간이 꽤 멋지게 꾸며져 있어서 우리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한잔했다.



파브리카 트빌리시

8 Egnate Ninoshvili St, Tbilisi 0102 조지아



조지아는 들개(길에서 사는 개들)가 참 많다. 하지만 귀에 인식표를 붙인 개들이 많고 어느 정도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곳에도 주인 없는 개들이 많았다. 그 순간 보호자와 산책을 나온 개와 들개 사이에 잠시 으르렁거림이 있더니 들개가 다른 개를 공격했다. 꽤 소리가 커서 다들 놀랐지만 주변 사람들이 얼른 둘을 떼어놓으며 일단락됐다.


이럴 경우 보통 들개를 저멀리 쫓아버릴텐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사람들은 들개를 토닥이며 안정시켰다. 그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들로부터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기도 했고 여전히 두려웠던 조지아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기분좋음


해질무렵 집 근처인데 안가면 아까우니 나리칼라 요새에 올랐다. 케이블카도 비싸지 않지만(조지아 교통카드로 가능) 어쩌다보니 걸어서 올랐다. 멋진 트빌리시 야경이 펼쳐져서 오르막이고 내리막이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거의다 올랐을 즈음 전망대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같이 헤매고 있던 아제르바이잔 청년들을 만났다. 잠시 4인 1조로 전망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바이바이 했다.


잠깐 길동무


저녁도 민지영님 추천 중국식당 <뉴아시아> 방문. 눈물 흘리며 마파두부와 꿔바로우 먹었다.


한국보다 맛남


이쯤되니 너무 피곤했지만 밤중의 메인 일정이 남아있지 않은가…


아무튼 우리는 방에 누워 실신 지경이 되어 있다가 밤이 되길 기다려 대망의 퀴어 바에 갔다. 해외 여행 이후 첫 방문이었다. 세계 각지의 성소수자 생존을 확인하는 시간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평일의 바 답게 한산했고 직원과 그의 친구들이 이따금씩 춤을 추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평일이라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뜨문뜨문 혼자 온 손님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어떤 커플은 놀라울 정도의 한적함에 놀라 발길을 돌리는 등 우리네와 크게 다를 것도 없긴 했다. 직원은 오늘말고 불금에 온다면 주말을 맞이해서 한껏 흥분한 퀴어무리들을 잔뜩 만날 수 있을것이라고 귀뜸했다. 그는 종종 드랙 공연을 하는 퀴어였는데 우리에게 트빌리시 프라이드도 알려주고 인스타를 교환했다. 그 바 골목 어느 건물에 무지개가 달려있었는데 바로 거기가 사무실이었다.


불금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평일의 퀴어 바도 나쁘지 않았다. 조지아 퀴어들의 건승을 바란다.



어쩐지 외로와 보인다


여러 홍보물들


아! 그리고 이 날의 중요 일정은 조지아 한국대사관에 방문한 것이다. 내 일처럼 열심히 문제를 해결해주어 우리를 조지아에 입국시켜준 영사님과 실무관님께 감사인사를 다녀왔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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