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22탄
트빌리시를 떠났다. 이제부터 며칠간 발길 닿는대로 조지아 로드트립이다. 좀 이른 시기에 방문해서인지 관광지든 아니든 사람은 별로 없었다. 넓은 초원 위에서 우리만 잠들기도 하고… 그래서 좋았단 얘기다.
첫번째 여정은 시그나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 곳은 유명한 와인 산지이자 탁트인 뷰를 자랑하는 산 위의 마을. 시그나기에서 하루 머물며 와이너리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시그나기로 들어서는 길은 좁았다. 관광버스들을 피해 좁은 길을 운전해서 마을 안의 가장 큰 공터 주차장에 차박하러 들어왔다. 한 바퀴 돌아본다. 성벽 쪽을 향하다 성문을 들어서니 멋진 뷰가 눈에 들어왔다. 좋아진 기분에 야외에 앉아 커피 한잔했다.
이곳 저곳 둘러보다 구글 평점이 괜찮은 와이너리 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운 좋게 테라스에 앉아서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었다. 와인 시음 1세트와 저녁식사를 시켰다. 테이스팅 가격이 2만원이 넘는데 5종 와인 양이 생각보다 작고 크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음식 맛은 괜찮았다. 분위기를 즐기려면 추천.
Okro's Wine Restaurant & Cellar
ილია ჭავჭავაძის 7a, Sighnaghi, 조지아
조지아 오고 처음으로 안 짠 음식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꽤 기울어진 주차장에서 시그나기 첫날밤이 지나갔다. 날이 밝자 우리는 빨리도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성곽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 선선한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며 조금 걸어 올라가니 어제 꽤나 북적였던 이 곳도 사람 한 명 없다. 탁 트인 전망을 보며 걸었다. 조금씩 실감이 났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 여기까지 와 있구나!
4월 12일, 컬러풀 듄과 최고의 캠핑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인접한 컬러풀 듄. 본격적인 사막은 아니고 사막스런 지형의 그라데이션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즐겨보는 유튜버 <두발네발>이 여기서 차박한 것을 보고 무작정 달려온 곳. 결론은 정말 추천! (다시 봐도 여기 같은 곳이 없다)
Gareja colorful dunes viewpoint
F92G+JX, Udabno, 조지아
한국을 딱히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두 눈이 둥그래질 이국적이고 황량한 풍경, 끊임없는 푸른 초원과 양떼를 마주하는 길, 그리고 우연찮게 인근 마을의 레스토랑이 자신들의 앞마당을 무료 캠핑장으로 내어준 것까지.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행복하네:)
이런 도로가 계속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와중에 다급하게 젖먹는 양
컬러풀듄을 둘러보고 점찍어둔 한적한 마을의 거의 유일한 식당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햇볕이 너무 좋아서 루프탑에 앉아 눈부시게 빛나는 조지아의 초원을 바라본 우리는… 꽤나 맛있는 조지아 음식과 시원한 낮맥에 한껏 기분이 들떴다. 누군가 조지아에서는 홈메이드 레모네이드를 주문해보라고 했기에 주저없이 시켰다. 진정한 레몬 착즙의 맛이었다. ㅎㅎㅎ
Udabno Terrace
შ172 kakheti region, 3801 조지아
관광객이 많이 가지 않는 지역이지만, 꼭꼭 들려보시라. 음식도 맥주도 와인도 사람도 최고…
레스토랑 앞 넓은 잔디밭에는 멋진 캠프파이어 플레이스가 차려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멋진 등받이 의자에 앉아서 해질 무렵 모닥불이라니… 여길 떠날 이유가 없었다.
캠핑카에 앉아 노닥거리다가 한국인 여행자 두 명을 만났다. 여행하며 일한다는 둘은 유튜브를 조금씩 시작한다고 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수다떨다가 서로의 좋은 여행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곧이어 식사를 하러 온 튀르키예에 살고 있는 영국+프랑스 부부와 그 아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분 좋은 가족이다. 소년은 우리 캠핑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많은 취재를 하더니 며칠 후 자신이 만든 신문을 결과물로 보내왔다.
두 번의 만남 모두 좋았다. 우리에 대해 숨기지 않고 대화했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당연한건데 뭘… 그치?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유라시아 여행 결산을 해도 아마 최고의 캠핑장
오후에는 마을 산책이나 나가봤다. 하교하는 어린이들을 보다가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가 할일없이 걷다가 저녁을 먹으러 들어왔다. 캠핑장소를 제공해준만큼 식당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동시에 맛있는 집이기에 기꺼이) 저녁식사도 주문했다. 이번에는 일몰을 바라보며 홈메이드 와인을 시켰다. 기분 탓인가? 조지아 최고의 와인을 마셨다.
밤이 되니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삼삼오오 불가에 모여앉아 시간을 보냈다. 꿈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행이 하고싶었는데, 해본적이 없어서 막연했던 그 여행이 지금 펼쳐지는 것 같았다. 횡단 시작 후 한달이 흘렀다.
초원의 캠프파이어, 내성적인 손님들이 떠난 뒤.
4월 13일, 조지아 최고의 여행지, 바르지아로 가는 길
레스토랑이 제공한 목초지의 캠핑장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돼지가 우리 집 앞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조지아를 여행하면 소, 양, 돼지,개를 원없이 만난다. 아쉽지만 이 곳을 뒤로 하고 바르지아로 향했다. 바르지아는 하나의 친구가 추천한 곳이아. 바르지아로 가는 길은 매우 높고 험했지만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캠핑카 문열면 돼지가 풀뜯고 있다
자동차여행을 시작한지 한달이 넘었다. 아점을 사먹고 간만에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너무 피곤한 것이다. 자동차여행의 매력이란 차창 밖을 스쳐가는 모든 길이 여행인데 무엇보다도 탈 것을 좋아하는 내가 잠이 들었다니. (바르지아로 가는 길 중 우리는 높은 산을 넘는 길을 택했다.)
드디어 갈릭치킨을 먹어보았다. 그냥 동네식당인데 짜지만 맛있다!!!
결국 40대는 에너지드링크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하나에게 물었다. “너 여행시작하고 집에 가고싶었던 적 있니? 난 오늘 첨으로 집에 가고싶더라.” “집에가서 뭐하고 싶은데?” “하고싶은건 없고 그냥 집에 가고싶은거지.”
여행을 좋아한다. 마침내 긴 여행을 떠나고나서야 그것에 대해 되묻게 된다. 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채근하지 않는데 우리는 매일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고 어디서 자야 안전할지 찾아보고 생각보다 할일은 많아서 하루가 짧은걸까? 여행 속의 휴일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 앞으로도 고강도 박카스가 때때로 필요하다면.. 여행이란 것을 그렇게까지..??
상념에 잠겨있는데 하나가 외쳤다. “창밖을 봐!” 겨울이 끝난줄 알았는데 어느덧 해발고도 2130미터에 이르자 산 정상에 호수가 나타났다.
탈것을 좋아한다. 자동차여행을 좋아한다. 2017년 베트남에서 하루종일 장거리 버스를 타고 차창밖 풍경을 구경하는건 아무리 오래여도 질리지 않았다. 대충 그때쯤부터 이런 여행을 떠올려봤던 것 같다. 에너지드링크 때문이었을까? 어느덧 잠이 깼다.
조지아 바르지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