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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Mar 14. 2022

웹소설 속 주인공의 죽음

이번생은 다들 처음이라

최근 거의 10여 년 간 한국과 일본의 서브컬쳐에서 여성향이건 남성향이건 구분 없이 쓰이는 인기 소재는 회귀, 빙의, 환생이 아닐까 싶다. 회귀란 사망한 인물이 과거로 되돌아가 자신의 삶을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고, 빙의는 현실에 살고 있던 인물이 죽어  자신이 읽있던 책 혹은 게임속의 등장인물로 되살아난 것을 주로 뜻한다. 환생 역시 빙의와 유사하게 죽어서 현재 살고 있던 것과 다른 세계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말하는데, 빙의와는 달리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재들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1화 혹은 작품에 따라 0화나 프롤로그로 불리는 곳에서 일어나며, 작품 내 주된 내용은 주인공이 죽음을 한 번 이상 경험한 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다룬다. 이 때 주인공은 죽기 전의 기억과 정보를 가진 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이 "생전의 정보"와 "죽음" 두 가지일 것이다.




먼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회귀, 혹은 루프물에서의 본인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 강간피해 및 가족의 죽음에 비견할 만한, 혹은 그보다 강력한 각성 및 행동 수정의 동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죽음은 되살아난 이후 인물이 이 전과는 다른 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강력한 개연성을 제시하는 전통적인 장치중 하나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회귀에서 죽음이 소재로 더 자주 쓰이는 것에 대해 사족을 덧붙이자면, 더 이상 강간 피해가 소재로 사용되는 것에 반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한다."냉장고 속의 여자" 라는 단어가 사용될 정도로, (주로 남성)주인공의 행위 촉발 행위에는 가까운 여성의 죽음 혹은 강간이 자주 사용되어 왔다. 회귀라는 소재 자체는 지금 만큼 여권신장이 되지 않았던 시대부터 있어왔지만, 그것이 지금에 와서 더욱 인기를 얻는것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생과 빙의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죽음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 죽음 그자체에 대한 슬픔은 있더라도 죽음과 연관된 대상에겍 분노를 일으킬만한 소지는 없다. 그럼에도 이 소재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재인데, 이것이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죽어서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결코 바꿀 수 없다 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동의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실제로 그 부모세대에 비해 현재 청년층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사회 구조와 백여 년간 축적된 부는 개인의 노력으로 오르기 힘들다는 자조적인 시선에 관한 유행어는 동아시아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0년대 국내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단어들, 부모를 잘 타고 나야 했다는 의미의 일본 유행어 '부모 가챠'와 같은 말이 그 예이다. 이 단어들은 인터넷에서의 쓰임을 넘어 전세대가 아는 단어가 되었다. 사회가 이들이 새로이 명명한 계급론에 어느정도 동의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당연히 모든 작가나 독자가 사회에 불만을 갖고 웹소설을 읽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은 편안한 것을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환생자 대다수는 일반인 보다 태생적으로 훨씬 강하거나,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소위 "치트 능력"을 선사 받고, 이를 통해 보다 수월하게 영웅화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열혈을 원치 않는다. 그것이 노력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가져서 일수도 있고, 현실에서 하고 있는 노력을 굳이 여가의 시간에서도 보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사회가 실제로 깨기 힘든 계급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인지, 독자층이 힐링을 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갈망하는 어떤 사회의 모습이, 치트능력을 부여 받아 되살아난 인물로 만들어졌고 그 유행이 십여년째 이어져 오고있는 것은 확실하다.




생전의 정보는 환생, 빙의, 회귀 모두에서 주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빙의물과 회귀물의 주인공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생전의 정보를 통해 알고 있고, 환생자는 대체로 현재보다 과학수준이 떨어진 곳에 전생함으로서, 자신이 가진 미래의 기술을 활용해 사건을 수월하게 해소해 나간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 예언은 고대부터 인류의 갈망이었다. 문명 이전부터 전지구적으로 주술사나 예언가가 존재해 왔던 것이 일례일 것이다. 주인공이 죽기 전의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동시대를 살고있는 인물들에게는 예언에 해당하는 일이다. 주인공들은 그것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피하고, 이익을 선점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당장 몇 분후의 일도 알 수 없다. 앞으로의 전개를 알고 있는 인물은, 오늘 산 주식이 어떻게 될지, 알트 코인이 몇 시간만에 상장폐지 될지 같은 것을 미리 알고 싶은 그런 욕망의 산물일 것이다.


소제목에서 말했다시피, 모든 인간의 삶은 처음이다. 그러나 회귀, 빙의, 환생을 겪은 인물들의 삶은 2회전이라고 볼 수 있다. 삶은 그들의 나이 만큼 어려운 경향이 있다. 특히 웹소설 주인공들의 주 연령층인 고등학생경~20대 중반까지의 걱정과 고민들 중 많은 수는 그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침착해진 연령대에서 보았을 때 쉬워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감정에 의한 문제나 인간관계에 의한 일들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신체적 연령보다 실질연령이 높은 주인공들은 유사한 환경에 처한 또래들에 비해 일을 수월하게 처리해 내거나, 그로 인한 정서적 손상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부모조차 부모가 처음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전 생에서 해당경험을 해보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경험자의 여유를 가지고 사건을 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생전 정보와 전생의 경험은 레벨업 속도가 빠르다던가 하는 치트능력 보다도 더욱 치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문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그것들이 만들어진 현실에서 동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부가 선호하는 것이 아닌, 많은 수가 그것에 환호하고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그것에는 반드시 현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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