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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Mar 08. 2022

슈퍼 히어로가 태어나지 않는 곳

왜 한국에서 슈퍼 히어로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일까

슈퍼히어로물이란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초인적 힘을 가진 인물들이 국가나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미덕으로 삼는 것은 현대의 기사도라 해도 좋다. 민간인, 특히 여성과 아이의 구난을 최우선으로 삼고, 대의를 위해 본인을 희생하고 사회에 무보수로 헌신한다. 강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기반으로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들의 행동 원동력이다. 


히어로물이 유행 할 때는 개인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때 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실의 불안요소를 창작물 내에서 초인적인 힘을 가진 가상의 인물이 대리적으로 해결하게 만들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마블사의 대표 영웅인 캡틴 아메리카와 DC의 대표 영웅인 슈퍼맨이 각각 1940년과 1938년, 중일 전쟁~ 2차 세계대전기, 국제적 혼란이 야기되는 중에 만들어지고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과, 해당 캐릭터들이 냉전시대에는 소련을 모티프로 한 국가와 단체를, 2000년대에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과 대립하고 승리를 이끌어내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그런 것들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 단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다만 범지구적 문제와 그에 따른 불안이 야기되는 모든 지역에서 슈퍼히어로물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인류사에는 늘 전쟁이 있어왔고, 정보 통신의 발달로 20세기에 들어서는 다른 대륙에서의 전쟁 및 테러상황에 대해전 지구인들 모두가 접해왔음에도, 히어로물은 유독 20세기 중후반의 일본과 최근 100여년에 걸친 미국 위주로 생산되고 소비되어 왔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해당 시기 두 국가가 전지구적인, 혹은 아시아의 패권 국가임을 자처했던 것이 슈퍼 히어로들의 탄생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지구의 경찰을 자처하며 각종 전쟁에 개입하는 100여년을 보내 왔고, 일본은 인근에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비견 할 수 었는 나라가 없는 상태로 반세기를 보내 왔다. 히어로물이 만들어지고 주로 소비되던 당시 창작자 및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는 지구는 우리가 아니면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라는 국뽕이 어느정도 근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볼만 하다.


유사하게, 중국의 영화 <전랑2>(2017) 역시 비범한 능력을 가진 한 개인(사실 이쪽은 슈퍼히어로 보다는 고전 설화의 영웅서사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이 세상을 구한다는 면에서 히어로물로 볼 수 있는데, 2010년대 후반에 들어 중국이 G2라 불리며 전지구적 패권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시기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봄직하다.


슈퍼히어로의 탄생이 해당 국가의 위신과 연관되었다는 가정하에, 한국은 슈퍼 히어로물이 생겨나기 적합한 곳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전쟁과 냉전의 최전선에서 현재까지 국가단위의 편집증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 인근에 군사력으로 우위에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자각 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국방 및 경제력이 주변국가들에 비해 부족하고 그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는 한국이 지킨다와 같은 발상은 나타나기 다소 어렵다.




두번째로 한국에서 마초이즘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도 슈퍼히어로의 탄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미리 말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마초이즘은 반페미니즘 성향의 남성 우월주의가 아니라 전통적인 강한 남성성에 대한 선망을 뜻한다. 슈퍼 히어로의 기본값은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며 강한 육체적 힘을 근간으로 문제를 해결해오는 극도의 알파메일이다. 당장의 더 배트맨(2022)만 보더라도, <해리포터:불의잔>(2005)의 세드릭 디고리,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 켈런과 같은 여리여리한 미소년 이미지를 거의 10여 년간 가지고 있었던 로버트 패틴슨이 청소년기 이미지를 완전히 타파 하고 근육맨이 되어 나온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알파메일의 슈퍼히어로는 유효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남초집단 내에서 근육량이나 힘을 과시하는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전 사회적으로 그것이 통용되는 수준은 아니며, 오히려 최근에 들어 이러한 경향성이 헬스라는 취미의 영역으로 빠질 뿐, 경제력, 학력 등 다른 능력들 보다 우선하여 이성에게 어필 하고 사회적 위신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매력치라고 보기는 되려 어려워 지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 뿐 아니라 인종적 문제와도 연결 될 것 같은데, 비슷하게 근골격량이 백인이나 흑인에 비해 적을 뿐 아니라 초식남, 절식남 등의 용어가 먼저 유행했던 일본에서 히어로물이 거의 쇠락하고 현재 마법소녀물과 아동용 전대물 위주로 남은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웹툰이나 웹소설 표지들의 그림체를 살펴보면 마른근육이나 날렵한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며, 주인공들의 능력도 육체적 강함보다 지략이나 마법같은 비교적 비육체적 요소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때문에, 국내 작품 중 서구적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한 것은 신의철 작가의 웹툰 <사이드킥>(2014) 정도 뿐이다.




물론 닥터스트레인지나, MCU의 스파이더맨과 같은 상대적으로 마초적이지 않은 슈퍼히어로들도 인기를 끌고 있고, 최근에는 페미니즘의 대두와 함께 블랙위도우<2019>, 캡틴 마블<2019>, 원더우먼<2017>과 같은 여성 히어로 영화들 역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마초에 대한 비선호가 슈퍼히어로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좀 더 슈퍼 히어로의 탄생에 직접적 걸림돌이 되는 것은 대의와 희생에 대한 비선호가 아닐까 싶다.


왜 이런 경향이 유행하는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개인주의가 대두하고, 자아 실현의 욕구가 실현되지 못하고, 고도의 실적주의 사회, 실패에 대한 과도한 불안 뭐 이런 것들을 갖다 붙일 수도 있고, 과거에 비해 봉사나 기부 같은 활동들, 시위나 정당활동등 사회 참여 활동도 많이 늘었는데 과연 그런 경향성 자체가 요즘 세대들에게 없는가로 반박할 수도 있는데, 일단 그런 경향이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선호되는듯 하다, 여기까지만 놓고 이야기 해보자


국내에서 유행하는 현대 판타지의 정말 많은 수가 '나 혼자'와 '힘을 숨김' 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소위 먼치킨물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혼자만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작품이 요 10여년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지만, 주인공이 이미 완성된 강한 인물이고, 주인공이 자신의 주변인들을 키워서 함께 강해지고 동기 자체가 헌신이나 대의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다수를 위해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국내 작품에서는 그런 경향이 비교적 선호되지 않는다.


DC유니버스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나 혼자' '힘을 숨김'의 캐릭터가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은 행위의 목적이 크게 다르다. 자신의 강한 힘을 바탕으로 일반 시민을 지킨다가 DC유니버스의 주요 캐릭터들의 행동 동기인데 반해 한국 웹소설 속 인물들은 나, 혹은 내 주변 소수의 안전을 위해 행동하고, 그 행동의 결과가 세계의 구원을 이뤄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국내에서 인기있는 웹소설의 캐릭터들은 매력적인 이능력자에 가깝지 히어로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슈퍼히어로물은 정말 드물다. 있더라고 해도 <이런 영웅은 싫어>(2011)나 <스퍼맨>(2016) 같은 개그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초능력과 그를 활용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는 작품은 영화 <염력>(2018)과 고전 설화에 가깝지만 <전우치>(2009)정도 뿐인데, 이들 모두 범세계적인 위험 보다는 국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규모의 히어로에 가깝다.


앞으로 슈퍼히어로물이 국내에서나올 수 있을까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다소 회의적이다. 국내에서 몇 없지만 히어로 물들이 유행한 시기가 소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나, MCU가 유행할 때 편승하는 면이 있었기에 히어로 영화들이 유행을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자급적인 히어로물이 나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국 뿐 아니라 범세계적인 트렌드가 슈퍼히어로물의 근간이었던 대의와 희생과 그 기사도 정신들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G1 시대가 끝나고, 트럼프 정부에서 부터 2022년까지 미국은 세계 경찰이라는 직책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미국에서 옛날만큼 무보수의 헌신적인 히어로가 새로이 나오고 인기를 끌 수 있을지 잘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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