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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Mar 08. 2022

라이벌 종말의 시대

소년만화에서 라이벌 캐릭터는 왜 사라져 가는가

당신의 첫 만화는 무엇이었는가.


당신이 어떤 만화를 보아왔건, 그 만화에서 주인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로 표지에 나타나고, 주요 굿즈에 나타나며, 가끔은 캐릭터의 이름이 만화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라이벌 캐릭터는 어떠한가?


여기서 말하는 라이벌은 전개상 완전히 대립역이 아니다. 작품의 초창기 주인공보다 약간 우위를 점하는 또래 혹은 살짝 연상의 캐릭터, 캐릭터의 컬러가 주인공과 반대가 되는 캐릭터, 전개에 따라 악역이 되었다가 회개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지지자가 되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를 말한다.


바로 생각 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2015년을 전후해서, 그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 만화를 보아온 입장에서는 바로 생각이 날 것이고, 비교적 최근의 만화들에서는 바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이세계물 혹은 먼치킨물을 주로 봐 온 사람에게는 거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라이벌 캐릭터는 드라마, 만화, 소설을 가리지 않고 장편 창작물에서 극초반기 반동인물을 맡아 왔다. 이러한 라이벌의 존재는 세계관의 설명과 주인공의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라이벌 캐릭터들은 주인공보다 해당 세계관에 대한 이해, 작품 내 이능력 수준이 높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라이벌들이 주인공과 대립하는 장면을 넣으므로서 독자에게 작품의 배경에 대해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라이벌 캐릭터는 주인공의 성장을 주도하기도 했다. 주인공의 목표를 라이벌을 이기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서 주인공의 초반부 목표와 성장 방향에 대한 제시해 왔다. 또한 대부분 초반부 부터 주인공과 비교가 불가능 할정도로 강력한 악역들과는 달리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점진적으로 성장해 가는 라이벌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끊임 없이 주인공의 성장을 추동해 오는 역할도 맡아 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이벌을 이기거나 그에게 인정받음으로서 그 성장에 대한 성취를 등장인물들과 독자에게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까지 맡아 왔었다.


그런 라이벌 캐릭터가 최근에 들어 옛날만큼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주요 소년만화에서 전통적인 라이벌로 등장한 캐릭터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2014)의 바쿠고 카츠키, <블랙 클로버>(2015)의 유노 정도 까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유와 현재의 주인공 및 주요인물 체계에 대해 두가지로 나뉘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1. 지지자로의 위치 변화

최근에 나온 동화 중에는 토끼와 거북이의 결말이 거북이의 승리가 아닌 토끼를 깨운 후 공동 승리로 바뀐 버전이 있다. 저출산으로 아동의 수가 줄고, 고도의 성장기를 마친 이후 성장 보다는 인권이나 환경 같은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경쟁보다는 상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20세기 중반~말엽 급성장을 거치고 현재는 성장을 멈춘(혹은 고꾸라진) 한국과 일본 모두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만화의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인공과 주변의 인물들을 성장을 위해 경쟁을 붙이기 보다는 지지를 해 주는 관계로 변한 것이다. <귀멸의 칼날>(2016)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려 보자, 카마도 탄지로는 노력, 우정, 승리의 전통적인 소년만화 주인공의 캐릭터에 해당한다. 하지만 완전히 반동인물인 키부즈치 무잔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성장의 주동력원으로 삼을 정도로 경쟁심을 느끼는 역할은 없다. 작품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며, 주인공보다 해당 세계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적응한 상태의 주요 인물들 중 상급자인 토미오카 기유는 멘토의 역할로, 동행인인 하시바라 이노스케와 아가츠마 젠이츠, 더 나아가 후반부에 비중이 높아지는 츠유리 카나오나 시나즈가와 겐야와 같은 인물들 까지 경쟁자라기 보다는 조력과 지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여전히 <악마에 입문했습니다 이루마군>(2017)의 아스모데우스 아리스, <닥터 스톤>(2017)의 시시오 츠카사와 같이 초반 대립을 겪는 인물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라이벌과의 관계가 작품 전체 혹은 한 개의 주요 사건을 이끌어 나갈 정도로 길지 않다. 해당 인물들과 주인공의 경쟁은 해당 인물의 일방적인 것으로 이루어 지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그 대립이 전체 내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도로 적으며, 빠르게 지지적 인물로 돌아선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경쟁과 대립 보다는 멘토, 혹은 조력자로만 등장하는 다른 만화로 <약속의 네버랜드>(2016), <체인소맨>(2019), 작가가 이타도리 유지와 후시구로 메구미의 관계가 라이벌 보다는 함께 노래방을 다니는 친구 사이 라고 공언해 버린 <주술회전>(2018)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이 사회가 고도의 경쟁에서 벗어나 상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기 때문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다소 이를 수 도 있다.






2. 주인공의 먼치킨화에 따른 필요성 하락

라이벌의 주요 역할이 주인공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앞서 말한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미 주인공이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는, 세계관 최강자라는 설정이라면 라이벌은 그 쓸모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각종 이세계물과 타카하시 루미코의 <MAO>(2019)등이 해당된다.


심지어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세계관을 설명해 줄 사람조차 필요 없을 때도 많다. 주인공의 지지자가 세계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게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의 경우 주인공만 들리는 나레이션 혹은 상태표시창 등이 세계관에 대해 편리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이런 전개 방식이 편의주의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한 두 작품의 일탈이 아니라 거의 10여 년에 걸쳐 유행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의 이세계물, 이고깽물로 주로 불리우는 라이트노벨 시장과 한국의 웹소설 시장 양쪽 모두에서 보이고 있는데, 일단 이런 설정을 활용할 경우 불필요한 정신력 신체적 소모가 극도로 줄어든다. 이는 주인공과 독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부분이다. 작품에서 경쟁과 그에 따른 노력에 대해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독자에게 창작물을 읽는 행위가 경쟁과 생존으로 얼룩져 있던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는, 여가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또한 라이벌 캐릭터를 삭제하고 세계관을 설명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악역과 세계관에 도래한 근본적 문제를 작품의 최전반부에 세워버림으로서 작품의 주제의식을 직관적으로 제시하고, 진행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주변인물과 그들 사이의 감정 같은 부차적인 것은 어느 정도 전개가 진행 될 때까지 뒤로 빠지게 되는데, 이러한 전개는 사이다와 빠른 전개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3. 납득 할 수 없는 캐릭터성과의 '손절'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들의 성격에서 열혈성이 약해지고, 순수한 정의와 우정을 옛날만큼 깊이 논하지 않게 된 것 역시 라이벌 캐릭터의 존립과 연관 지을 수 있다. 그 차이를 17년의 텀을 둔 <나루토>(1999)의 나루토와 <보루토>(2016)보루토의 성격을 예시로 설명할 수 있는데, 물론 보루토 역시 전통적인 소년만화적인 의리 중심적인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신용과 우정과 의리의 산물이었던 그 아버지에 비해 인간을 대할 때 계산적이고 냉정한면이 있다.


이러한 주인공 캐릭터의 변화는 현실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래집단과의 유대를 그 부모 세대보다 다소 경시하고, 현실적, 경제적 문제를 이유로 인간관계를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2010년대의 사토리세대, N포세대, 그리고 그 아랫세대까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독자들에게 처음 본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고 친구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은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런 성격을 가진 주인공과 독자들에게 초면에 밉살스럽게 접근해서 시비를 걸고 잘난척을 하는 전통적인 라이벌 캐릭터는 '손절'의 대상이다. 마음씨 좋게, 싸우고 화해하고 친구가 되는 것은 이들에게 거의 없는 선택지나 다름 없다. 사이다 전개를 위해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 각오로 싸워 완전히 반동인물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앞서 말한 것 처럼 아주 빠르게 화해하고 친구로 지내거나 결국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수의 작품들은 주인공의 추동을 위해 손절할만한 인물 대신 강력한 시련을 내려주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신체의 일부를 결손하는, 어느 세대의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불우하고 불합리한 과거를 제공함으로서 트라우마와 같이 주인공의 입체성을 살릴 수 있는 설정을 주고 행동의 동기 역시 납득시킬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라이벌로 남을 수 있었던 인물들이 완전히 악역의 길을 가버리거나, 갱생하더라도 주인공에게 지지적인 인물로 남기 보다는 완전히 작품에서 배제 되어 버리곤 한다. 초기에는 라이벌 정도의 관계로 시작했으나, 사소한 것으로 틀어져 끝까지 반동인물로 남아 버리는 이러한 경향성은 사실 소년만화 보다는 여성 주인공 만화에서 좀 더 자주 보이는 듯 하다.






마치며,

크게 세가지만 말했지만, 작품의 주요 요소들의 변화 역시 한 몫한다고 생각한. 만화를 읽는 연령층이 옛날에 비해 상승함에 따라, 주인공의 연령이 상승한 경우들이 있는데, 괴수8호(2020)와 같이 주인공이 이미 성인인 경우 라이벌을 통해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라이벌의 필요성이 떨어진다.


라이벌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경우가 많았다. 키나 근육량을 비롯한 각종 신체사이즈가 주인공 보다 클 때도 많았고, 대체로 초반부에 약하고 열혈인 주인공에 비해 쿨하고 강한 이미지를 갖기 때문에 소위 '최애픽'을 하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먼치킨물에서 이러한 성격을 주인공이 가져가기도 하지만, 각자 다른 매력의 캐릭터 2인 이상이 대립과 지지의 구도를 만드는 것과 한 사람이 캐릭터를 독식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군이 사라지는 것은 다소 아쉽게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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