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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Apr 05. 2022

접근하기 쉬운 대상에 대한 선망과 모에화

처녀비치와 너드남에 관하여

처녀비치는 2010년대 중반부터 남성향에서 사용된 단어로, 양아치나 문란해 보이던 여성이 사실은 연애 경험이 전무하거나, 성관계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설정을 가졌을 때, 처녀비치 속성을 가졌다라고 이야기 된다. 대체로 여성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쑥맥인 남자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섹스어필을 하지만 실상은 자신 역시 연애경험이 없어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너드는 대체로 공부만 할 뿐 사회성이 좋지 못하고 꾸미지 못하는 인물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쓰이지 않았으며, 미국 하이틴 물에서 두꺼운 안경과 저체중의 조연으로 주로 사용되던 캐릭터였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찐따남이라는 판타지가 생기며 새로운 모에요소로 자리매김 하며 용례가 다소 바뀌고있다. 친구가 많지 않고 연예경험이 적으나 실상은 꾸미지 않았을 뿐 제대로 관리하면 잘생겼으며 여자에게 헌신적이라는 설정이 따라 붙는다.


물론 두가지 모두 그렇게 주목받는 말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처녀비치의 경우 남성 커뮤니티 내에서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단어이며, 너드남쪽은 국내에서 주목받는 창작물로는 아직 존재한적 없다.




처녀비치의 유행의 기저에는 관계의 지속 혹은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음이 깔려 있다. 처녀비치 속성 캐릭터는 주인공에게 별다른 이유없이 끊임 없이 들이댄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해당 인물의 호감도를 얻기 위한 의도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인물 관계 자체는 일본 문학사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시바 료타로의 <타올라라 검>(1963)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1948), 심지어는 겐지모노 가타리(1020년대 추정)에 까지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대쉬 하지 않으나 사랑받는 남성 주인공은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최근에 들어 이전 세기와 비견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 이보다 앞선 유행으로 나타난 츤데레/얀데레와 같은 여성인물들 역시 다소 특이한 방식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애정을 표현해 왔었으나, 거기에는 해당 행동을 이해하거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혹은 남성성의 표출이 있어왔으나 근래에 들어서 이러한 감정노동의 요소는 전무하다.


특히 근래에 와서는 앞서 다른 글들에서 유부녀와 오네쇼타 논의에서 이야기 했던 대로 성적으로 성숙한 여성의 리드에 대한 로망이 은근한 노출이나 스킨쉽 정도를 넘어. 직관적이고 섹슈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처녀비치가 로망을 넘어 판타지가 되는 지점은 '처녀'라는 부분이다. 해당 단어에서 사용되는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닌, 정신적 신체적 순결을 남자 주인공만을 위해 유지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유부녀물과 오네쇼타물에서는 요구되지 않았던 사항이자 지나치게 현실 도피적인 요소로 뭇매를 맞는 부분이기도 하다.


해당 모에요소의 특이점은 양립하기 힘든, 처녀 라는 속성과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여성의 조합이라는 점일 것이다. 각각의 요소 자체는 오랜 기간동안 사랑받아온 인물상이나 이것이 조합된 경우는 드물었으며, 심지어 그것이 처녀비치라는,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보아도 직관적인 단어로 만들어진 것은 독특한 일이다.




너드남은 2020년 한 유튜버가 자신의 이상형에 관한 판타지를 이야기 하면서 주목 받게 된 단어로 국내에서 이와 관련된 정식 창작물은 아직 드문 상태로 보여진다. 굳이 예시를 들자면 <호리미야>(리메이크판, 2011)과 <귀엽기만한게 아닌 시키모리양>(2019) 같은 경우가 해당되며, 순정은 아니지만 <자살소년>(2017)의 훈이가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너드남의 경우 처녀비치보다도 그 발생양식이 더욱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너드남의 경우 전통적으로 선호되어온 남성상에 비해 상당히 독특한 지점이 있는데, 이러한 인물상이 대체로 해당 인물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여성보다 낮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낮다가 바닥을 긴다 라기 보다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에 가깝다. 그러나 오랜기간 여성향 시장에서 여주보다 사회적으로 상당히 성공한 남성주인공이 선호되어 온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유행 이전에 키링남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이 있는데, 능력있는 여성이 어리고 다소 경제적으로 부족한 남성을 달고 다니는, 트로피녀와 유사한(물론 완전히 같은 선상에 있진 않다) 뜻을 가진 표현이다. 너드남은 키링남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정서적으로도 여성에게 완전히 종속된, 바람 혹은 동성 친구로부터 각종 취미 생활 등의 취미를 유혹 받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를 뜻한다.


너드남에 관한 로망들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은 공격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는 여주인공에게 뿐 아니라 모든 인물에게 해당한다. 그렇기에 너드남은 반동인물들에게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관계의 맺고끊음에 대해 전적으로 여성 주인공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대해 데이트 폭력 및 이별로 인한 중범죄에 대한 공포감의 표출이다 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재미있는 지점은 너드남과 평강공주 컴플렉스 사이에도 연관성이  별로 높지 않은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평강공주 컴플렉스란, 자신보다 급이 낮다고 판단되는 남성을 좋아하며, 연애시 애정과 안정감 보다 해당 인물을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는 심리 상태를 뜻하는 대중 심리용어이다. 현재까지 너드남이 주가 되는 최근 작품이 많지 않기에 예시를 들기 애매하지만, 변화의 매개가 여주인공인 경우는 있어도 여성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너드남을 각성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성향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음침녀와 같이 자존감이 낮고, 주인공만이 해당인물이 옥석임을 발견하는 인기 없는 이성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너드남이 음침녀와 다른 점은, 외형 및 성격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점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부나 업무에 한해서는 뛰어난 성적을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주인공의 역할이 대상인물을 개선 시키는 것이 아닌 보호를 주로 하며 거의 모든 상황에서 주도권을 쥔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정반대인것 처럼 보이지만, 두가지 모에요소는 모두 나는 가만히 있지만 먼저 다가와 주는 존재, 혹은 내가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나에 대한 애정이 쉽사리 식지 않을 존재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처녀비치의 유행 쪽이 먼저였던 것을 생각하면 연애시장에서 남성의 입지와 자신감이 줄어든 것과 연관지어봄직 하다. 다만, 너드남까지의 유행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적으로 연애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던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간관계와 연애에 대한 피로감 혹은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또한 두가지 경우에서 모두 나타나는 것이 안전성인데, 처녀비치의 경우 다른 인물에게는 다소 공격적이나 남자 주인공에게만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너드남의 경우 공격성이 전무하다는점에서 관계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안전성에 대한 욕구가 크게 나타난 모에요소들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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