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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Apr 06. 2022

경제와 애니메이션

회차수와 작화에 관한 이야기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001)에서 오타쿠를 70년대, 80년대 90년대 오타쿠로 보았다. 그러며 90년대 오타쿠에 대해 모에화된 캐릭터에게만 치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전 세대에 비해 애니메이션의 주제의식이나 질이 떨어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는데, 2020년대에 들어서 90년대와 00년대 애니메이션이 2010년대 이후 애니메이션에 비해 명작으로 칭송받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웃기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주로 본 만화는 90년대와 00년대 초중반의 작품들이다. 그렇기에 내 눈에 2010년대 중후반 이후의 애니메이션을 볼 때에는 그 시각이 다소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감안하고 가벼운 논의로 들어주었으면 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2차 세계대전 이전 부터 디즈니를 벤치마킹하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우리가 보통 말하는 30여분 가량의 TV 애니메이션은는 1963년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원작으로한 철완아톰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70년대 <은하철도 999>, <루팡3세>와 같은 현재까지도 잘 알려진 시리즈들과 <도라에몽>과 같이 현재까지 방영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시작되었으며, 버블의 정점이었던 80년대 <아키라>, <천공의 성 라퓨타>와 같이 화려하고 부드러운 작화와 연출로 풀프레임을 사용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경향은 버블 붕괴 이후인 90년대 중반까지도 다소 이어져서 <공각기동대>,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이후 00년대에 들어서는 소년점프 3대 만화라 불리우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와 같은 액션 소년만화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끌었다. 액션만화는 앞서 언급된 다른 만화들에 비해 움직임에 프레임 수가 적고 뱅크씬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거기에 지난화와 다음화 예고 까지 장면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해 많은 화수를 찍어낼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이 처음 만들어지던 60년대 부터 12화가 1쿨이라는 개념은 있었으며 단편의 경우 25화 내외의 짧은 애니메이션(<도로로와 햣키마루>,1969,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외)도 존재했으나 대체로 1년 단위(52화)로 방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미 만화책으로 그 인기가 입증된 2000년대 소년만화들의 경우 고정적인 팬층을 토대로 수백편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곤 했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후반 미국발 경제 대공황 이후로 급격하게 변화한다.  이전에 대체로 1년 단위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던것에 반해 2010년대 초반까지 애니메이션은 2쿨을 기본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토호쿠 대지진의 영향과 아베노믹스 안정화 전 엔화 강세가 나타난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아무리 인기작이라 할지라도 12화 이상 제작되는 경우가 드물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투자자 개념인 '제작 위원회'가 만들어지고(애니메이션 방영 전후 스폰서 목록 가장 앞에 나오는 그것) 제작위원회가 원가 회수를 위해 제작에 개입을 하며 제작 회차수와 품질에 관여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화수는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10년 전과 비교해 정말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 만화가 대단하다!]를 수상한 만화, 그러니까 해당 작품의 고정 팬층이 확보되어 있던 <약속의 네버랜드>, <골든 카무이>, <마법사의 신부> 등의 만화들도 애니메이션화 되면서는 2쿨 이하의 적은 수만 제작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진격의 거인>이나  <하이큐!!>와 같이 애니메이션으로 대성공을한 경우라 할지라도 100화를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아는 한 2010년대에 들어서 100화를 넘긴 애니메이션은 <소드아트 온라인>과 <블랙클로버>, <보루토> 뿐이며, 그나마도 <보루토>의 경우 수십년간 방영되고 있는 포켓몬스터, 유희왕 시리즈와 같이 나루토의 시리즈격에 가깝다.


물론 이것이 경제에 의한것만으로 볼 수는 없긴하다. 근래 독자층이 긴 이야기에 대한 선호가 떨어졌으며, 기성 플랫폼 외에도 유튜브나 무료연재 플랫폼에 자유연재되는 수 많은 볼거리와 읽을 것이 읽는 상황에서 길고 세계관이 복잡한 이야기를 장기적으로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독자들도 많이 존재하며,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경향들 속에 수십화에 걸쳐 뿌려진 떡밥 회수와 그로 인해 꼬인 설정 구멍은 참고 봐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경향은 12화 전후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자주 접한 어린 층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이런 독자들이 생겨난 데에는 12화가 만들어지고 손익 분기점을 넘긴 후, 그러니까 적어도 1년은 지난 후에야 그 다음 애니메이션이 12화가 만들어지는 등 몰입하기 어려운 요소가 시장에 만들어 져버린 것도 한 몫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0년대에 원작이 애니메이션에 따라잡혀서 애니메이션에만 존재하는 창작 에피소드까지 만들어 그 간극을 벌리려는 시도를 하던 것을 생각하면 <귀멸의 칼날>과 같이 이례적 성공을 이끌어 낸 애니메이션도 연달아 수십화를 방영하지 못하고 손익분기를 넘은 것이 확인 된 다음 다음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결국 100화를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근래의 상황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의 작화에 관해서는, 사실 다소 미화되어 기억하고 있는데다, 불과 몇년사이 디스플레이 분야의 발전이 엄청나게 일어난 탓에 이제와서 눈에 띄게 된 것일 뿐, 과거의 애니메이션들에도 작붕과 같은 요소들이 상당히 존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최근의 애니메이션들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이 장기침체를 겪으며 애니메이션 제작비는 수년간 동결되었는데, 하청을 주던 주변 동아시아국들의 인건비는 올랐고, 애니메이션 제작시장에서 과로, 야근수당 미지급과 같은 부조리등이 고발되면서 자국내에서 인력을 충원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도 있었기에 그 퀄리티 자체가 떨어진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작화의 경우 주변국들의 경제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애니메이션은 초당 4~9프레임을 사용하기에 24프레임을 사용하는 디즈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비해서는 품이 다소 덜들긴 하더라도, 매주 그것을 만들어내기에는 시간과 돈이 촉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2000년대 중후반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쌌던 한국에서 많은 수가 맡아왔다. 당시 애니메이션의 스탭롤을 보다보면 영어로 표기된 한국이름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의 인건비 및 단가가 이전에 비해 다소 오르고, 2000년대 후반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중국쪽으로 하청이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수준이 이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베트남 쪽으로 하청을 보내거나, 일본내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베트남쪽 스튜디오가 중국 스튜디오들 보다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듯 하다. 소수의 인원으로 제작될 경우 프레임수를 줄이고 움직임을 줄이기 위해 얼굴만 확대해서 나온다던가, 뱅크샷을 반복해서 사용한다던가, 프레임 수를 극도로 줄여 움직임이 뻣뻣해지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심할 경우에는 본래 프레임 수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던 액션씬 마저 애니메이션 내에서 완전히 제외 시키고 거의 고정화에 가까운 얼굴 확대샷 및 입만 움직이는 상반신 구도로 대화만 진행시키는 방식으로 만화가 진행되는 경우들도 존재한다.




색감에 관하여서는 작화와는 별개로 디스플레이의 발달과 연관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브라운관이나 CRT와 같은 두꺼운 모니터가 사라진 것은 아직 15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모니터들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모니터들에 비해 색감과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렇기에 디스플레이가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던 소위 옛날 만화들은 선이 굵고 강렬한 색감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디스플레이 분야는 정말 빠르게 변화해 왔다. 최근에 나온 고화질 대형 텔레비전으로 나온지 오래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다시 보면 눈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화질이 급격히 좋아진 만큼 애니메이션에서도 옛날만큼 강렬한 색상과 선을 사용할 필요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탓에 2010년대에 들어서 애니메이션은 이전에 비해 색상이 연하고 선이 부드러운, 소위 '야시꾸리한 색감'을 사용하게 되었다.




반드시 애니메이션의 작화나 회차수에 경제가 관여했다고 말 할 수는 없으나 나는 이러한 요소들이 애니메이션 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문화는 의식주에 비해 후순위의 사업이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이 큰 상황에서 문화는 발전하기 힘들다. 일본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밝은 만큼 앞으로의 애니메이션 시장도 지금보다 수준이 떨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옆나라 일이라고 웃을 일은 아니고, 생산인구 급감이 예정되어 있는 한국에서도 보일 수 있을 지점이라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2020년대에 들어서 넷플릭스 드라마와 케이팝등 한국 문화사업은 이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일본과 유사한 길을 걷는다면, 고점을 찍고 빠른 속도로 하강하며, 심할 경우 갈라파고스화 되어 성공했던 기억만을 가진 채로 발전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돌입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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