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상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이번 이야기는 성인물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미리 말 하고 시작하자
야한 얘기가 직접 나오는건 아니지만 전쟁범죄까지 넓게 다룰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취향에 없으면 넘어가는쪽을 추천한다.
각 단어의 의미부터 설명하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유부녀물이란 말 그대로 이미 혼인한 사람, 넓게는 돌싱과 미망인을 포함하여 결혼 이력이 있거나 자녀가 있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작품군을 이르는 말이다. 세상에 그게 무슨 파렴치한!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제우스가 왕비들과 잠자리를 가졌다던가, 삼국지에서 조조가 과부를 건드렸었다던가, 동서양 할 것 없이 의외로 그 역사가 깊은 장르라 할 수 있겠다.
NTR은 아마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일본어의 빼앗다(네토루)의 피동형인 '네토라레'의 이니셜을 따와 표기한 것으로, [자신의 연인을 다른 사람에게빼앗기는 장르] 라고 할 수 있다. NTR에서의 대상은 당연히 유부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성별에 관계없이 배우자, 연인, 심지어는 짝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모든 경우가 포함된다.
여기서 또 세부적으로 나가면 주인공(독자가 이입하는 주요 화자)의 애정하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네토라레의 장르와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애정하는 대상을 빼앗는 네토레의 장르가 다시 한 번 분류 되는데다, 딱 여기까지 설명하면 될 것 같다.
일단 앞서 말했다시피 NTR에는 유부녀 뿐 아니라 유부남, 연인과 짝사랑 상대는 물론 동성연인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그렇다고 NTR물이 유부녀의 상위 개념인 것은 아니다. 이것에 관해서 각 작품이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주체자가 누구인지를 별개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단 서술의 편의를 위하여 지금은 NTR물에서 유부녀대상인 작품에 한정하여 서술하겠다.
유부녀물에서 행위 주체자이자 주인공의 주 관심을 받는 대상은 해당 여성 그 자체이다. 여성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결혼 이력이 있는 여성인 것이며, 그 목적이 불륜이건 불장난이건, 인생 경험이 풍부한 연상의 여성에게 포용 받는 것이건 어찌되었건 그 여성 자체가 행위와 목적 양측 모두의 대상인 것이다.
NTR, 그 중에서 네토리(주인공이 다른 인물의 연인을 빼앗는 것)의 장르를 기준으로 보면 행위 자체는 여성과 하고 있지만, 서사상의 주체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남편이다. 주인공이 잠자리를 갖는 것이 해당 여성이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내를 빼앗음으로서 남편의 남성성을 부정하고, 가정의 유전적 전통성을 해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쟁 범죄중 강간을 떠올려보자, 해당 범죄는 단순히 군인들이 오랫동안 남초집단에서 극도의 긴장상태를 겪으며 성욕을 풀지 못해서 생기는 것 만은 아니다. 독소전쟁에서 베를린이 점령 당한 이후, 독일에서 러시아계 혼혈이 많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소련군의 강간 행위는 자신을 침략하고 자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독일에 대한 분노를 여성에게 표출하고 더 나아가, 미워하는 상대의 유전적 정통성을 해치고자 하는 일종의 복수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치밀한 계산하에 이뤄지는 행위는 아니고, 그냥 동물의 왕국에서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고 암컷을 다시 임신시키는 그런 본능적 문제에 가깝다.
물론 성인물에서 전쟁범죄급의 분노와 복수심과 파괴적 행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근간이 되는 동기 자체는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NTR 작품에서 여성의 남편보다 주인공이 성적으로 절륜하다던가, 성기가 크다던가, 그래서 결국 남편보다 주인공을 더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고 여성이 말하게 한다던가, 더 나아가 주인공의 아이를 임신을 했다는 등의 묘사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작품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NTR장르에서 여성이 남성들 간 뺏고 뺏기는 트로피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빼앗다는 육체 뿐 아니라 정서적 부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 여성에게 두 남성 인물 중 어느쪽이 간택을 받느냐의 문제로도 볼 수 있겠다.
네토라레(주인공의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장르)는 주인공이 성적인 행위에 직접 참여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네토리보다 더욱 남성대 남성의 위계적 관계가 강하게 나타나는 장르이다. 연인을 빼앗기는 슬픔과 굴욕감등이 작품의 주된 주제인 것이다.
네토라레에 대해 처음 들었다면 뭐 그런게 다있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네토라레의 감성은 전후문학을 읽다보면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일본 내 미군 기지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과 뚜쟁이 역할을 하는 남성들의 삶을 그린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나 남한의 50년대 양공주의 삶을 다룬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등에서, 자국민 남성은 각 개인의 입장 뿐 아니라 국가적 입장에서도 압도적 우위에 있는 미군에게 주눅들어 자국민 여성을 지키거나 취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국가 차원의 네토라레를 당한 것이다.
이들이 갖는 굴욕감은 공격성 보다는 현실성의 모습을 한다는 데에서도 성인물의 네토라레와 유사하다. 5,60년대의 시대적 흐름에 의해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을 여성에게 묻는 경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운명 공동체에 처한 여성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굴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연애 대상이었던 이를 빼앗은 존재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다던가, 그 상황에 순응해 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 극도로 절망한 인간이 갖는 무기력감과 비참하지만 현실의 상황이라도 유지하기 위한 희생 양가적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며, 앞서 말한 장르들이 현실이 아니라 창작물의 범주내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해야 겠다.
누군가는 아마 위의 장르들에 대해 대단한 반감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일부일처제가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이미 임자가 있는 사람과 관계한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 장르들이 갖는 막장성이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막장 막장 욕을 하지만 아직도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이 국적 불문하고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쓰이고 있는 걸 보면 금기를 깨는 것에 관한 환상과 발현되지 않는 갈망은 은 인류 공통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