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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Mar 10. 2022

알페스는 정말 Real Person의 이야기인가

이론상의 관점과 현실적 관점에 관하여

결론부터 앞머리에서 말하자면, 이론상으로 알페스의 등장인물은 현실의 인물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불편하게 여겨질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알페스(RPS)란 Real Person Slash의 준말으로, 현실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팬픽, 특히 국내에서는 아이돌을 대상으로한 2차 창작물을 가리킨다. 이것이 몇 년 전 부터 문제가 되었던이유는 이 중 많은 작품들이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 인물과 연인관계로 설정하고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RPS 혹은 RPF(Real Person Fiction)이라고 하면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자전적 소설, 오토픽션, 이렇게 부르면 좀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본인과 주변인들의 삶을 수필이 아닌 소설의 형태로 담은 작품만 하더라도 국내에만 해도 신경숙, 박완서, 김봉곤등 이미 존재했었고, 작가 본인의 삶이 아니더라도 역사적 인물의 이름과 행적을 차용해와 가공한 작품들은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엄청나게 많았으므로 그 예시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왜 이론적으로 알페스의 등장인물이 실제 그 사람이라고 말 하기 어려운지 이야기 해 보자, 만약 창작자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한 알페스를 썼다고 가장한다면, 그것이 실제 상황과 상당부분 관련이 있더라도 언어의 왜곡을 통해 실제 상황과의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가 지정해놓은 구역 밖에 표현할 수 없으며 현실의 일이 실제로는 A라고 할지라도 A라는 상황을 완벽하게 표현 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면 그것을 당신의 언어 중 그나마 유사한 단어인 a로 치환하여 써야 한다. 그 상황에서 일차적인 왜곡이 나타난다.

두번째 왜곡은 현실의 해당 인물과 등장인물 간의 괴리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해당 인물에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소설로 쓴다고 할지라도 모든 디테일이 동일 할 수는 없다. 그 디테일적 차이들이 쌓이면 쌓일 수록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간의 거리는 멀어지며 이윽고 별개의 존재로 분리된다.이와 연관되어, 만약 해당 인물이 아이돌이 아니라 다른 직업군이라면, 다른 나라에 산다면, 과 같은 설정이 들어간 경우 특히, 등장인물과 실존인물이 동일인이라고 보기 어려워진다. 다만 위와 같은 모든 경우는 창작물의 경우에 한정한다.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일지라도 악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현실인양 쓰여진 글은 명예훼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창작물 속 인물은 실제 인물과 이름만 같을 뿐 서술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분리된다. 그리고 서사가 진행될수록 인물의 본래의 삶과 창작된 인물의 삶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결국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말장난 같겠지만, 김봉곤 작가의 오토픽션에 의한 아웃팅과 사생활침해 문제가 생겼을 때 문단에서 작가쪽을 감쌌던 이유가 그랬고, 알페스와 관련하여 실제 처벌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저것과 연관된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득바득 이 창작물이 실존인물 누구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있다. 사극이나, 역사인물을 모에화 한 게임들이 괜히 인트로에서 "해당 작품은 실제 인물이나과 상황과 관계가 없으며~" 같은 주의문을 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알페스물의 경우 조회수를 끌고, 해당 아이돌 팬들의 유입을 노리기 위해 (그리고 쓰는 쪽 본인이 몰입하기 위해) 인물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소설 전후에 첨부하여 창작물 속 인물과 실존 인물이 동일인임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기에 문제의 소지를 키우는 것이다.


좀 논외의 이야기지만 보통 같이 언급되기에 함께 말하자면, 창작의 과정에서 실제 인물과 창작물 속 인물이 분리되는 알페스 소설 및 만화와는 달리, 해당 인물이 실제로 성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일으킬 뿐 아니라 그것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증거인양 제시하는 섹테나 딥페이크 영상은 동일 선상에 둘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서서는 이론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각은 그렇지 않다. 김봉곤 작가 사태를 다시 꺼내보자, 이는 김봉곤 작가의 <그런생활>(2020)에 수록된 메신저 내용이 실제 대화를 그대로 인용하였을 뿐 아니라 각색 작업이 거쳐지지 않아 대화를 나눈 인물의 사생활이 폭로 되었던 것과, 단편집 <여름, 스피드>(2018)에 수록된 소설들 일부가 충분한 각색작업이 거쳐지지 않아 실존 인물이었던 등장인물이 책을 읽은 주변인들에게 강제 아웃팅을 당했던 사건을 말한다.


문단에서는 앞서 말한대로, 각색의 과정에서 창작물과 현실의 사건이 분리된 것으로 보았기에 대체적으로 그를 감싸려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독자의 많은 수는 그것을 비판했고, 작가들 중에서도 문단의 태도에 대해 반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결과 김봉곤 작가의 책들은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는 것으로, 중고서점에서 조차 다루지 않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알페스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창작활동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 사실이 간과되거나, 창작자 및 그 팬 측에서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그 순간부터 논란의 소지가 폭죽 처럼 터진다.


알페스는 일반적인 시선과 사회적 관념으로 보기에 그것이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듯한 행위로 보여지며, 당사자였던 일부 연예인들이 이러한 행태에 대해 불편하다고 언급함으로서 그러한 관념에 힘을 실었다. 주 향유층에서 어떤 항변을 해 보려 해도 특히 아이돌과 가상 연애 팬픽이라는, 특정 계층만 즐기는 문화들의 교집합에 있는 알페스는, 해당 문화를 처음보는 사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것이 꽤나 징그러운 물건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그 중 많은 수가 성적 욕망에 가득 차 있었기에 정말 곱게 보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법률적인 문제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법률도 이론도 일반의 인식과 별개로 노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론 보다도 법률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더 많은 관여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선 이론적 논의 대로라면, 각종 2차창작 역시 원저작과 별개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법률상 2차창작물은 저작권적인 문제로, 원칙상 결코 출판될 수 없다. 알페스 역시 이론적으로는 비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오마주한 대상의 동의 없이 출판 및 판매 등 상업적 이득을 취할 수 없다.(팬픽 소설집이 알음알음 판매되는건 유의미한 상업성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에 봐 주는 것에 가깝고, 이름이나 지명등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팬픽 그 자체는 결코 ISBN을 받아서 서점에 올라갈 수 없다.)


또한 알페스의 많은 수가 높은 수위의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남녀할 것 없이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논의가 치열한 지금 그것은 어느시기보다도 성범죄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적합하다. 이런 법률적 인식들이 세간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사람이 보기에 어 그거 불법인 것 같아,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수 밖에 없다는 점도, 해당 분야에 대한 거부감을 키운다.




개인적으로, 21년에 대두된 알페스 논란의 근본적 문제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진영간의 치열한 개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존인물과의 가상 연애 혹은 성적대상화를 하는 창작물이 최근에 생긴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돌 알페스물만 하더라도 적어도 20년은 되었고, 과거의 인물을 모에화 하는 작품도 수십년 전 부터 있어 왔는데 갑자기 논란이 된 문제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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