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 여행기 - 2편

by 닥터 플로우

태양에 진 날, 식탁에서 이긴 밤. (2026년 1월 5일)


낮에는 에스츄리 cc에서 태양과 한 판 붙고 왔다. 11시 티업의 열대는, 내 부족한 스윙을 교정해 주기 전에 먼저 자존심을 태워버렸다. 햇빛이 너무 뜨겁고,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골프를 즐긴다”기보다 “골프를 버틴다”에 가까웠다. 얼굴은 벌겋고, 목덜미는 소금기. 게다가 렌탈 클럽이라 더 어려웠고. 성호는 꽤 실력자라 그 와중에도 리듬을 유지하는데, 나는 100돌이라 하기도 민망한 초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왔다.

그래도 숲에서 시작해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forest-to-sea’ 구성의 골프장은 무척 아름다웠고, 한국 기준으로 한겨울에, 이렇게 덥고 아름다운 곳에서 라운딩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인 인상으로 남았다.


에스츄리 붕바우CC


저녁은 리젠트 안의 OKU에서 다 같이 만찬을 즐겼다.

OKU의 공기는 묘하게 낮았다. 소리가 낮고, 조명이 낮고, 사람들의 말도 낮았다. 리조트 안 레스토랑인데도 ‘리조트 느낌'이 잘 안 난다. 관광지의 들뜬 호흡을 한 겹 벗겨낸 뒤에, 그 아래에서 진짜 식사를 꺼내는 공간 같았다.


우리는 안심 스테이크가 포함된 코스 메뉴를 시켰다.

명성에 걸맞는 일품요리였다. 스테이크의 마이야르가 ‘바삭’이라기보다 ‘단단한 향’으로 서 있고, 속은 지나치게 부드럽지 않게 - 딱 그 지점에서 멈춰 있었다.

그런데 나는 스테이크보다 교자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교자는 종종 “사이드” 취급을 받지만, 잘 만든 교자는 본편을 흔든다. 피의 얇음, 속의 온도, 씹는 순간 튀어나오는 육즙과 향. 한 입 먹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정돈됐다. ‘아, 오늘은 이거면 됐다’라는 식의 납득. 그리고 기타 사이드들도 그랬다. 화려하게 ‘설명하려는 맛’이 아니라, 조용히 “응, 맞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


OKU는 일본과 프랑스의 기법을 섞어 “컨템퍼러리 일본-프렌치”를 표방하는데, 이 혼종이 억지스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나라의 요리는 공통적으로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소스와 구조로 절제를 만들고, 일본이 칼과 온도로 절제를 만든다면, OKU는 그 둘을 같은 문장 안에 넣는다. 그러니 스테이크 옆에 교자가 놓여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다. 현대의 식탁은 국경이 아니라, 기술과 태도의 문제니까.


OKU를 이끄는 셰프는 앤디 후인(Andy Huỳnh)으로 소개된다. 베트남 닥락출신으로,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성장했고, 일본 요리를 중심으로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한다. 특히 노부 계열 주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기술을 다졌고, 이후 고향인 베트남으로 돌아와 이곳 OKU의 ‘셰프 드 퀴진’으로 합류했다는 흐름이 꽤 인상적이다.

요즘은 셰프들이 철학을 말하고, 접시가 이야기를 하고, 플레이팅이 세계관을 만들곤 한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은 솔직해진다. 맛이 먼저다. OKU는 그 기본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설명을 과하게 붙이지 않고도, ‘손이 많이 갔겠구나’가 느껴지는 정교함이 있다. 스테이크가 그렇고, 교자가 그렇고, 곁들이는 사이드들이 그렇다. “메인 - 사이드”의 위계가 아니라, 하나의 식탁이 완성되는 방식으로 음식들이 놓여 있다.


뜨거운 낮이 사람을 거칠게 만들면, 좋은 저녁은 그 거칠음을 다시 깎아준다. 우리는 그날 접시를 비우면서 조금씩 얌전해졌다. 서원이의 웃음도,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어른들의 말끝도 전부 한 톤 내려갔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밤늦게 방을 바꿨던 소동도, 거기에 이어진 새벽의 소음도, 땡볕의 라운딩도, 그 모든 번잡함은 식탁 앞에서 잠깐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 고쳐 앉은 자세로, 우리는 여행 마지막 밤을 보냈다.



OKU에서



작은 공항, 큰 마음. (2026년 1월 6일)


마지막 날의 조식은 늘 그렇듯, 맛보다 먼저 아쉬움이 올라온다.

“오늘이 끝이구나.”

더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머물고 싶어서 천천히 씹게 된다. 접시 위의 과일과 빵이 아니라, 며칠 동안 쌓인 햇빛과 바람을 한 번 더 삼키는 느낌.


조식을 마치고 우리는 키즈카페로 내려갔다. 하성이와 오버쿡드라는 게임을 플레이했다.

이 단순한 어린이용 게임은, 여러 의미로 재미있었다.

한쪽이 재료를 자르고, 한쪽이 불을 보고, 누군가는 접시를 닦고, 누군가는 서빙을 한다. 역할을 정하지 않으면 주방은 곧 전쟁이 된다.

하성이와 나는 말이 줄어든 대신 동작이 빨라졌다. “자른다 - 던진다 - 굽는다 - 내보낸다.” 이 단순한 리듬이 맞아떨어질 때 묘한 쾌감이 있다. 어른끼리의 대화는 종종 합의와 체면으로 느려지는데, 아이와의 게임은 그게 없다. 필요한 것만 남는다. 그래서 오히려 관계가 선명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푸꾸옥 공항은 휴양지의 명성에 비해 작고 단출했다.

바깥은 세계가 휴양의 색으로 번쩍이는데, 안쪽은 현실이 서류철처럼 정리되어 있다. 휴양지의 공항이 작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 섬은 “머무는 곳”이지 “오가는 곳”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니까.


비행기 좌석은 이코노미 중에 가장 앞줄이었다. 발 공간도 그렇고, 화장실 바로 뒤라서 “아, 편하겠네” 싶었다.

그런데 그 화장실이 프레스티지 전용이었다. 우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통로를 따라 한참 걸어 뒤쪽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창밖을 보았다.

푸꾸옥의 빛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우리는 이미 떠나는 사람의 눈으로 그 빛을 보고 있었다.

여행은 끝나면 늘 이렇게 남는다.

불편은 웃음으로, 더위는 자랑으로, 아이들과의 게임은 - 이상하게도 - 가장 오래가는 장면으로.



KakaoTalk_20260108_123915937_02.jpg 리젠트 내부 키즈카페, 하빈, 서원.


이번 여행은 성호네 가족 덕분에 더 따뜻했다. 하성이 하빈이 그리고 성호 윤서 씨에게 고맙다



무사히, 그리고 행복하게.


나는 서원이와 해외여행을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분주했었다.

공항에서 울면 어떡하지,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 낯선 곳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어른 둘이 떠날 때는 “대충 다녀오자”가 낭만이 될 수 있지만, 아이가 끼는 순간 그 ‘대충’은 곧바로 불안이 된다.

가족여행의 난이도는 비행시간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를 얼마나 매끄럽게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나답지 않게 조금 일찍 움직였다. 계획적이지 못한 P 중의 P가, 아기 덕분에 처음으로 ‘미리’라는 단어를 실천했다.

대한항공으로 괜찮은 시간대를 예약했고, 그 선택이 여행의 첫 문장을 바꿔놓았다.

이코노미였지만 좌석 환경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고, 무엇보다 승무원들의 서비스가 좋았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과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정확한 온도였다.

그 조용한 친절이 내 긴장을 한 겹씩 벗겨냈다.

기내식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밥 치고 괜찮네”라는 변명 없이, 그냥 한 끼로 만족스러웠다.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잘 흘러가겠다.


공항과 이동도 내 예상만큼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움직일 때 힘든 건 먼 거리보다, 불필요한 멈춤과 헤맴이다. 표지판 하나, 안내 한 마디, 동선의 논리가 사람을 덜 지치게 하는데, 이번엔 그런 마찰이 확실히 적었다. 그래서 도착했을 때 ‘버텼다’가 아니라 ‘왔다’는 감각이 남았다. 여행이 시작부터 사람을 닳게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선물이었다.


베트남도 좋았다. 예전보다 더 정돈되어 보였고, 요청하면 처리 속도가 빠르고, 서비스의 언어가 세계 표준에 가까워진 느낌이 있었다.

리조트 역시 완벽했다기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이 가능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완벽함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대신 중요한 건 회복력이다. 작은 균열을 큰 사고로 키우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봉합해 주는 힘. 이번 여행은 그 힘이 여러 곳에서 작동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은 감정은 “좋았다”보다 “감사하다”에 가까웠다.

만 3살도 안 된 아이와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는 흔히 여행의 품질을 풍경으로만 판단하지만, 사실 가족여행을 지탱하는 건 풍경 바깥의 것들이다.

항공사의 태도, 공항의 동선, 낯선 나라의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

비행기 안에서 잠든 서원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번 푸꾸옥의 햇빛은 바다 위에만 내려앉은 게 아니었다. 걱정 위에 내려앉아 걱정을 잠재웠고, 피로 위에 내려앉아 피로를 정리해 줬다.


잘 다녀왔다.
무사히, 그리고 행복하게.
이 한 문장을 품에 안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다음 여행을 덜 겁내게 되었으니까.

마치 서원이의 잠든 숨결처럼, 조용히 확신이 하나 생겼다.

우리는 생각보다 잘 해낼 수 있다.




KakaoTalk_20260108_123915937_10.jpg 우리의 휴양은 결국 서원이의 웃음이었다. 다음 여행도, 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