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어려서 먹었던 음식들이 그리워진다. 그땐 그렇게 먹기 싫었던 콩 송편이나 무시루떡이 떠올라서 별일이다 싶었다. 그뿐인가. 설 명절에 윗방에서 화로에 구워서 상에 올리던 인절미도 먹고 싶고, 할머니가 다락에 넣어두고 꺼내주시던 콩, 깨, 땅콩강정도 먹고 싶다. 지금이야 떡집에 가면 쉽게 사 먹을 수도 있지만 너무 달거나 해서 그때 그 맛은 아니다. 딱 그때 먹었던 것에 것을 그리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콩나물 장조림을 만들었다. 입맛이 없다던 남편이 반색한다. 예전에 먹던 것과는 달리 만드는데도 엄마의 손맛이 떠오르나 보다. 콩나물 장조림은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음식이다. 결혼하고 나서 바로 제사가 연달아 있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어머니가 손으로 도미며 조기를 발라서 살만 상에 올리고, 모은 생선 뼈를 삶은 콩나물에 넣고 물과 간장과 마늘을 넣어 푹 조리는 음식이 콩나물 장조림이었다.
예전엔 시루에 한 동이 키운 콩나물로 제사 지내고 남은 생선 뼈를 넣고 짭짤하게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었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짜게 만들어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소한 콩나물 장조림이 짜기도 하고 비린 맛도 있는 데다, 질겨진 콩나물이 싫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알뜰한 어머니가 그저 생선 뼈조차 버리기 아까워서 만들어낸 음식인가 보다 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부산 출신의 유명한 여가수가 콩나물 장조림이라면서 냉장고에서 꺼내서 보여주면서 고소한 맛이 좋아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부산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니 새삼스럽게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 장조림엔 또 한 가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시면서 기억을 잃어가던 무렵, 아기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셨다. 부엌에 오시면 일부러 음식을 만들면서 어떻게 만드느냐고 여쭈면 모른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어느 날인가 콩나물 장조림을 만드는데 어머니가 부엌에 오셨다.
“엄니! 엄니 아들이 콩나물 장조림 먹고 싶대요. 콩나물 장조림은 어떻게 만들어요? 엄니가 만들어야 맛있는데 가르쳐 주세요.”
어머니는 어째 모른다고 고개를 젓지 않고 가만히 생각하셨다.
“콩나물을 한 김 내야 해... 그리고 음...”
“엄니! 멸치도 넣어야죠?”
“응, 멸치 넣고 간장도 넣고...”
“마늘은요?”
“마늘도 칼등으로 뚜드려 넣고... 음...”
“참기름은요?”
“참기름도 넣고...”
“알았어요. 엄니, 내가 맛있게 만들어서 엄니 아들한테 줄게요.”
어머니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셨다. 누워 계시다가 떠나신 지 꽤 되었는데도, 그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라서 괜히 울컥했다.
요즘 나는 내 식으로 콩나물 장조림을 만든다.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볶은 멸치에 콩나물, 간장, 마늘, 파, 설탕 약간에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덮어 푹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뚜껑을 열고 뒤적거리면서 조려주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으면 짭조름한 콩나물 장조림이 된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은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결혼 전엔 밥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결혼해서 내내 어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맛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함께 산 세월이 어찌 좋기만 했을까만,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남편에게 콩나물 장조림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