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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경 Apr 26. 2024

옥돔 이야기

아들이 옥돔을 보냈다. 아들과는 인스타그램에서 소통하는데 남편이 입맛 없어한다는 글을 보고 “먼저 보냈던 옥돔 맛있게 드셨다니 좀 보내드릴까요?” 했다. 그러라고 해놓고는 아차 옥돔이 꽤 비쌀 텐데 했다. 지난번에도 옥돔을 보내줘서 남편이 잘 먹었다. 어제 옥돔이 왔는데 통으로 된 생물 옥돔이다. 어차피 얼려야 할 텐데 뭐 하러 비싸게 생물을 보냈느냐고 하니 한 끼라도 맛있게 드시라고 보냈다고 했다. 지금껏 통으로 된 옥돔은 처음 본다.

옥돔을 보면 저절로 40년도 넘은 신혼여행이 떠오른다. 그때 관광버스를 탔는데 회갑 기념 여행을 왔던 노부부를 빼면 거의 모두 신혼부부였다. 저녁에 관광이 끝나면 가이드가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사하고 나오면 사람 수에 따라서 1/n로 별도로 계산되어 그 돈을 내면 되었다. 남편처럼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에겐 괜찮은 셈법이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부부들에겐 좀 억울한 계산법이었을 것이다.

연이틀 같은 버스에 탔던 사람들과 어우러져 술을 마셨던 남편은 마지막 날은 술을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아침, 호텔 커피숍에서 관광버스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남편에게 아는 체를 했다. 남편의 전 직장 동료인데 제주지사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우연히 만난 그 친구와 마지막 날 밤까지 그야말로 코가 비틀어질 정도로 술을 마셨다. 나와 약속은 했지만, 술 좋아하는 데다 친구를 그것도 제주에서 만났으니 싱싱한 회를 곁들여 마시는 술맛이 꽤 괜찮았을 것이다. 선물을 사야 하는데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옥돔을 권해주었고 직원을 시켜서 사 오게 했다.

우리가 사려면 꽤 비쌌을 고급생선인 옥돔을 현지 사람을 통해서 사다 보니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옥돔은 그다지 알려진 생선이 아니었다. 가시가 억센 데다 생선 살이 깊지 않다고 우리 어머니는 돈도 쓸 줄 모른다며 뭘 이런 걸 돈 주고 사 왔느냐고 타박하셨다. 그때도 옥돔은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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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구워보니 부드러운 살점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삼분의 일쯤 먹은 남편이 다 먹었다고 하기에 화를 냈다. 애들이 사서 보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먹으라고 해서 반 마리쯤 먹게 했다. 자기가 이렇게 내 속 썩이면 아마 죽어서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내내 그럴 거라고 하니 죽으면 끝인데 무슨 후회를 하느냐고 그런다. 이 남자 맨날 밥 생각이 없다며 밥 조금만 푸라고 할 때마다 밥주걱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아마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암튼 오늘은 한 끼라도 맛있게 드시라고 생물로 보냈다는 옥돔구이 덕분에 한 끼 해결 잘했다. 아픈 아버지 단백질 섭취하라고 질 좋은 소고기를 사 대는 딸과, 입맛 찾게 하라고 옥돔 보내주는 아들 며느리, 염치없지만 미안하고 고맙다. 난 참 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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