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혜경 Apr 29. 2024

부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오래전 남편이 30년이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자 딸이 여행을 계획했다. 홍콩과 마카오로 떠난 여행에서 남편이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참 좋았다. 두 번째 날에 갔던 스탠리엔 외국인 거주지가 많다더니 외국인 노부부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은퇴 후 여유를 즐기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맥주잔을 앞에 놓고 담소를 즐기거나 개를 끌고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며 여럿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웃는 모습들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나도 더 늙으면 저렇게 남편과 함께 여유로운 모습으로 지낼 수 있을까.


예전에 길을 가다가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노부부를 보았다. 앞서 가는 할아버지의 한 걸음 뒤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은발이 무척 고왔다. 남편과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성질 급한 내가 늘 한걸음 앞서는 편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천천히 남편의 뒤를 다소곳하게 따라갔으면, 나중에 늙으면 나도 저 부부처럼 저렇게 살았으면 싶었다.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다면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살다가 남편보다 한 일 년만 더 살다가 세상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등산하다가 내려오는 길에 어떤 노부부와 마주쳤다. 팔순은 넘으신 듯 머리가 허연 부부가 지팡이를 짚고 산 중턱까지 올라오신 것을 보면서 참 부럽기도 하고 보기도 좋았다. 할아버지가 한 걸음 앞서고 할머니가 뒤에 오시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 아마 간식이 들어 있는 듯했다. ‘에구, 할아버지가 좀 들고 가시지.’ 걸음 걷기도 어려워 보이는 노부부를 보면서 우리도 늙어서도 건강하게 함께 산에도 다니면서 그렇게 늙어갔으면 싶었다.


내 바람대로 산다면 내가 남편보다 조금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 마누라 없어서 아쉬운 것도 좀 알았으면 해서다. 불과 몇 년 만에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살다가 남편보다 한 일 년만 더 살다가 세상 떠나고 싶었던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참 많이 변했구나.


매달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면 마주치던 부부가 있었다. 부인은 잠시도 한자리에 앉아있질 못한다. 잠시 앉았다가도 일어나려 하고 일어나면 어디론가 가려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눈빛으로 만류하고 아내는 보채면서 남편의 손등을 때린다. 결국엔 남편도 아내를 따라, 온 병원을 헤맨다. 병원에 온 잠깐도 그런 지경이니 집에선 어떨는지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어느 날엔가 내 앞에 앉은 아저씨의 바지에 희끗희끗 얼룩이 많았다. 반면 아픈 아내의 입성은 말끔했다. 아픈 아내를 저렇게 돌보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지쳐 보이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어느 자식이 저렇게 하겠느냐고 저 남편 같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러자 가만히 보고 있던 아줌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부럽다고들 한다.


그 부부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 아픈 아내를 아저씨가 병구완하는 것을 보니 그게 안타까우면서도 부러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저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함께 가는 길,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같이 살다가 어느 날 한 날 한 시에 함께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옥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