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매생이를 사서 떡국을 끓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생이를 모른다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엔 방송에 소개되고 많이 알려지면서 매생이 가격이 좀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생이는 남도의 청정해역에서 겨울에만 채취되는 무공해 해조류로, 생김새는 아주 가느다란 실들이 뭉쳐 있는 느낌으로 파래보다도 입자가 가늘다. 매생잇국은 아무리 펄펄 끓여도 김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남도 지방에서는 ‘미운 사위에게 매생잇국 준다’는 말도 있다.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예방하거나 진정시키는 효과가 뛰어나서 술안주로 좋고 술 마신 후에 먹으면 숙취 해소에도 좋다. 칼륨, 철분, 요오드 등 무기염류와 비타민 A와 C가 풍부해서 어린이의 성장발육촉진과 골다공증 예방에 탁월하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거나 고혈압 수치를 내리는데 좋다고 하니까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건강식품으로 손색이 없다.
내가 제대로 이름을 알면서 매생잇국을 처음 먹었던 것은 이십여 년 전 시누님 댁 이사를 해주고 나서 아파트 근처 식당에서였다. 목포식당이었던가 암튼 남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다. 당시에도 한 그릇에 8천 원으로 기억되는 매생잇국의 첫맛은 시원하지만 비싸다 싶었다.
그 뒤로 술 먹은 사람에게 좋다기에 매생이를 사서 국을 끓였다. 바닷가 출신도 아니면서 비린 것 아랑곳하지 않고 잘 먹는 나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는데 남편은 별로라며 반가워하질 않았다. 특히 익힌 굴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굴 냄새가 싫다고 했다. 먹기는 하지만 식당에서 먹어 본 맛이 나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입맛은 대개 처음 접했던 맛으로 기억되는가 보다. 그 뒤로 굴을 빼고 멸치 육수에 끓이기도 하고 해마다 매생잇국을 한두 번은 끓여 먹는다. 맨 마지막에 참기름을 한 방울 넣었더니 처음 먹었던 그 맛이 났다.
사십여 년 전 신촌에서 살 때 옆집 아주머니가 해마다 겨울, 아저씨 생일이면 서울에선 맛보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니 먹어보라면서 가져다주었다. 냉면 그릇에 아주 고운 파래(?)에 곱게 채를 친 무와 굴을 넣은 국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 차갑게 식혀서 가져왔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파래밖에 모르던 나는 파래가 참 가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매생이였다. 하지만 낯선 그 음식을 아무도 반기지 않아서 결국은 굴을 좋아하는 내 차지가 되곤 했다. 그때의 나 역시 아무것이나 잘 먹는 편이 아니어서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파래와 굴이 뭉클거려서 맛보다 먹는 느낌이 썩 좋질 않았다.
그리고 보면 40여 년, 택배가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때였으니 서울에선 참 귀한 음식이었던 것을 그땐 몰랐다. 아주머니의 고향인 고흥에서 매생이를 구해서 귀한 음식을 만들어서 준 것인데 지금 같으면 없어서 먹지 못하는 그 귀한 음식의 진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때 그 부부는 홍대 입구 어디쯤에서 슈퍼마켓을 한다고 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던지 당시 고3이었던 아들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 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니면 안절부절못하고 오빠 공부한다고 조용히 하라며 ‘쉿!’ 하던 아줌마였다.
일이 많아서인지 늘 화난 사람처럼 입을 꽉 다물고 다니다가도 아들을 바라볼 때는 환하게 웃으시던 그 아줌마는 음식솜씨가 좋았다. 착하게 공부 잘하고 다소곳하던 그 집 아들도 지금은 중년이련만. 매생잇국을 먹다가 그분들은 어떻게 늙어 가실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