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고부일기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2010.3.20
요즘 들어 자주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얼마 전 시누님 내외분이 다녀가셨다. 애들 고모부와 남편이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양원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누님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라고 한다.
시누님은 편찮으신 시아버님을 요양병원에 모시고 돌아가시기까지 거의 매일 들여다보셨다. 그랬듯 엄마도 요양병원에 모시고 자주 들여다보면 된다고 하신다. 집에 계시니 나에게 미안해서 자주 오지 못한다고 하시는데 입장을 바꿔보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면서도 서운했다.
어떤 친구는 ‘집에서 모시는 것보다 훨씬 잘해주는데 걔는 뭐 하러 그러고 사느냐’고 하더라니 남들은 쉽게 말해도 된다. 남편 입장에선 나에게 미안하니 누나에게 생색 좀 부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긴 요즘은 노인 요양보험 제도가 있어서 집에서 드는 비용에 조금만 더 들이면 요양병원에 모실 수 있다. 하지만 비용 때문에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편찮으신 어머니를 내가 모시기로 한 것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내 맘 편하기 위해서였다. 편찮으시면서 순한 아기가 되신 어머니를 내 몫으로 받아들였고 가시는 날까지 내 손으로 보살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워서도 알게 모르게 나에게 시집살이를 시켜서 조금 긴 외출을 하고 오면 삐지기도 하시지만 수시로 마음의 갈등이 생기는 나를 다독이는 것은 어머니의 착한 웃음이었다. 나를 보면 그저 아기처럼 눈을 맞추는 어머니를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죄스러웠다. 네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던 모진 시간을 보내면서 딸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어머니를 돌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딸에게까지 짐을 지운 것 같아서 편치 않았다. 마음을 비우자.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뭐란 들 어떨까. 서운한 마음을 덜어내자 그랬는데 자주 서운한 생각이 치민다.
너무 피곤해서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가 깜빡 자고 일어났다. 어머니가 주무시느라 저녁 식사를 안 하셨으니 챙겨야 한다. 밤 열두 시에 죽을 데워서 주사기로 넣어드리고 기저귀를 갈았다. 낮 밤이 바뀌어서 요양보호사가 와서 머무르는 시간엔 주로 잠을 주무시고 대변을 보시는 시간도 주로 한밤중이다.
옆으로 돌려놓고 기저귀를 바꾸는 사이에 소변을 보시는 바람에 옷이며 매트까지 모두 적셨다. 졸려서 죽을 것 같았는데 죽 드릴라, 기저귀 갈라, 옷 갈아입히랴 한바탕 난리를 부리다 보니 잠은 멀리 도망갔다. 문득 언제까지 이래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엔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같이 들고 나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 순간에 쓰레기봉투를 콱 잡았는데 손가락이 쓰레기봉투를 찌르면서 어머니의 대변이 묻었다. 바로 위에 있던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넣은 것을 찌를 것은 무엇이람. 급한 대로 쌓여있는 눈에 문질러서 손가락을 닦는데 눈물이 솟았다. 그냥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다.
낮 동안 잠시 외출은 괜찮은데 볼 일이 있을라치면 식구들이 시간을 맞춰야 한다. 봄바람이 들었는지 공연이며 영화도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참자. 참자고 하면서도 꼭 가고 싶을 때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라던 시누님의 말이 떠오른다. 요양원에 모시면 밤 열두 시건 한시건 엄니 배고플 것 생각해서 챙겨 주시려나. 축축할 것 생각해서 자주자주 기저귀도 갈아주려나. 늦은 밤에 대변 기저귀 갈아주고 몸 닦아주고 옷 갈아입히면서도 구박하지는 않으려나.
하지만 엄니야 어떻든 내가 하룬들 편할까 싶어서 마음을 접으면서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에구... 저 할마씨.... 나는 잠 도망가게 만들어놓고 잘도 주무신다. 나도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