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평범한 철학 - 주부의 사유일기

나는 언제 제일 나답다고 느끼는가 3

by 마음쉘터

자아정체성과 존재감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라는 감각을 필요로 한다.
이름이 있고, 역할이 있고, 기억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섞여도 진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좀처럼 쉽게 대답되지 않는다.

나는 오랜 시간 주부로 살아왔다.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곁을 지키고,
가족의 하루가 무탈하도록 기울어지는 일상을 살아왔다.
그 안에는 보람도 있었고, 따뜻한 풍경도 있었지만
문득문득 어떤 공허가 밀려오곤 했다.
그건 내가 아닌 것 같은 날들이,
너무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답다’는 말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릴 적엔 그저 좋아하는 색,
즐겨 듣는 음악, 자주 가는 장소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관계가 늘어나고,
역할이 무겁게 얹히면서
나는 점점 더 ‘나답지 않음’에 익숙해졌다.

그 대신
‘좋은 엄마답게’,
‘예의 바른 며느리답게’,
‘착한 사람답게’
라는 문장들이 나를 대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문득,
“나는 지금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보다 낯선 얼굴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상처이면서도 동시에 출구가 된다.
나는 점점 더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언제 내가 가장 ‘나다웠는지’를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를 창조할 때,
가장 나다웠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
내 마음의 단어들을 정돈해 문장으로 옮기는 이 행위가
내 존재감을 가장 선명하게 밝혀주는 등불 같다.

누구를 위한 글도 아니고,
성과를 내기 위한 글도 아닌
그저 나를 기록하는,
나를 직면하는,
나를 허락하는 글.

그 안에서 나는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저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서 나 자신이 된다.

때로는 창밖을 오래 바라볼 때도 그렇다.
따뜻한 햇살이 벽에 드리워지고,
고요한 시간이 방 안을 채우는 순간.
그 무언한 침묵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그런 순간을 ‘쓸쓸함’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존재감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아도,
나는 내가 여기에 존재함을 아는 시간.

병원에서의 시간도 그랬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지금,
나는 오히려 가장 나를 많이 마주하고 있다.
외부의 일정과 소란이 사라진 이 조용한 방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한 나를 연습하고 있다.

‘나답다’는 것은 어떤 성취의 느낌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결이 나와 맞닿는 순간의 투명한 감각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되는 말투,
흘러가는 음악처럼 자연스러운 표정,
속으로부터 번지는 따뜻한 이유 없는 평온.

그런 순간에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자아정체성이란
무언가 거창한 정의가 아니다.
그건 아마,
‘이 순간의 나를 믿어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하지 않고,
사회적 역할에 기댈 필요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용기.

그 감각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단단하고 조용한 중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부터,
다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나는 언제 가장 나다운가?”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매일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놓지 않고 산다면
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나답게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전 02화내 삶의 평범한 철학 - 주부의 사유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