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평범한 철학 - 주부의 사유일기
좋은 엄마보다 괜찮은 인간이고 싶다 4
역할의 경계, 자존감에 대하여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그 말을 내가 얼마나 자주 속으로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식단을 짤 때도,
학교에 보낼 준비물을 준비하며,
방 한구석에서 울던 날에도
늘 그 문장이 나를 이끌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다.
그래야 남편이 평화롭게 일터에 나설 수 있다.
그래야 우리 가족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좋은 엄마’라는 이름에
내 자아의 상당 부분을 저당 잡혀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아침에 깨워줄 필요도
세탁물에 이름표를 다는 일도,
방학 숙제를 챙기는 일도 끝이 났다.
나는 비로소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정말 좋은 엄마였을까?”
아니, “나는 나에게 괜찮은 인간이었을까?”
좋은 엄마는 ‘정답처럼 정해진 이상’에 가깝다.
늘 인내하고, 배려하고, 포용하고,
가끔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하지만 괜찮은 인간은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넘어지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알고,
슬플 땐 조용히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돌봐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는 사람.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 나는 한 사람의 ‘나’였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꿈을 꾸고,
질투하고,
책을 읽고,
걸으며 생각하던 사람.
때론 게으르고,
때론 엉뚱하고,
감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인간.
그 인간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어딘가 서랍 속으로 밀려났다.
이제는 다시 그 서랍을 열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나’를 꺼내주고 싶다.
나는 더 이상
모든 걸 감당하려 애쓰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괜찮은 인간이고 싶다.
넘어지면 "아프다"라고 말하고,
혼자 있고 싶을 땐 조용히 나를 보호할 줄 아는
적당히 흔들리고,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
이기적인 것과 나를 지키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나는 이제야 배우고 있다.
수술 후 회복 중인 지금,
나는 이 고요한 시간을 빌려
그동안 미뤄뒀던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누군가를 위한 ‘좋은 역할’이 아니라,
그저 나를 위한 최소한의 존엄.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연습.
“오늘의 나는 충분히 괜찮았다”라고,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살아있기에 가치 있다”라고,
속삭이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다.
아이들도 이제는 내게 더 이상 ‘모범’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엄마가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엄마도 무너지고, 고집부리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그들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한다.
오히려 그 허술함 속에서
우리는 더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엄마도 예전엔 그랬어.”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어.”
“그래도, 같이 살아보자.”
그 말들이
어떤 위로보다 깊고 따뜻하다.
좋은 엄마보다 괜찮은 인간이고 싶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역할도 결국은 무너지고 말 테니까.
‘역할’은 의무지만, ‘존재’는 생명이다.
나는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
나는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천천히,
나는 이 말 한 줄을 내 안에 적는다.
“나는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