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을수록 나는 나와 가까워졌다

자기 자신에게 다다르는 여정

by 마음쉘터


처음엔, 걷는 이유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도착할 만한 어딘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거나,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 있기를 바랐다.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은 어색했다.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는 여정이란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걷는다는 건 단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 아니며,
때론 그 어디도 아닌 ‘나에게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길을 오래 걸을수록,
나는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의 소리들이 멀어지고,
내 내면의 목소리가 조용히 떠올랐다.

평소엔 너무 소란스러워 듣지 못했던 것들.
작고 부서지는 감정들,
애써 무시했던 불안,
미뤄놓았던 질문들.

걷는 동안 그들은 하나씩 찾아왔다.
숨을 고르듯,
나를 부르듯,

나는 걸으며 묻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
“무엇이 나를 지치게 만들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살게 하고 있는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바로 주어지지 않았다.
걷다 보면,
답은 길 위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그걸 발견하려면
충분히 오래 걷고,
조급해하지 말아야 했다.

걷는다는 건 자기 자신을 향해 천천히 도달하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잰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멀리 가야만
의미 있는 삶이라 믿었다.

그러나 길 위에선 그런 비교가 무력해진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걸음.
단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반복되자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 삶의 진짜 문제는
‘내가 부족한가?’가 아니라
‘내가 나와 멀어졌는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낯설어지면
어디를 가도 편하지 않다.
좋은 풍경도, 친절한 사람도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다.
느리게, 조용하게, 혼자서.
그렇게 걷다 보면
내가 나에게 다시 말을 건다.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도 충분히 잘한 거야.

나는 그 말을
세상이 아닌
내가 내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비로소 걷는 시간 속에서 배웠다.

타인의 말로 살아가면
언제나 불안하다.
그들의 평가에 따라
내 가치가 출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단단한 목소리를 다시 발견하면
나는 조금 덜 흔들린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내 중심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길 위에서 나는 나를 다독였고,
때론 스스로에게 사과했다.

“그동안 너무 몰아세웠지?”
“왜 그토록 무리했을까?”
“네가 참아준 시간, 고맙다.”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치유되었다.
누구도 몰랐던 내 상처,
누구도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만져주는 일.

그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하지만 걷는 동안엔
그 ‘오래됨’조차 괜찮았다.

오래 걸을수록,
나는 더 나다워졌다.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 안의 리듬에 맞춰 걸음을 내디뎠다.

비로소 나는
‘살아 있음’과 ‘살고 있음’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미를 되찾아주는 삶.

그리고 그 시작은 늘,
아주 단순한 걷기에서 비롯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걸어선 어디에도 닿지 못해.”
그러나 나는 안다.
그 걷기 덕분에 나는 나에게 닿았고,
그 거리는 세상의 어떤 성취보다도
소중한 도달이었다는 것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잃어버린 나를 다시 데려오는 과정이다.
길을 걷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끝내 나와 화해하는 일.

나는 아직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내가 나에게 가까워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