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건 시간을 걷는 일이다

나이 듦, 기억, 상실, 그리고 순례

by 마음쉘터


걷는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동시에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발은 지금을 딛지만,
마음은 지난 시간의 가장자리를 더듬는다.
우리가 걷는 건 단지 공간을 이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가기 위해서다.

나는 걸으면서, 나이 든다.
어릴 적에는 빨리 가고 싶었다.
어디든, 누구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걷는 속도로 나이 들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리움 하나, 아쉬움 하나씩을
나에게 남긴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과거가 따라온다.
돌이킬 수 없는 장면들,
되묻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질문들.
그 시절의 나,
그 곁에 있던 사람들,
이제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누군가.
그들은 늘
풍경이 조금 낯설고, 공기가 약간 흐려질 때
불쑥 찾아온다.

나이 든다는 건,
그들을 자주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잊지 않으려고, 잊을 수 없어서.
어떤 상실은 그렇게 걷는 동안 더 깊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실을 견디는 방법 또한
걷는 것 외에는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언젠가부터
길 위에서 순례자가 되었다.
어떤 신념이나 종교를 위한 순례는 아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내가 놓친 것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다시 만나기 위한 순례.

길 위의 나무는 해마다 나이테를 늘리고,
바람은 지나간 계절을 품고 돌아온다.
걷는 나의 몸도,
그 속에 시간을 담는다.
무릎의 관절은 계절을 기억하고,
등의 굽음은 세월의 무게를 안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과 함께 걸을 줄 알게 되었다.
그리움이 목을 메이게 해도,
과거의 그림자가 발끝에 드리워도,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저 걷는다.
그 기억과, 그 무게와 함께.

어떤 길은
돌이켜보아야만 의미가 완성된다.
살아온 삶이 그렇다.
당시엔 몰랐던 의미들이
지금에서야 비로소 말을 건다.
“그때 너는 잘 버텼다”라고.
“그 시간도 필요했었다”라고.
그리고
“그래서 지금 너는 여기까지 왔다”라고.

이처럼 걷는다는 건
지나온 시간을 다시 통과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

시간을 걷는 사람은
잊는 법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졌을 뿐이라는 것.
지워진 것이 아니라
흐려졌을 뿐이라는 것.
그 차이를 이해하는 데
걸음이 필요하다.

상실은 흉터처럼 남지만
걷는 사람은 안다.
그 흉터가 더는 아프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는 걸.
다만 그것은
기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억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시간을 순례하고 있다.
어떤 이는 어린 날의 후회로,
어떤 이는 다가올 이별을 미리 상상하며.
그러나 그 길은 누구에게도 동일하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만의 시간.
그걸 우리는 걷는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웃으며.

길의 끝은 어디일까.
아마도 끝이라는 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지막에서
또 다른 걸음을 시작하고,
어제의 나에서
오늘의 나를 다시 부른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도 누군가의 추억이 된다.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더 단단하게 걷게 된다.
조금 더 부드럽게 살아야겠다고,
나도 누군가의 기억이 될 테니까.

걷는다는 건 시간을 걷는 일이다.
그리고 시간은 늘,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니?”
“무엇을 지나왔고,
무엇을 놓고 왔니?”
“그리고 오늘,
너는 무엇을 안고 걷고 있니?”

나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걷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을,
그리고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기 위해서.

걷는다는 건,
내 삶 전체를 손에 들고
조용히,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시간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