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집 사이, 놓쳐버린 계절의 향기
올해는 유난히 아카시아 향기가 나질 않는다.
정말 피긴 피었을까, 올해 아카시아는.
4월엔 수술로 집 앞 공원조차 나가보지 못했다.
벚꽃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봄.
철쭉도, 진달래꽃도
내 눈에 머물 틈 없이 스쳐갔다.
5월 말엔 다시 병원.
계절의 중심에서
나는 늘 창문 너머의 하늘만 바라봤다.
결국 아카시아도,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 향기조차 남기지 않고 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조용한 주택가였다.
학교 가는 길,
법원이 들어설 자리엔
공터 같은 곳이 있었다.
가끔 그곳에 가면
정체 모를 비석들이 서 있었고,
무언가를 기리는 듯, 혹은 잊힌 채로
햇볕 속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 옆엔 산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고
그 길 따라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꽃을 따 먹고
나는 줄기를 꺾어 잎을 떼고
머리를 땋아주곤 했다.
짧은 머리에도 억지로 땋듯
동네 오빠들, 남자애들 머리도 잡아당기며
장난처럼, 진심처럼,
아카시아 향기 속에 웃음 지으며 놀았었다.
그 시절의 아카시아는
온 동네를 덮을 만큼 많았는데
이젠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지금 나의 외출은
집 앞 도로 몇 분 걷는 것뿐.
하지만 마음 한편엔 그 시절,
손끝에 꽃줄기를 꼬던 나와
허리를 숙이며 웃던 친구들이 함께 걷는다.
좀 더 나아지면
햇빛이 쨍한 여름날일지라도
집 앞 공원까지라도 걸어가야지.
병원과 집, 집과 병원 사이.
나는 또 한 계절을 놓치고
꽃의 이름을, 향기를, 기억으로만 더듬는다.
올해의 아카시아는, 나 없이 피었을까.
향기 없이,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