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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Oct 05. 2023

공감능력이 뛰어난 자들의 장단점.

'공감'이 왜 중요해졌을까?


 "반년 동안 쓰러진 게 벌써 몇 번이야. 이것만 하고 변호사 그만할 거야? 할 만큼 했어, 너. 그것도 대기업 전관변호사팀 상대로."

 "형. 대기업이면.. 사람 그렇게 쓰다 죽여도 돼? 끝까지 할 거야."

 "안 돼. 그리고 그만. 의뢰인 그런 식으로 그만 불러. 의뢰인한테 공감하는 거 좋은 일이야. 훌륭하지. 근데 너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도움도 줄 수 있지."


 짜릿한 복수극을 그린 드라마 <이로운 사기>에서 과공감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 한무영 변호사와 로펌 대표가 나눈 대화다. 과공감 증후군이란? 말 그대로 공감이 과한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순간 자기 일처럼 아파한다. 극도의 공감력이다.


 나도 비슷하다.

감정이입을 잘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서인지.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 살면서 흘리는 눈물을 다 받아낸다면 호수를 하나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타인의 고통에까지 공감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다.


 공감능력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함께 느끼며 공유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감정을 잘 인지하고 그에 따른 정보를 잘 이해해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능력 부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울고 아파할 일도 폭발적으로 많다.

누가 울면 따라 울고.

누군가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아파하며 울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우는 일은 자주 있었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울 일도 은근히 많았다.

책을 읽다가도 울고, 뉴스를 보다가도 운다.

때론 '과거의 상처받은 나'에게 감정이입해 울고.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깊이 공감하며 듣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같이 아파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는 힘이 될 때가 있다. "공감적인 이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말처럼.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감정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 자신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다른 사람이 힘들 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속상해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그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내가 너무 지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가족도 챙겨야 하고, 다른 관계도 신경 써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놔주는 마음은 너무나 고맙다.

그런데 간혹, 밝은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힘든 이야기만 주렁주렁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너무 힘들다. 그렇다 보니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가득하고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과 이야기만 끝없이 늘어놓는 사람은 기피하게 된다.


 가끔은 뉴스를 보는 게 두렵다.

마음 아픈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지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 정인이 사건.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던 일들이다. 공감능력을 떠나 모두가 마음 아파하고 속상해했다. 공감능력이 지나친 나는 어땠을까. 연관된 사람은 없었지만, 뉴스를 보며 한동안 매일을 울었다. 가버린 사람과 남겨진 사람을 떠올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뉴스 중 하나는 아동학대 뉴스다.

그 기사를 접할 때면 손으로 가슴을 탁탁 치며 분노의 눈물을 흘린다.

저 작은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저 작은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작은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이들의 가슴속 비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고 괴롭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끔찍한 고통이 아니라.


그래서 나처럼 공감능력이 지나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고, 뉴스와 잠시나마 거리를 두어야 하는 때도 필요하다. 같이 아파하고 분노하더라도 말이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보면 대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범인을 보며 기겁을 했다. 저들은 왜 공감능력이 없을까? 어쩌다 공감능력을 상실했을까?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올바른 양육과 사랑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사실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조차도 어린 시절에 충만한 사랑과 공감을 받는다면 공감능력을 채울 수 있다.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훈련으로 충분히 길러지는 능력이니까. 이 능력이야말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연히 흉악한 범죄도 줄어들 테니까.


 아쉽게도 우리는 지금.

심각한 공감 결핍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이 능력이 절실한데 말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떤가?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힘든 사회를 살고 있진 않은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가난과 폭력,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연대 의식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종이 된 것은 자연계의 구성원 중에서 인간이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공감능력은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기능이었고, 앞으로도 인류 사회가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메타버스.

이제는 초연결시대다. 앞으로 다가올 초연결 시대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바로, 소통능력과 공감능력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이나 로봇, 챗GPT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이다. 정부와 사회단체, 기업들도 공감능력과 소통역량이 뛰어난 인재를 찾고 있다. 이제는 '공감'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다만 공감능력을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배려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철학자이자 국제적인 공감 전문가인 로먼 크르즈나릭은 21세기의 핵심이 공감 능력이라고 말했다. 저서 <공감하는 능력>에서 공감능력을 키우는 6가지 습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두뇌의 공감회로를 작동시킨다.

2. '상상력을 발휘해 도약'한다.

3. 새로운 체험에 뛰어든다.

4. 대화의 기교를 연마한다.

5. '안락의자 여행자'가 되어본다.

(예술•문학•영화, 그리고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6. 주변에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대규모로 공감을 이끌어내어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자연계까지 포용할 수 있도록 공감의 폭을 넓힌다.)



 공감능력은 어릴 때부터 키워줄수록 더 좋다.

영유아기 때부터 엄마와 아이 사이에 발생하는 수많은 정서 교환이 공감 형성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감지하고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나 공감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상황의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감 훈련을 한다면. 소설을 많이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문득 이 질문이 떠오른다.

돈 많은 사람들, 힘이 센 사람들, 수많은 리더들이 뛰어난 공감능력을 갖춘다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분명,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 수가 더 많아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감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니까.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사람을 얻는 지혜>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감에는 마음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 공감의 영향력은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이 마법이라고 부를 만큼 강력하다. 그 결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설득하고, 노력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공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함께 나아간다면 어떤 어려운 역경도 더 잘 이겨내고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공감이 건강한 가정, 건강한 학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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