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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Dec 15. 2021

번아웃이 오기 전에 떠난 여수 여행.

여수 여행이 내게 남겨준 것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마음껏 떠나지 못하는 요즘.

다들 지치고 힘들겠지만, 나 역시 그랬다.

잠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절실히 필요했다.


사실 진짜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은 크고, 자신감은 낮아졌다.

매일 읽고 매일 쓰면 될 줄 알았는데. 간절한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달려서 '번아웃'이 오려는 걸까. 아니, 이미 온 건 아닐까. 심신이 지치고 체력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주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자꾸만 울컥하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펑펑 울다 오고 싶은 심정. 이 답답함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 온갖 걱정들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혼자서는 어디 잘 다니지도 못 했던 쫄보인 내가, 혼자서라도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오랜 친구 'Y'와 타이밍이 맞았고 우리는 여수로 떠났다.



 여행 당일.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 설렜다.

기차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니까.

수다도 떨고, 책도 읽고, 사색도 하는 동안..

어느새 여수에 도착했다.


 여수가 처음인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차피 완벽한 여행은 없으니까. 빠듯하게 일정을 잡지 않고 정말 가고 싶은 곳만 골랐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즐거운 순간들이 펼쳐졌다.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못했지만 '여행의 설렘'이 더 컸는지 여수에 도착할 때까지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배가 많이 고팠다. 어렵게 맛집을 찾아갔지만 브레이크 타임 직전이었던 것. 나가려고 했지만, 감사하게도 사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맛집을 찾아가고, 숙소를 찾아가고, 명소를 찾아가고.

낯선 곳에서 길을 찾아다니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걷고 또 걷고, 버스 타고, 택시 타고. 그 소소한 과정들조차 즐거웠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불안, 두려움, 걱정, 스트레스, 압박감 등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여수 해상케이블카
오동도 섬
모이핀 카페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여수.

실제로 마주한 여수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여수 밤바다와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여수 해상 케이블카를 타기 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 초반에 홍콩의 화려한 야경과 레이저쇼를 보면서 느꼈던 벅찬 감동이 떠올랐다. 여수 밤바다와 야경은 홍콩의 밤 못지않게 환상적이었다. 그 순간, 어떤 해외여행지도 부럽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동도 섬을 들어가면서 이런 게 바로 힐링이구나, 느꼈다. 바람, 하늘, 바다, 풍경. 모든 것이 좋았다. 온갖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묘하게 뇌리에 남는 순간이 있다.

탁 트인 오션뷰와 루프탑, 감각적인 건축물, 여수 핫플레이스 모이핀 카페에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다.


 카페 루프탑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 사진을 부탁하셨다. 내가 그분의 휴대폰을 받아 들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데, 그 순간 루프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게 아닌가. 나와 내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같은 일행이었던 것이다. 10명이 넘는 단체 인원이어서 가로로 사진을 찍었다. 4장 정도 찍었을까. 아무래도 세로가 예쁠 것 같아서, 휴대폰을 세로로 돌리는 데. 그때, "오~~~~" 하는 함성이 터졌다.


 그 후에 친구가 내게 한 말.

"보통 사진을 부탁하면 한 두장 정도 찍어주고 마는데, 4장 정도를 찍고도 휴대폰을 '세로'로 돌리며 더 찍어주려고 하니까 그분들이 감탄했던 게 아닐까."


 사진 찍어주던 상황이 자꾸만 떠오른다.

함성이 터지던 그 순간. 묘한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다.

왜일까?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기 때문일까.


 여행은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여행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일도 생기지만, 예기치 못하게 기쁜 순간을 만나기도 하니까.



 카페에서 친구와 나눴던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그전에 먼저 친구 'Y'와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줘야겠다.


 중학교 3학년 시험 기간이었던 것 같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 뒤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가던 길. 갑자기 장대비가 퍽퍽 쏟아졌다. 무섭도록.


 억수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박스로 뛰어 들어갔다. 집에 전화를 해 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밖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절박한 심정으로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Y'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게도 친구가 우산을 챙겨 흔쾌히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내게는 잊지 못할 고마운 순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친구를 위해 장대비를 뚫고 데리러 와준 게 새삼 놀랍다. 그때부터 'Y'는 내게 의리 있는 친구라는 각인이 새겨졌던 것 같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으며 살았지만, 정작 친구는 이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친구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이 배가 됐다.


 'Y'는 이번 여행에서도 내게 또 한 번의 감동을 주었다.

'작가'라는 꿈을 품고 도전하겠다는 말을 전했던 몇 년 전부터 멋있다며 진심으로 응원해 줬는데,  북스타그램을 꾸준히 하는 것 또한 정말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사실 난 '진정한 꿈'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렇게 무언가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꾸준히,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최근의 내 모습이 나 스스로도 놀라워."


 이 말을 듣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나는 네가 오래전부터 일기나 사진 앨범을 꾸준히 하고 모으는 걸 보면서,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


 이 말은 내게 강력한 울림을 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준 느낌. 인정받는 느낌. 그동안 잘 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


 어쩌면 나는 '인정'의 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큰 위로가 됐다. 24년 지기 멋지고 소중한 내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여수 여행은 내게 사진과 추억뿐 아니라,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 용기,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었다.








 늘 피곤하고 지쳐있다면,

'번아웃'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번아웃 증후군. 사람이 지치고 소진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나 상태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심각한 질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특히 잘 찾아오는 증상이다. 자신이 느끼기에 매일 피곤하고 지쳐있고 무기력하다면 그 상태를 마땅히 인정하고, 지친 몸과 마음부터 돌봐야 한다. 잠시 멈추고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트레스와 번아웃. 피할 수 없다면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휴식과 재충전,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산책, 충분한 수면, 운동, 명상, 독서, 음악, 댄스, 맛있는 음식, 감사 일기, 여행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1박 2일 짧은 시간이지만, 아름다운 기억들이 나를 더 풍성하게 채워준 것 같다. 낯선 곳,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나를 되돌아보고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어지러운 생각들,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오로지 여행에 집중하고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위로를 받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해졌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았고, 그저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정여울 작가는 "글을 쓸 때 내 삶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돌을 던지세요. 그것만큼 간절한 무기는 없어요."라고 했다.

앞으로는 조금씩 나를, 내 인생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과거의 괴로웠던 날들까지도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열정과 자신감을 갖고, 희망을 안고, 나를 믿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꾸준히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번아웃이 오거나, 삶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혼자여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다. 여행은 일상을 멈추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삶을 위해서 잠시 떠나보면 어떨까.







"여행은 '장소에 간다'의 개념이 아니다. 내 삶이란 책 속에서 멋진 한 페이지가 장식되는 순간이다. 가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돌아보게 해 준다."

_글배우,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깨닫는 여행이란, 풍경의 아름다움을 섭취하려고 사진 찍기에만 급급하지 않고 항상 그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여행이지요."

_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_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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