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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 계속되는 비극.

by 위시러브 Feb 14. 2025


아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쳐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숨진 채 발견된다.

"안방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묻어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치매를 앓던 80대 아버지를 오랫동안 홀로 돌봐 온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15년 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아버지를 돌봐왔다. 그런데 8년 전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별도로 지원을 받지도 못했다. 형제들이 준 돈과 아파트 담보대출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아마 장기간 간병을 하며 사회적으로 오랜 시간 고립되었기 때문에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상황이 아니었을까. 모든 걸 포기할 만큼.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뿐이다.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숨지게 한 뒤 투신할 때의 심정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가 이고 갔을 죄책감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오랜 병간호 생활에 지쳐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간병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끝없는 간병은 가족을 고통으로 내몰고 끔찍한 비극까지 낳고 있다.


엄마가 아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1년 간 장애 아들을 돌보던 60대 어머니가 아들의 목을 졸라 직접 살해했다는. 그녀는 남편이 외출한 사이에 아들을 묶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남편에게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아들을 먼저 보내야만 했을까. 아니 같이 떠나려 했을까.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고통의 크기는 감히 알기 어려운 수준일 테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그 고통을 감히 어떻게 헤아릴 누 있을까.


그들이 왜 가족을 죽인 사람이 되어야 하나.






'간병 살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했다. 간병 살인이란 간병인이 피간병인을 방치 혹은 살해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오랜 간병으로 지친 간병인들이 가족을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독박 간병', '간병 지옥', '노노 간병', '간병 파산' 등 '간병'과 관련된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노노 간병. 노인이 노인을 간호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치매에 걸린 70대 아내를 오랜 시간 간호해 온 80대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봤다. 홀로 간병을 해오다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에 이른 것이다.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아픈 배우자나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게 맞는 걸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돌봄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간병에 시간과 노력을 쏟다 보면 경제적 활동은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환자의 상태나 간병 등에 대한 정보력도 떨어진다. 점점 더 빈곤해지고 정신적 고통도 더 커질 수밖에. 그야말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된다. 심리적 압박, 경제적 압박, 사회적 고립이 장기간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기약 없는 기나긴 간병 생활에 어느 누가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있을까.


문미순 작가의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으면서 '간병'은 결코 개인의 차원에서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소설 속 인물 '준성'이 처한 처지가 너무도 애처로웠다.


가족 간병을 하려면 일도 포기하고 일상도 포기하고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준성도 그랬다. 20대 청년 준성은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홀로 돌봐왔다. 학교도 그만두고 꿈도 포기해야 했다. 공부할 시간도,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아버지가 잠든 밤에 대리운전 일을 하러 나갔다가 외제차를 사고 내는 일이 발생한다. 비싼 수리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아버지의 작은 연금으로 겨우 살아내고 있었던 상황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돌보고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나. 준성의 삶이 참 가혹하다고 느껴졌다.


"착하다는 말, 대견하다는 말, 효자라는 말도 다 싫어요.

그냥 단지 제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됐지만요.."


그의 음성이 애잔하게 들려온다.

우리는 효자, 효녀라는 말로 '간병'을 개인의 몫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지 않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할 때다.


간병에 갇혀 지내다 보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가 어려운 게 당연하다. 고립된 상태로 하루하루 피폐해져만 간다. 지금도 누군가는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준성처럼 아픈 가족을 오롯이 홀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장의 경제적 활동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시간과 기회마저 잃는다. 우리 사회에 수많은 준성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가 '간병 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어떤 부분에 특히 대책이 필요할지 생각해 봤다.


먼저,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간병은 가족의 문제다. 개인의 문제다. 물론 우리나라도 간병에 관한 복지 제도가 있지만, 여전히 간병은 당연히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더 크지 않은가.

하지만 돌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문제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 국민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영국 임페리얼대학의 에자티(Mazid Ezzati) 팀은 1985년부터 2015년까지 통계를 바탕으로 선진 35개국 기대수명 변화를 예측한 결과 대한민국이 2030년에 세계 최장수국이 된다고 분석했다.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수명이 인류역사상 최초로 90세를 넘고, 남성도 84세를 넘는다는 것이다.


혹자는 초고령사회에서 전체 인구는 줄어드는 데 노인 비율이 커지면 치매 간병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양한 시각에서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우리는 결코 '간병'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자신도, 우리의 가족도 모두 늙어갈 처지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파괴될 만큼의 무거운 책임을 홀로 감내하는 게 과연 당연할까.


두 번째로, 경제적 압박이 줄어들어야 한다.

간병인은 경제적•신체적•정서적으로 심각한 삼중고를 겪는다. 길어지는 간병에 정신적 고통도 크겠지만 그 못지않게 심각한 게 바로 경제적 부담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환자를 함께 돌볼 수 있는 돌봄 인력이 없는 경우라면, 간병을 도맡은 사람은 온전히 환자에게만 자신의 시간을 쏟아야 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그러다 보면 병원비 부족은 물론 생활비마저 쪼들리게 된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간병인은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간병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어렵다. 정신적 고통이 날로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간병인은 자신의 감정을 돌볼 여력도 없을 텐데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중산층이라 하더라도 장기간 병원비와 간병비가 들다 보면 간병 파산으로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 번째는, 인력 문제다.

돌봄 분야 인력은 크게 부족하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맞벌이 부부 등가로 간병•육아 등 돌봄 서비스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사람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도 가족 간병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다. 전담 간호 인력이 가족의 간병을 대신하는 것이다. 비용 역시 민간업체에서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중증 질환은 그 대상이 되지 못한다.


가족 간병을 도맡고 있거나 갑작스레 가족 중 누군가가 쓰러질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족 돌봄 휴가' 제도도 있지만, 장기적인 간병이 아닌 이상 사용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좀 더 적극적이고 세심한 대책이 절실하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 더 이상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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