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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구덕이의 치열한 생존기.

by 위시러브


"엄마! 엄마!"

어린 구덕이가 아픈 엄마를 보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양반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며 다급하게 애원했다.

"제발요 나으리! 엄마 약 한 첩만 지어주세요! 제발요!"

양반은 눈 하나 꿈뻑하지 않고 아픈 구덕이의 엄마를 산 채로 묻으라고 지시한다.


구덕이의 눈에 분노의 불꽃이 튄다.

"어떻게 이래요? 우리가 짐승이에요? 개 돼지예요?!"


그렇게 구덕이는 어린 시절에 엄마와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해야만 했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한 장면이다.

노비로 태어난 구덕이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다. 악한 졸부를 만난 그녀는 시간이 흘러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버지와 함께 지독한 매질을 당한다. 결국 아버지와 도망을 치는데..


과연 구덕이는 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노비 제도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한 마디로 불평등한 사회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유교적 신분 질서가 강하게 뿌리내리면서 양반, 증인, 상민, 천민 계급의 구분이 엄격했다.


노비는 노예와 다름이 없었다.

세계 노예 학계의 일반적 개념에 따르면, 어떤 이유에서건 타인에게 신분이 속박되어 노역이나 몸값을 바쳐야 하는 모든 인간은 노예로 분류된다. 그중에서 자식에게로 신분이 세습된다면 상대적으로 더 가혹한 노예제라 인식되는데, 조선 시대는 가혹한 노비 제도를 시행했던 것이다. 타인에게 소유되어 매매, 증여, 상속이 가능한 존재일뿐더러 그들의 자손들도 모두 노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노비로 태어난 자들은 끝없이 노동과 착취를 당해야 했다.


차별과 억압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노비의 삶.

그들은 마음껏 꿈을 꿀 자유도 없었다.


드라마에서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송대감댁 맏아들 송서인에게 구덕이는 이렇게 말한다.

"제 꿈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맞아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것이요. 발목이 잘리거나 머리채가 잘리지 않고 그저 사는 것이요."


우리 사회에 '노예'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나만 불편한가. 어찌 인간이 인간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비인간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 <자유론>에 나와 있듯이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거늘.








노비로 태어난 자들은 평생 양반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지 않았다. 시대의 한계를 돌파해 나간 자들도 있었다. 구덕이도 마찬가지다.


도망노비의 신분으로 살아가던 구덕이는 옥씨 가문의 귀한 딸 옥태영을 만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옥태영의 인생을 대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삶을 개척해 나갔다. 영민한 그녀는 외지부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버티고 버텨내며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켜낸다. 그런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드라마에서처럼 당시의 노비 모두가 극단적인 환경에 처한 건 아니었다. 양반들이 노비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고문한 경우는 우리의 생각만큼 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분 해방이 쉽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대부분의 노비는 그저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며 먹고살기만으로 바빴으니까.


일부 노비들은 자유를 위해 몸부림쳤다.

그 결과 재산을 축적하여 돈을 내고 속량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전쟁에 나가 신분 해방이 되거나, 구덕이처럼 국가적 공로를 세워 면천을 이루어낸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며

법적으로 모든 국민이 평등한 신분을 갖게 된다.


이후에 더 가혹한 삶이 시작되어야 했지만.


조선 시대의 신분제도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였을지 모르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였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어디선가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자유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함부로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가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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