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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이 최선인가.

by 위시러브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엄마가 자살을 했다.

왜? 그토록 원하던 소원을 아들이 들어줬는데.


그 이유는, 아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이명주의 이야기다.

그녀는 빈틈없는 플랜과 조력으로 외아들 영재를 서울 의대에 합격시켜 3대째 의사가문의 위업을 달성해 낸다. 하지만 영재는 부모가 그토록 갈망했던 서울 의대에 합격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


섬에 숨어 있던 영재를 찾아간 이명주는 함께 있던 여자친구 가을이를 때리며 화풀이했다. 영재가 그녀를 막아서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7살 때부터 1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했어. 내가 아파도, 다쳐도, 쓰러져도 나 새벽 2시까지 학원으로 내몰았잖아. 나 1등 못 하면 밥 먹을 자격도 없다고 했어. 안 했어? 나 성적 떨어지면 나가 죽으라고 했어, 안 했어? 그 지옥 같은 생활, 가을이 없었으면 못 참았어. 서울 의대 합격증 줬잖아. 그게 소원이라며. 이제부터 내 인생 살 거야. 내가 살고 싶은 내 인생."


영재는 아동학대 수준의 학업에 대한 압력을 받아왔던 것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무조건 강요하고 밀어붙이고. 공부하지 않거나 시험을 못 보면 밥을 주지 않는 행위는 분명한 아동학대가 아닌가. 자녀가 부모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계속 매달리는 엄마에게 영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19년 버텨준 거야. 훈육을 했던 사육을 했던 날 키워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더 이상 지옥에서 살기 싫어. 당신 아들로 사는 거 지옥이었으니까."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들은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녀는 정말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걸까. 아이의 마음이, 아이의 삶이 지옥이었으리라는 걸. 영재는 다시는 찾지 말라며 엄마가 모르는 곳으로 떠났다. 아들이 남긴 메모를 보며 오열하던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부모들은 말한다.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라고.

과연 그럴까. 정말로 이것이 자녀를 위한 일일까.


책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나온다. 넓은 평형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용의자는 십 대 남자아이로, 피해자의 아들이다. 여유 있고 단란한 가족이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엄마는 아들의 성적에 지나칠 만큼 집착을 했다. 잔소리, 강요, 협박, 폭력까지 일삼으면서. 일등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녀는 '전교 일등 엄마', '아들을 서울대 보낸 엄마'라는 타이틀이 필요했으니까. 지독하게 공부를 시켰고 이 문제로 부부 사이는 급격히 나빠져 이혼을 했다. 이혼 후 아들의 성적에 대한 엄마의 집착은 더욱 심각해졌다. 머리가 좋아 스스로 공부해서 크게 될 수 있는 아이였지만 엄마의 집착과 압박 때문에 결국 성적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가 되었다.


일등을 놓치자 가혹한 체벌이 이어졌고, 다음 날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에 아이는 잠든 엄마를 칼로 수차례 찌르고도 엄마가 살아서 나올 것만 같아 방문에 본드를 발랐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을까.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무서울 정도로 뜨거운 수준이다. 교육학대의 경계선이 모호한 상태인 현실이 나만 우려스러운가. <스카이 캐슬>의 이명주처럼 지나친 교육 열의를 가진 학부모 역시 자신의 행동이 학대인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녀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공부에 재능이 있거나 흥미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면 학업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이나 욕망을 아이를 통해 성취하려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만을 우선시하여 아이들의 사회성이나 공감능력, 삶의 태도 같은 요소는 결핍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단순히 공부만 잘했다고 해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실 부모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했기 때문이니까.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떡하지?' 부모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부모든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현실을 고려해야 할 테니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할 지경이던 차에, 놀라운 책을 만났다. <IB로 대학가다>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미영 교수는 한국에서 수능 언어영역을 가르치다가, 2001년에 싱가포르에서 한국과 다른 외국의 교육을 알게 된 후로 그동안 쌓은 커리어와 경제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2007년에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로 가서 17년째 살고 있다. 현재 그녀의 아들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딸은 IB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IB의 교육 철학이 매우 훌륭하다.

학생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고 키워주는 건 물론이고, 탐구하고 도전하게 하며, 소통과 배려를 가르친다. 공감과 존중과 협력을 배우고 서로 다른 과목 간의 교류와 융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IB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21세기에는 주입식 교육이 맞지 않다. 주입식으로 지식을 가르치면, 학생이 자율적으로 탐구하려는 호기심이 사라진다. 또한 정답 외의 주장은 받아 주지 않아,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도 어렵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해 가는데, 왜 교육 방식은 변화하지 않고 제자리인가. 늘 의문이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건강하게 학교 생활하며 다양한 재능을 존중받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리고 책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입시 교육에만 치우쳐서 균형을 잃어 목표를 상실한 한국 교육은 분명 잘못되었다. 한국 학생이 겪는 정서적 고통은 학창 시절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전반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장기 동안 겪는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서 지속될 수 있으며, 그들의 인성과 대인관계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그래서 현대교육은 아이의 학업성취뿐만 아니라,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교육과정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말이다.


<노력의 배신>이란 책의 저자도 시대마다 인정해 주는 능력과 재능이 따로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수능을 통해 학생을 뽑는 방식이 훨씬 더 공평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대놓고 똑똑한 학생을 뽑는 미국의 입학 정책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어차피 미국 SAT든 한국 수능이든 결론적으로 타고난 똑똑함을 가진 학생을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두뇌, 노력. 모두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노력' 자체도 재능이라 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소질이 다른데, 우리 시대는 왜 한 가지 길만 신봉할까. 이제 대한민국 입시와 교육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호소해 본다.


"공부만이 답이다."

"공부만이 살 길이다."

이제 이런 식의 교육은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마다 타고나는 재능이 모두 다르다.

학교에서도 너무 '공부'에만 치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의 범위를 더 많이 확장하고 아이들이 재능과 적성을 발견할 수 있게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성공의 기준을 다양하게 열어놓고.


건강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어릴 때 최고의 교육은 '사랑'과 '존중'이 아닐까.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사랑'과 '존중'을 중요한 가치로 배우며 살아간다면 훨씬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중요한 과정이 있다. '자아정체감'과 '진로 탐색'을 하는 과정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어른들도 그랬듯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며 정체성과 인생관을 고민하고 꿈을 찾는 시기에 자신감과 자존감을 쌓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들이 이 과정을 건강하게 겪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치러 온, 그리고 치러야 할 아이들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정 자녀의 미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부모와 선생님들, 우리 어른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노력의 배신>에서 말한 김영훈 작가의 조언에 귀 기울여 보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지 않도록 운동장의 환경과 구조를 개선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다.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건 모두가 본인의 재능을 활용해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돈'과 '공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좀 더 '인간다운 삶'에 가치를 두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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